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자미 시인

마크 로스코-나희덕

적갈색 위에 옅은 빨간색이 스며들 때
적갈색 위에 검은색이 번질 때
면은 또 하나의 면을 향해 나아간다
안간힘으로
색이 색을 찢고 나오고
색면들 사이로
불에 타버린 입술을 무어라
달싹거리고

마음을 소등한 자에게만 보이는
희미한 빛은
끝내 비밀을 누설하지 않는다

적갈색에게로 가는 검은색,
그가 죽음을 향해 스스로
걸어들어 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벽이 간신히 못을 삼키듯

검은색 위에 더 짙은 검은 색이
내려앉을 때
검은 색이 비로소 한줄기 빛이 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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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닿기 전에 먼저 제목부터 살피면 시가 한층 환해집니다. Mark Rothko는 러시아출신 화가로 추상표현 선구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거대한 캔버스에 색감만으로 모호한 경계를 인간의 근본적 감성을 표현하는 그림을 그렸습니다. 20세기 가장 유명하고 성공한 예술가로 그의 작품은 세상에서 가장 비싸게 경매되고 있지만 정작 화가는 1970년 추운 겨울날 아침 맨해튼 작업실에서 석연찮은 죽음을 맞았습니다. 미술적 지식의 오류를 범하기 전에 그림에 대한 설명은 이쯤에서 그만두고, 시인은 아마 그의 칼라필드 작품을 앞에 두고 화가를 생각하는 듯 합니다. 그가 몰두한 붉은색, 갈색, 고동색, 검은색에서 ‘마음을 소등한 자에게만 보이는 희미한 빛’을 ‘그가 죽음을 향해 스스로 걸어들어 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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