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서각(시인·문학박사)

지방자치제가 시작되면서 자기 고장을 알리려는 의도로 지자체마다 그 지역을 상징하는 수식어를 만들었다. 영주를 ‘선비의 고장’이라고 하고 안동을 ‘정신문화의 수도’라고 한다.

영주가 선비의 고장이라는 말을 미리 정하자 안동이 매우 애석해하다가 선비의 고장을 능가하는 이름을 지은 것이 정신문화의 수도라는 후일담이 있다. 확인된 사실은 아니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렇게 알고 있다.

영주와 안동 지역은 다른 지역에 비해 유학이 성했고 올곧은 선비도 많이 배출한 고장임에는 틀림없다. 영주는 안향 선생이 성리학을 들여온 곳이요 안향 선생을 배향하는 소수서원이 있는 곳이다. 퇴계 선생께서 풍기 군수로 계실 때 소수서원을 사액서원으로 만드셨으며 서원에서 직접 강학을 하시기도 했으니 선비의 고장이라 할 만하다.

안동은 퇴계 선생을 모신 도산서원이 있는 곳이요 경술국치에는 수많은 선비들이 곡기를 끊거나 자결하여 선비의 지조를 지킨 곳이다.

또한 석주 이상용, 권오설 등의 가장 많은 수의 독립지사를 배출한 곳이기도 하다. 영주와 안동은 많은 수의 지조 있는 선비를 많이 배출한, 선비문화권으로 손색이 없는 지역이었다. 고을마다 퇴계의 후학들이 유림의 맥을 이어왔기 때문일 것이다.

영주와 안동에는 어느 지역보다 유림 단체가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그런데 오늘의 유림에도 선비의 지조가 남아 있는가? 이 물음에는 지금도 그러하다고 대답하기 어려울 것이다.

얼마 전 제1야당 대표가 안동을 방문했을 때 유림 대표라는 분들의 하시는 말씀을 듣고 매우 놀랐다. 유림의 어르신이라는 분이 황 대표를 일러 ‘국난을 극복할 구세주’, ‘백년 만에 한 번 나올 인물’이라는 말씀을 하셨다. 고장을 방문한 손님에 대한 예의로 그리 하셨다고 하지만 정신문화의 수도에서 나올 말은 아니다. 이 지역 유림의 단면을 보는 것 같아 아쉬움이 크다.

선비정신의 핵심은 불의에 굴하지 않는 지조(志操)에 있다. 일제강점기에 전국에서 가장 많은 수의 독립투사가 이 지역에서 배출된 것은 우리지역에 선비정신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해방 후 심산 김창숙 선생은 일제에 의해 끊어진 선비정신을 잇기 위해 성균관을 설립하고 성균관대학을 만드셨다. 이승만은 자기를 비판하는 심산을 미워하여 성균관대학 총장에서 물러나게 하고 친일파 이명세를 임명했다. 선비의 지조를 꺾은 것이다. 베트남의 대개의 도로명은 프랑스 식민지 시절 프랑스와 싸웠던 독립투사의 이름으로 되어 있다.

그들은 독립투사의 이름을 거의 알고 있으며, 일상생활에서 독립투사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하며 산다. 올바른 역사교육이 이루어진 나라다. 베트남이 세계 최강인 미국과의 전쟁에서 승전국이 된 유일한 나라가 된 것도 그런 역사교육과 무관하지 않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다. 유림도 유건 쓰고 제례하고 경전을 읽는 일을 넘어서 올곧은 선비정신을 살려내는 사업을 해야 할 것이다. 그간 권력에 의해 묻혀버리고 잊혀진 독립지사를 한 분 한 분 호출하여야 한다. 그들의 이름을 기억하고 업적을 기리는 일 또한 선비의 고장이 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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