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서각(시인·문학박사)

문장에서 물음표와 느낌표가 없다면 그 문장은 얼마나 삭막할까? 물음표의 다른 말은 왜(?) 라고 할 수 있다. 느낌표의 다른 말은 아(!) 라고 할 수 있다. 물음표와 느낌표는 남남이 아니다. 왜(?)라는 물음이 있었기에 아(!)라는 공감과 감동이 있었다.

물음표와 느낌표가 없는 삶은 또 얼마나 삭막할까. 물음표는 과학과 철학을 낳았고 느낌표는 종교와 예술을 낳았다. 과학이 있었기에 인간의 삶이 편리하고 풍요로울 수 있었고 예술이 있었기에 감동이 있는 삶을 살 수 있었다.

왜라는 물음을 가졌던 사람들에 의해 인류의 문명은 진보할 수 있었고 우리는 그들을 위인이라 부른다. 왜라는 물음표 없는 삶은 생존에 지나지 않는다. 보다 사람다운 삶을 살기 위해서는 살아가면서 만나는 것들에 대해서 언제나 왜라는 물음을 던질 필요가 있다.
내가 지금 입고 있는 이 옷은 누가 만들었을까? 내가 먹는 한 그릇의 밥은 어떤 농부가 농사지은 쌀로 지은 것일까? 이런 물음표 하나로도 우리는 나 아닌 타인에 대한 고마움을 갖게 되고 매사에 감사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일본이 우리를 침략해서 온갖 억압과 수탈과 만행을 저질렀던 일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왜 일본은 위안부 문제에 대해 책임이 없다고 하고 청일전쟁 때 강제로 점거했던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하는가? 일본인 개개인은 모두 예의바르고 착한데 일본이라는 나라는 왜 그럴까? 왜라는 물음에 대한 답을 찾으려 노력한다면 아 그렇구나 하고 느낄 수도 있다.
1945년 일본이 패망한 후 연합군은 일본에 대한 죄를 제대로 묻지 않았다. 독일과 프랑스가 히틀러의 나치 전범을 처벌했던 것과 비교해 보면 너무나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본 역사 교과서에는 일본의 만행이 기록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일본의 젊은이들은 일본 식민지 침략의 잘못을 알지 못한다. 잘못을 알지 못하니 반성하고 사죄할 리가 없다. 
국정교과서가 폐지되었다. 지난 정부는 왜 그토록 무리해서 역사교과서를 국정교과서로 하려고 했던가? 검인정 교과서와 국정교과서의 다른 점은, 국정교과서는 검인정에 비해 일제강점기와 박정희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서술하고 있었다.

우리도 일본과 사정이 다르지 않다. 해방 이후 수립된 대한민국 정부는 친일파를 정부 요직에 기용해서 친일파는 사실상 대한민국의 주류(mainstream)가 되어 오늘에 이른 것이다. 그래서 친일 교과서가 필요했던 것이다. 왜라는 물음은 유익하다. 왜라고 묻는 학생은 학교 성적도 좋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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