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람] 대학서 ‘열공’중인 83세 대학생 권춘식씨

2007년도 봄, ‘80세 노령으로 대학에 입학한 권춘식씨’란 본지 기사를 보고 놀랐던 사람들은 아마 아직도 그분을 기억 할 것이다. 여든의 나이에 배움의 꿈을 갖고 검정고시에 과감히 도전해 대학입학의 소원을 이룬 입지전적인 화제의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권씨는 영주시 이산면 원리에 살고 있다. 3년이 지난 지금 그의 근황이 궁금했다. 집을 찾으니 높지 않은 뒷산 자락, 온종일 햇빛이 드는 곳에 담장도 대문도 없다. 마중 나온 권씨는 ‘83세’라 하기에는 너무나 젊어 보인다. 권씨는 안동권씨 시조 행 幸의 후손이다. 16대조가 이 마을에 처음 자리 잡아 근 500년 세월을 뿌리내려 살아왔다.

“전답 2천여 평의 땅에 농사를 지으면서 자녀 3남 3녀를 길러 출가시킨 후 2003년인 73세 때 아내와 사별했습니다. 이곳에서 혼자 살기 5년 만에 대학생이 됐고 손자녀 13명을 포함해 모두 19명의 가족이 생겼습니다” 권씨는 언뜻 보기에는 어느 할아버지들과 한 점 다를 바 없는 평범한 할아버지 상 像이다. 늦어도 한참 늦은 나이에 남들은 감히 생각지도 못할 대학생이 되기까지의 사연이 궁금했다.

“운명에 맡겨진 마지막 그 시간 ‘앞으로 당신은 평소 소원이기도 했던 배움과 벗을 하고 사는 것이 낙일 것’이라는 아내의 마지막 말을 잊지 못합니다”하면서 잠시 눈시울을 적신다. 아내의 마지막 그 말은 그를 배움의 길로 접어들게 했다.

“50여 년 함께 남다른 정으로 살아오다가 사별이란 것은 가장 큰 충격이었습니다. 이를 조금이라도 쉽게 잊기 위해 75세 때 영주가흥종합사회복지관 은빛대학에 입학을 했어요. 1년을 다니면서 느낀 것은 내가 좀 더 깊이 있는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만 두고 배움의 길을 찾아 나섰습니다”

시골에서 시내에 있는 검정고시 무료 교실에 다니기는 쉽지 않았다. 그래서 새롭게 도전한 것이 운전면허증이었다. 당시 나이가 76세였다.

“처음에는 아이들도 운전을 적극 반대는 했으나 그래도 고맙게 차를 구입해 줬고 대학을 가려 하니 중고등학교 졸업자격을 갖추어야 하기 때문에 77세 때 시작한 중학교 3학년 교육과정(영주 YMCA)을 4개월에, 고등학교 3학년 교육과정(영주 청년학교)을 6개월에, 모두 6년 과정을 1년 좀 지나 검정고시에 모두 합격했습니다”

권씨는 “그때서야 대학입학 1차 관문을 통과할 수 있는 길이 열려 자신감도 갖게 됐고 공부하려 다닐 때 나를 보고 미쳤다고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지만 결과가 좋아 그 기쁨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였다”고 지난 일들을 회상했다.

쉽지 않은 일을 해낸 권씨의 행적은 오늘날 많은 사람들에게 큰 교훈을 주고 있다. 남들이 6년이란 세월이 지나야 할 수 있는 일들을 1년에 마칠 수 있다는 것, 그것도 배움이 가능한 나이도 아닌 팔순 노객이 해결해 냈다는 것, 누구나 자신들을 한번쯤 돌아보게 하는 경이적이고 귀감이 되는 사례이기에 저절로 고개 숙여지며 존경하고 싶은 마음이 앞선다.

“배움에는 방법은 없습니다. 노력뿐입니다. 1년 간은 잔인하고 독한 각오를 했습니다. 정직한 땀은 언제나 값진 결실이 있다는 진실은 이미 60여 년 농사일로 익혀 온 철학입니다”

권씨는 “이치가 통하는 사회에서는 요행과 공짜는 절대 없다”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가장 고마운 것은 오늘의 자신이 있기까지 열심히 지도해 준 영주 YMCA와 영주청년학교 선생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고 했다. 방송대 문화교양학과에 입학한 후 지금까지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원래 선친으로부터 한서를 익힌 바 있어 처음에는 한문학과를 가고 싶었지만 해당과가 없어 문화교양학과를 지망했으며 입학식 때 대부분 젊은 남녀들, 그리고 50~60대가 간혹 있었지만 80대는 혼자여서 이목이 집중돼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그래도 즐거움이 더 많았습니다”

권씨는 현재 배우고 있는 12과목 중 가장 힘든 과목은 동서양 고전과 컴퓨터라고 했다. 하지만, ‘배움’이란 인연으로 만난 사람들이기 때문에 나이 차이는 있어도 서로 지식을 공유하고 대화가 되니 항상 즐겁고 고마운 시간들이라고 했다.

“동기, 동문이 아니면 감히 젊은 분들과 동석이나 할 수 있겠습니까? 만나고 돌아오면 다시 만날 날이 기다려질 정도입니다”

“좌우명 삼아 지켜온 학이시습지(學而時習之)면 불역열호(不亦悅乎)아. 배운 것을 다시 익히면 이보다 더 기쁜 일은 없다. 학(學)이란 사람다운 사람이 되기 위해 알고 행해야 할 광범위한 배움을 뜻합니다. 좋은 내용인 탓인지 젊은 분들도 만족해합니다”

공부 외에 하시는 일을 묻자 조상을 위한 위선사업(爲先事業)과 문중사(門中事)에 직접 참여하고 있다고 한다. 남다른 소신과 각오로 나이를 잊고 당당히 살아가시는 그 모습이 고령화 사회에서 사는 많은 사람들에게 값진 교훈이 되고 있다.

전우성 시민기자 lkj1000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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