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민족의 세시풍속은 정초에 많이 집중되어 있는 편이고, 설날을 비롯한 명절의 세시풍속은 대체로 소망을 기원(祈願)하는 성격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기원의 대상이 신(神)이기도 하지만, 그냥 무언가의 ‘초월적인 힘’ 그 자체에 기대기도 한다. 또한 세시풍속은 농사를 중심에 놓고 행해지는 것이어서 ‘농경의례’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시대가 산업사회로 바뀌면서 농경의례의 성격도 많이 약화된 것이 사실이다.

세시풍속이 정월에 집중되어 있는 까닭은 정월이 농한기인데다 한 해가 시작되는 신성한 시기이기에, 이런 신성한 기간에는 신과의 만남이 더욱 수월해진다고 믿기 때문이다.

설날 아침은 차례를 지내는 것으로 시작된다. 차례는 장손이 중심이 되어 지내는데 일반적으로 4대조까지 모신다. 차례 후에는 산소를 살피는 성묘(省墓)를 하게 된다.

정초에 집안의 평안을 위한 큰 굿인 안택(安宅)이라는 행사가 있다. 또 지역에 따라서는 홍수매기[횡수막이]라 하여 주부가 무당을 찾아가 치성을 드린다. 홍수매기는 횡수(橫數, 뜻밖에 나타난 운수)를 막는 의례를 말한다.

설을 전후한 세시풍속이 다양한 만큼 속신(俗信) 또한 다양하다. 설날은 사실상 섣달그믐부터 시작된다. 섣달그믐날 밤에 잠을 자면 눈썹이 센다는 속신이 있어 잠을 자지 않는다. 이것을 해지킴이, 곧 수세(守歲)라고 한다. 설음식은 세찬(歲饌)이라고 하는데, 떡국이 대표이다. 떡국을 먹어야 나이를 먹는다고 한다. 섣달그믐밤의 복조리 풍속도 일종의 속신으로 볼 수 있다. 설날 아침 까치소리는 길조이고, 까마귀소리는 불길하다고 한다.

지역에 따라 설날 밤이나, 혹은 열엿새 귀신 날에는 야광귀(양괭이)라는 귀신이 신발을 신어보고 맞으면 신고 가버리는 습성이 있는데 신발을 잃은 사람은 그 해에 재수가 없다고 하여 신발을 감추거나 엎어놓는다. 귀신을 쫓는 방법으로는 체나 키를 장대에 매달아놓아 그 많은 구멍을 세는데 정신이 팔리도록 하거나, 저녁에 고추씨와 목화씨를 태워 독한 냄새 때문에 귀신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비방한다. 정월 대보름에 키 작은 사람이 남의 집에 출입을 하면 그 해에 목화가 잘 자라지 않는다고 하여 금기하며, 정초에 여자들이 널을 뛰면 발에 좀[무좀]이 걸리지 않는다고 장려한다. 연날리기는 정초 내내 보름까지 계속한다. 그러나 대보름 이후에 연을 날리면 액을 불러들인다고 금한다.

정초 십이지 간지(干支)를 유모일(有毛日)과 무모일(無毛日)로 나누는데, 정월 초하루가 털 있는 동물의 날이면 그 해에는 풍년이 들고 무모일이면 흉년이 든다고 한다. 유모일 중에도 소·토끼·호랑이날이 더 좋다고 한다. 동물의 털을 곡식에 비유하기 때문에 털이 많을수록 좋다.

청초의 쥐[子]날은 쥐가 곡식을 축낸다고 금기이다. 또 쥐가 쏠고 갉아먹는 것을 예방하기 위하여 그와 비슷한 행위인 칼질이나 바느질을 삼간다. 마소 여물을 썰면 쥐가 벼나락·짚 등을 쏠아버리며, 옷을 지으면 쥐가 옷감을 쏠아 못쓰게 한다고 한다. 소[丑]날에는 소에게 좋지 않는 일이 일어난다고 도마질을 하지 않으며 쇠붙이 연장을 다루지 않는다. 호랑이[寅]날에 일을 하면 호랑이가 나타난다 하며, 짐승에 대하여 나쁜 말도 하지 않고 외출도 삼간다. 이날 여자가 남의 집에서 대소변을 보면 그 집 가족이 호랑이에게 잡혀간다는 말도 있다. 토끼[卯]날에는 여자가 남의 집에 일찍 출입하면 재수가 없다하여 꺼린다.

용[辰]날에는 새벽에 용이 내려와 우물에 알을 쓸기에 남보다 먼저 물을 길어다 밥을 지으면 그 해 대풍이 된다고 한다. 이를 용알뜨기라 한다. 뱀[巳]날에는 머리를 빗거나 이발을 하면 뱀이 나타난다 하여 금한다. 빨래도, 바느질도 하지 않는다. 말[午]날 제주도에서는 좋은 날로 보아 장을 담근다. 양[未]날은 약을 먹어도 약효가 나타나지 않는다고 한다. 원숭이(申)날에는 부엌에 귀신이 나온다고 하여 남자가 일찍 일어나 비를 들고 부엌 네 귀퉁이를 쓸어낸다. 닭(酉)날에 바느질을 하면 손이 닭발처럼 된다고 한다. 개[戌]날에는 일을 하면 개가 텃밭을 해친다고 하고, 돼지[亥]날에는 팥가루로 세수를 하면 얼굴이 희어진다고 한다.

정월 열 나흗날 저녁에 부잣집 부엌 흙을 훔쳐 자기 집 부뚜막에 바르면 부자가 된다고 한다. 대보름날 아침에 부럼을 깨면 부스럼이 나지 않고, 귀밝이술을 마시면 일 년 내내 좋은 소식을 듣는다고 하여 권한다. 또 더위를 팔면 그 해 여름 더위를 피할 수 있고, 오곡밥은 세 집 이상 타성바지 집의 밥을 먹어야 그 해 운수가 좋다고 한다. 입춘(立春)에는 보리점을 치는데, 보리뿌리를 캐보아 뿌리가 세 가닥 이상이면 그 해 보리농사가 풍년이고 두 가닥이면 평년작, 한 가닥이면 흉년이 든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