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람]작지만 강한 농협을 만드는 황갑식 조합장

참숯쌀 브랜드, “전국 명성”
백혈병으로 잃은 아들, 슬픔 딛고 장기기증 하기도


“오리농법 박사, 쌀 조합장, 영주쌀 전도사, 쌀 박사, 오뚜기 조합장....”

이는 안정농협 황갑식(60.사진)조합장에게 따라 붙는 수식어들이다. 황 조합장은 44세의 젊은 나이에 조합장에 당선된 이후 만성적자와 자본잠식으로 조합원들의 외면을 받아오던 면단위의 작은 조합을 2010년 현재 620억원의 자산에 BIS(순자본비율) 8.3%의 견실한 조합으로 탈바꿈 시킨 장본인이다.

면단위의 작은 농협을 ‘작지만 강한 조합’으로 우뚝 세우고 해마다 3억 원~5억 원에 이르는 수익금를 직간접으로 조합원들에게 환원해주고 있는 안정농협은 조합원들의 신뢰와 칭송을 한 몸에 받고 있다.

이처럼 견실한 조합으로 자리잡고 조합원들의 신뢰를 받기까지는 임직원의 노력도 컸지만 황 조합장의 식지않는 오뚜기같은 열정이 큰 뒷받침이 됐다.

우리고장의 곡창지대인 안정에 RPC(미곡종합처리장)공장을 유치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논리를 펴며 관내 7개 단위농협의 동의를 얻은 뒤 국비보조금 10억 원 등으로 98년 RPC를 준공했으나 그 해 치러진 조합장선거에서 17표차로 분패하면서 그는 꿈은 한때 좌초했다.

하지만, 당시 신임 조합장의 방만한 운영 등으로 조합은 또 다시 비틀거렸고 2000년 가을에는 설상가상으로 3억 1천 700여만원 상당의 원료곡 변질사건까지 터졌다. 성난 조합원들에 의해 당시 조합장은 물러났고 그 빈자리에는 재선을 통해 또다시 황조합장이 지휘봉을 잡았다.

▶죽기 살기로하면 조합원은 희망 생긴다

안정농협의 구호는 ‘죽기 살기로’이다. 임직원이 죽기로 일하면 조합원은 희망을 가지게 되고 결국에는 모두가 살아난다는 뜻으로 지도자의 의지가 엿보이는 구호다.

그러나 만신창이가 된 조합을 채 추스리기도 전인 2004년 3월 안정농협은 농업중앙회로부터 청천벽력같은 ‘합병권고 안’이 떨어졌다.

이대로 무너질 수는 없다고 생각한 황 조합장은 조합원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호소했고 이에 감동한 1천 300여 명의 조합원들은 3개월만에 9억여 원의 출자로 화답했다. 그 결과 BIS(순자본비율)이 6.1%라는 건실한 조합으로 다시 태어나게 됐다.

농번기가 되면 황조합장의 출근시간은 새벽 5시다. 조합원들의 영농활동에 지장이 없도록 원활한 농자재 공급을 위해서다. 이에 영향을 받은 20여명의 직원들도 출근시간을 한시간 앞당겼고 지금은 1년 내내 오전 8시면 전 직원이 정상업무를 시작하는 별난 조합으로 태어났다.

이같은 열정과 노력으로 조합원들의 사랑을 받은 탓일까? 조합살림은 한해가 다르게 늘어만 갔고 조합원들에게 돌려주는 출자배당과 이용고 배당 역시 한해가 다르게 늘어 지금은 5억원에 이르는 돈이 직간접적으로 조합원들에게 돌아가고 있다.

인근 주유소도 인수하여 경제사업 활성화에 박차를 가하는가 하면 2008년에는 고객들의 접근성이 좋은 면사무소앞에 신청사를 지어 조합청사를 이전했다.

특히, 우리고장의 대표적인 쌀 브랜드인 ‘참숯과 쌀의 만남’은 2006년부터 전국 700여개 쌀브랜드 가운데 21위를 차지, 전국적인 명성을 얻고 있다. 참숯쌀은 밥맛 좋은 추청벼만 엄선해 농가와 계약재배하고 활성탄(숯가루)을 논에 뿌려 물에 있는 유해물질을 제거해 키운 환경친화적 쌀이다.

상여금을 한푼도 못 받던 직원들도 400%의 기본보너스와 300%의 인센티브에 특별보너스 까지 더해지자 신바람이 났다. 이에 화답하듯 간부직원들은 2005년부터 730만원을 모아 1조합원이 3가구 이상의 도시소비자를 영주쌀 고객으로 만들자는 운동을 펼치고 있다.

이 운동은 판매액에 따라 매년 개인과 단체별로 시상을 하고 있고 영주시도 택배비를 보조해 주고 있다. 그 결과 9억원에 달하는 택배사업의 성과를 거두고 있으며 지난 2008년에는 130억원의 쌀을 판매해 영주쌀을 전국에 알리는 작지만 강한 조합으로 우뚝섰다.

RPC는 쌀농가를 위해 존재한다는 황조합장은 앞으로 쌀생산 농가와 계약을 하고 계약농가에는 지난해 500원(벼 40kg당)에 이어 올해는 1천원을 지원할 예정이다. 향후 미 계약농가와 5천원 이상의 확실한 차이를 두어 쌀생산 농가도 돕고 안정적인 원료곡 확보도 하는 정책을 펴 나간다는 생각이다.

▶쓰러지면 다시 일어나는 오뚜기 인생

황 조합장의 화려한 이력 이면에는 패배의 쓰린 세월도 많았다. 80년대 초에는 이장선거도 낙선을 했고 농협감사 선거에서 떨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그때마다 오뚝이처럼 일어났다.

86년 그는 고향마을인 안심1리 이장을 맡았고 농협감사선거에도 당선됐다. 마을 이장을 맡았을 때는 특이한 일화도 있다.

이장 5년을 보내면서 마을에 만연하던 도박의 원흉인 마을내 술집을 자비로 보상해주고 문을 닫도록 해 하룻밤에 가산을 탕진하는 도박판을 마을에서 완전히 몰아낸 것이 바로 그것이다.

팔순의 홀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황조합장은 효성도 남다르다. 오갈데 없는 독거노인을 집으로 모셔와 큰어머니로 모시며 돌아가시기까지 13년을 두 어머니를 지극정성으로 섬긴 적도 있다는 마을 이장의 귀뜸이고 보면 그의 효성을 대략 짐작하고도 남는다

현 농업기술센터를 자신의 마을로 유치한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한 황 조합장은 친환경농업에도 남다른 관심을 보이고 있다.

자신의 논 20마지기(6천평)에 비료와 농약이 없는 친환경 오리농법으로 농사를 지어 ‘황부자 쌀’이라는 독자상표로 도시 소비자들의 사랑을 받기도 했으며 관내 최대 친환경 단체인 소백친환경농법연구회을 조직해 활성화 시켜놓은 뒤 지금은 고문으로 몸담고 있다.

▶ 열정뒤에 숨겨진 불행의 그늘

그러나, 많은 사람들로부터 신뢰를 받고있는 그이지만 가정적으로는 불행한 일이 많다. 그중 가장 큰 불행은 아들을 잃은 슬픔이다.

96년 학교에서 수석을 다투던 고 2학년생 아들을 서울 어느 대학에 보낼까 행복한 고민을 하던 어느 날 증세가 이상해 서울 큰 병원에 데려 갔으나 급성 백혈병이라는 진단을 받은 이튿날 그의 곁을 영원히 떠났다. 그렇게 떠난 아들도 장기기증을 통해 훈훈한 감동을 줬다.

지난해 11월 안정교회 장로에 임직된 그는 조합장으로 받는 연간 7천여만원의 급여도 대부분 남몰래 불우시설 등에 쓰고 있다는 소문이 시설관계자 등에 의해 알려지고 있지만 당사자인 그는 아는지 모르는지 14년 된 고물승용차를 몰고 오늘도 명품 안정면을 가꾸는 한 축의 지도자로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다.

부인 김기연(57)씨는 시어머니(82)를 모시고 1급 장애를 지닌 아들 일용군(32)을 지극정성으로 간호하며 황조합장을 내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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