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동네 이사람] 수목 1만여 그루 식재한 우흥구 할아버지

이산면 소재지를 지나 흑석사로 가는 고갯마루를 넘기 전에 집 두 채가 별장처럼 자리 잡고 있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도로에서 집이 보였지만 지금은 우거진 숲 때문에 보이질 않는다.

20년 전 이곳 경사진 밭과 산 1정보(3천평) 면적에 매년 나무를 심고 가꾼 것이 현재는 무려 1만여 그루가 무성해졌다.

또 우거진 숲 속에 들어서면 곳곳에 이채로운 10채의 정자, 연못 2곳, 돌탑 3개, 물레방아 2곳, 폭포 하나가 만들어져 숲 속의 낙원처럼 꾸며져 있다.

맑고 푸른 마음을 갖고 오랜 세월 숲 속의 쉼터를 만들어 온 주인공 우흥구(82), 임상희(81)씨 부부를 찾아가 봤다.

▶ 나무와의 인연

우씨 할아버지 부부가 사는 집을 찾아 들어가는 길 양편에는 익어가는 모과가 나무에 주렁주렁 소담스럽게 달려 있다.

이처럼 많은 나무를 심게 된 이유에 대해 우씨 할아버지는 “처음엔 계단식으로 개간해 과수나무가 심어져 있었는데 토질이 사토이고 지면 경사가 심해 3년 만에 과수 수확이 불가능 할 정도로 흙이 깎여 나갔다”며 “이로 인해 고심한 끝에 푸른 소나무, 관상수, 유실수와 꽃나무를 심어 보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산면 소재지인 원리에서 출생해 농사를 짓던 우씨 할아버지가 이곳에 온 것은 23년 전 인 87년으로 당시 나이 60세 때였다고 한다.

“처음에는 매년 봄에 2천여 그루의 묘목을 구입해 계속 심었지만 매년 고사목이 생겨 그 후 5년간은 1천여 그루씩 심었고 연차적으로 5백여 그루를 10여 년을 심고 가꾸었더니 더 심을 곳도 없고 계속 자라 현재 1만여 그루가 울울창창한 모습으로 이렇게 서 있습니다”

이곳에 심어진 나무의 종류도 다양하고 수량도 어마어마하다. 우씨 할아버지에 따르면 잣나무와 소나무, 향나무가 각각 약 2천그루, 철쭉나무와 단풍나무, 느티나무가 각각 7백 그루, 매화와 벚나무, 백송, 주목, 대나무가 각각 3백 그루, 모과와 감나무, 대추나무 각각 1백 그루 정도로 추산하고 있다”고 했다.

우씨 할아버지가 20년간은 심고 가꾸면서 계속 관리해 온 각종나무가 이처럼 우거진 푸른 숲으로 변할 줄을 누가 알았을까. 옛말에 ‘10년 지계는 막여식수’라는 말이 있다. 십년계획은 나무를 심는 것 만한 게 없다는 뜻이다.

십년세월이 두 번이나 지나도록 꾸준히 참고 인내하면서 1만여 그루의 나무를 심고 가꾸는데 애써 온 우씨 할아버지는 진정 존경의 대상이다.

▶ 이채로운 정자 이야기

무성한 나무로 우거진 숲속을 걸어 보는 것만도 만족스러운데 곳곳에 이채로운 정자까지 구경하고 그 곳에서 쉬어 갈 수도 있다.

숲 향기가 풍기고 양지바른 곳을 택해 놀랍게도 기둥 하나를 가진 정자에서부터 기둥을 하나씩 더해 기둥 10개로 만들어진 정자가 열개가 서 있다.

정자 기둥의 개수가 모두 제각각인 것이다. 정자 기둥에는 우씨 할아버지의 철학이 숨겨져 있다. 말을 그대로 옮기면 그 비밀(?)은 이렇다.

“사람이 적은 욕심으로 유유자적이 살아가려면 푸른 숲이 있고 맑은 공기가 감도는 곳이 제일입니다. 그래서 자연과 벗이 되어 대화 할 수 있는 장소를 만들어 보려고 했습니다.

마침 3정보나 되는 주위 산에서 간벌 할 때 생긴 목재를 버리기가 아까워 그 것을 수집 해 놓았다가 1년에 하나씩 10년간 열채의 정자를 직접 지었지요, 그것도 1999년도부터 시작하여 첫 해 지은 것은 기둥 하나인 1주(柱)정자, 다음해 2주 정자에서 매년 기둥 하나씩 더해 2008년도에는 기둥 열 개 10주 정자까지 만들게 되었습니다.

기둥 하나를 가진 정자의 의미는 사람이 결혼하기 전 까지는 혼자라는 뜻이고, 기둥 둘은 이성지합(二姓之合)이란 뜻으로 결혼하였음을 의미하고 기둥 세 개부터 그 이상은 자식을 많이 놓아 기둥이 많은 정자처럼 기초가 튼튼한 가정을 만들어 줄 것을 후손에게 당부하는 교훈의 뜻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풍경 좋은 이곳에 지어진 10개의 정자를 한 번 돌아보면 그 모습에서 누구나 우씨 할아버지의 깊은 뜻을 새삼 알 수 있을 것만 같다.

▶ 돌탑과 돌집의 의미

도로에서 집을 찾아 약 20m를 들어가면 돌탑 3개를 볼 수 있다. 3m의 높이 2개는 천하남장군, 천하여장군 탑이고 높이 약 4m, 밑 지름 약 2m의 탑 하나는 남북통일 기원 탑이다.

산과 밭에 흙을 파고 나무를 심을 때 나온 돌을 처리할 곳이 없어 고민하다가 탑을 쌓은 것이라고 했다. 이 탑들에도 정자들과 마찬가지로 의미를 부여 하고 있다.

“처음 쌓는 것은 천하대장군탑으로서 가족들의 건강, 화합, 가정의 행운을 기원하는 의미를 갖고 있고 통일기원탑은 6.25동족상잔의 비극으로 생긴 분단국가란 애통함이 있어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하루라도 빨리 남북통일이 되기를 기원하는 의미에서 4년의 세월 동안 돌 하나하나 올릴 때마다 정성을 다했습니다”

이 뿐만이 아니다. 집 뒤 약 200m 거리의 산자락 아래 면적 4평, 높이 2m 정도의 원형 돌집이 또 지어져 있다. 용도가 무엇이냐고 물으니 “저는 단양 우씨 문희공파 11대 주손입니다. 앞으로 장례문화의 변화가 온다면 후손들이 조상 신위를 모실 수 있도록 미리 만들어 놓은 장소입니다” 한다.

이 곳 집의 이름을 선령원(仙靈園)이라고까지 지어 돌에 새겨 놓았다.

▶ 물레방아와 폭포

숲 속 운치 좋은 두 곳에 물레방아까지 만들어 놓았다. 얼마나 솜씨가 좋아 물레방아까지 만들었을까 놀라고 또 놀랄 정도이다.

장마 때와 가물 때를 대비해서 자연수와 인공수로 겸용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요사이 쉽게 볼 수 없는 물레방아 돌아가는 모습에서 잠시나마 추억 속으로 연결되는 풍경들이다.

또 계곡에 물이 있을 때는 자연 그대로 가뭄 때는 연못에 저수되었던 물을 공급하면 높이 약 7m의 암벽에서 떨어지는 물이 폭포가 된다.

나무를 심고 가꾸어 온 일부터 깊은 뜻이 간직된 정자, 물레방아, 돌탑, 폭포 등은 모두가 예사롭지 않게 보인다.

이산면 원리에 사는 권춘식(84)씨는 우씨 할아버지에 대해 “자랄 때부터 친한 사이인데 우수한 머리와 좋은 솜씨를 가진 사람”이라며 “가정 여건이 좋았으면 크게 성공할 분이였지요. 많은 어려움을 극복하면서도 자녀 2남 3녀 교육을 잘 시켜 모두 사회에서 요직에 근무 중이며 효성이 지극한 자녀들을 두었다고 주위 사람들은 부러워합니다.

특히 솜씨가 뛰어나 나무 가꾸고 정자 짓고 돌탑 등 만들어 놓은 것 보면 누구나 놀랄 정도입니다”라고 했다.

전우성 시민기자 lkj1000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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