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급학교 진학하는 친구들이 무척 부러웠죠”

배우지 못한 서러움이
배고픈 서러움보다 더
시리고 아파 골 깊은 가슴이랑에
배움의 꿈을 심는다.
야학(夜學) 한 순례(영주청년학교)

영주청년학교 18명의 졸업생 중 야학(夜學) 2년 만에 고입, 대입 검정고시에 합격한 억척같은 아줌마 배기연(49세)씨를 만났다. "졸업을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그녀의 인상은 참 순해 보였다. 밝은 색 하의에 푸른 상의가 단정한 느낌을 준다.

"신문에 낸다면 나 자신을 위해서 그저 책 들고 왔다갔다한 저 보다는 직장 생활하면서 피곤하실텐데도 우리들을 위해 봉사하시는 교장선생님과 선생님들을 실어 드려야지요." 라며 사양을 하여 필자의 진땀을 뺀다.

그녀는 풍기에서 태어나서 자라고 풍기에서 결혼을 했다. 한마디로 풍기토박이다. "어려운 형편도 형편이고 그때만 해도 여자들은 공부를 많이 안 시켰잖아요. 상급학교 진학하는 친구들이 무척 부러웠죠." 그녀는 자연스럽게 진학하지 못한 친구들처럼 직물공장에 취직을 했다. "풍기에는 직물공장이 굉장히 많아요. 한 집 건너 하나씩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어떻게 생각하면 못 배운 사람들이 살기 좋은 곳이지요. 직물공장 외에 인삼밭, 사과 과수원도 많구요." 그녀는 결혼 전까지 직물공장에서 열심히 일했다. 배움의 꿈을 잠시 접어둔 채... " 24살 때 남들 다하는 결혼을 했어요. 다들 그렇잖아요. 결혼 생활에 저도 정신없이 바쁘게 살다보니 어느덧 중년이 됐더라구요. 애들이 다 크고 대학을 가고 군엘 가고 하니 나 자신을 새삼 돌아보게 돼요."

그녀는 당시 조그마한 전파상을 하던 남편 정재호씨를 만나 결혼을 했다. 시어머니, 시누이 셋, 시동생 하나 6남매의 맏며느리로...

" 시집오자마자 시어머니께서 모든 걸 제게 맡기셨어요. 맏며느리가 이런거구나. 어린 마음에 무척 부담이 됐지만 어른도 좋으시고 시누이, 시동생도 다 성격들이 좋아서 사이좋게들 지냈습니다" 그녀가 결혼생활에서 가장 힘들었을 때는 남편이 십이지장궤양으로 수술을 받을 무렵부터다. "결혼하고도 잠깐씩 나가던 직물공장도 그때 그만뒀습니다. 세상에 사람 건강보다 더 귀중한 게 있겠습니까? 더구나 남편인데요" 그 즈음 그녀는 불교에 관심을 갖게 된다. 지금도 가까운 영전사에 다니고 있다고 한다. "식구가 아프니까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마음이잖아요. 가깝게 지내던 분이 팔공산에 가서 기도를 해보라고 했어요. 정성을 다하면 효험이 있을 거라며..."

배기연씨 부부는 그때부터 매주 한번씩 팔공산에 다니며 기도를 했다고 한다. 물론 병원치료도 꾸준히 받아가면서...
" 십이지장궤양은 다 나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요즈음도 건강하지 않아요. 갑상선도 안 좋고 간 치수도 높구요. 지금은 남편 건강만 좋으면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습니다." 그녀는 남편은 몸이 불편한데도 자신을 많이 도와준다며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고 그렇죠. 라며 환하게 웃는다. 정보지를 통해 YMCA에서 야학을 한다는 걸 알고 초등학교를 졸업한 지 35년 만에 다시 손에 교과서를 잡았다. 그리고 1년 만에 중학생 과정을 마쳤다.

"2000년도 2월에 YMCA에 들어가서 다음해인 2001년 4월에 마쳤어요. 그리고 청년학교를 2001년 6월에 들어갔구요."

그녀는 가게(전파사)는 1층에 있고 살림집이 2층에 있어서 공부를 하다가 남편이 전기일을 하러 나가면 책을 들고 아래층으로 내려가 가게 일도 보고 공부도 하곤 하였다며... "하루 종일 책 들고 1, 2층을 왔다갔다했지 공부는 잘 못했어요." 하며 웃는다.
그녀는 풍기서 통학을 해야하는 탓에 수업시간과 풍기버스 시간이 맞지 않아 적지 않게 속을 태워야만 했다고...

" 야학이 7시에 시작해서 9시 55분에 마치거든요. 그런데 풍기 막차시간이 9시 40분이잖아요. 그래서 마지막 수업은 반만 듣고 나와야 해요." 그녀는 열심히 강의하시는 선생님들께 굉장히 죄송했다고 한다. "저는 제가 잘나서 이렇게 2년 만에 중·고등학교 과정을 마쳤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가정주부잖아요. 남편과 시어머니, 애들, 시집식구들이 다 이해해주고 격려해주니까 가능했지요." 라며 가족들에게 너무너무 고맙다고 거듭 강조를 한다.
특히 남편 저녁도 제대로 못 챙겨줬다며 말끝을 흐리는 그녀를 보고 있자니 강하지만 한없이 여리고 약한 여자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가족들의 격려에 힘입어 새로 시작했다는 한문(서예), 요리공부도 좋은 성과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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