[시민신문이 만난사람] 미술심리치료사 배철환씨

“미술은 정서의 표현이고 감정의 표현이죠. 그림을 그리고 또 그림을 가르치다 보니까 미술심리치료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미술치료학회 정회원이며 미술심리치료사, 상담심리치료사 자격증을 갖고 있는 배철환(54)씨는 현재 영남대학교 대학원 미술치료학과에 다니면서 석사논문을 준비 중이다.

배씨는 그림을 가르치는 사람이다. 미술학원 운영과 일주일에 두 번 춘양초등학교에 방과후 그림지도, 문화원의 미술 문화강좌인 미사모(미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지도도 일주일에 두 번 있다. 모두가 그림을 지도하는 일이다.

그것만으로도 “일주일이 어떻게 가는지 모르겠다”는 배씨는 50대 중반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 대학원을 다니고 있다.

“배우는 데는 나이가 상관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제 나이가 많은가요? 우리학원에는 70대 어르신 두 분이 저한테 그림을 배우고 있습니다. 배우는 걸 즐거움이라 생각하는 분들은 나이가 상관없죠. 하지만 배우자는 그렇지 않겠죠? 제 와이프도 제가 대학원을 간다고 하니 선뜻 동의하지는 않았어요. 제가 설득했죠.”라며 눈썹을 살짝 올리며 웃는다.

배씨는 우리지역에서 10년 이상을 공무원으로 생활했다. “75년 재산면사무소에서 공무원생활을 시작해 86년 가흥1동 사무소에서 사표를 냈습니다. 저의 솔직한 이유는 자유롭고 싶어서인데 솔직하게 그렇게 얘기하면 미친놈이라고 비웃을 것 같아서 핑계거리를 찾았는데 ‘사표내고 7급 공무원 준비한다.’고 했습니다.”라며 웃는다. 배씨는 사표 낸 다음해 안동대 미대에 입학한다.

“제가 대학을 88년에 갔는데 다른 사람들에게 얽매이지 않고 혼자 할 수 있는 걸 찾다가 그림을 선택한 거죠. 서른이 넘어 입학한 사람은 저 밖에 없었어요. 저 다음으로 나이가 많은 학생이 저보다 일곱 살 아래였죠. 그래서 그 친구랑 잘 어울렸어요. 그리고 음대 성악과에 목사님이 다니셨는데 그 분이 저와 비슷한 나이였어요. 그분과도 잘 지냈죠. 미대는 2학년 때 전공을 택하는데 서양화를 했어요. 안동에 형님이 학교 근처에 살아서 4년 내내 형님 댁에서 학교를 다녔습니다. 그 때는 어머니도 형님 댁에 계셨는데 이제는 어머니도 누나도 다 돌아가시고-”

배씨의 돌아가신 누나는 다름 아닌 우리지역 여류문인 배금화씨다. 단편소설, 시, 수필, 꽁트, 영화시나리오 등 다양한 장르에 작품을 남기고 지난 2001년 쉰둘의 아까운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당시 그녀가 소속되어 있던 영주문협에서는 그녀의 작품들을 모아 배금화 유고집(遺稿集) ‘행여 눈물 매달고 마중 나오지는 말라’를 발간했다.

그녀는 7년 전인 93년에 씌여진 자신의 시(詩) ‘봄소식’에서 '행여 눈물 매달고 마중 나오지는 말라'고 했다. 그녀의 유고집 표지 그림은 배씨가 직접 그려 넣었다.

“제가 심리학을 공부하려고 마음먹었던 이유는 누나의 영향도 있습니다. 누나가 돌아가신 후 심리적으로 굉장히 힘들었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하니 우울증이었어요. 지금도 저 자신 우울증에서 완전히 벗어났다고는 생각지 않고 있어요. 누나와 참 많이 싸웠어요. 누나의 생활도 누나의 작품도 늘 저는 비판만 했죠. 대책 없이 감상적이고 감정적이라고- 누나가 떠나고 나니까. 후회가 많이 돼요. 누나의 그 순수함을 이해해주지 못한 것도 그렇고 말년에 병고에 시달릴 때 ‘차라리 빨리 죽는 게 더 행복하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도- ” 배씨는 한 동안 말을 잇지 못한다.

“심리센터를 건립해 마음 다친 사람들과 부대껴 보고 싶습니다.”라고 희망을 이야기하는 배씨는 1982년 봉성면사무소에서 같이 공무원 생활하던 김율씨를 만나 결혼해 슬하에 컴퓨터 공학과를 나와 컴퓨터 프로그래머인 아들 재광씨와 호텔 경영학과에 재학 중인 성현씨를 두고 있다.

안경애 시민기자 agh3631@yj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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