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서각(시인·문학박사)

옛날 어느 나라 왕궁에 공주가 살았습니다. 왕궁은 파란 기와로 지은 집이었습니다. 이 나라는 원래 왕국이 아니라 공화국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녀 아버지가 기마병을 몰고 와서 공화국을 무너뜨리고 스스로 왕이 되었습니다.

아버지가 왕이 되자 그녀도 공주가 되었습니다. 이웃 나라들은 민주공화국이었지만 그는 스스로 왕이 되어 그의 통치에 반대하는 자들을 역당이라는 누명을 씌워 법의 이름으로 주리를 틀고 참하였습니다.

왕의 권력은 절대적이었습니다. 공주는 그런 부왕의 통치를 보며 궁궐에서 자랐습니다. 모든 것은 아랫사람이 알아서 해주고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공주는 보통사람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었습니다.

다만 거울을 보며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니? 하고 물으면 거울은 공주가 제일 예쁘다고 대답했을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공주는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예쁘고 자신의 생각만이 옳다고 믿게 되었습니다.

절대 권력은 끝이 있게 마련입니다. 먼저 왕비가 괴한이 쏜 화살에 맞아 서거했습니다. 감히 왕비를 시해하는 나쁜 놈이 있다는 사실에 공주는 놀라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눈물로 세월을 보냈습니다. 그때 이상한 주술사가 나타나서 달콤한 말로 공주를 위로했습니다.

주술사는 공주의 말에 추호의 거스름이 없었습니다. 공주는 세상에 믿을 사람은 오직 주술사 한 사람 뿐이라 여겼습니다. 아메리카라는 큰 나라 사신의 장계는 주술사가 공주의 몸과 마음을 온전히 지배했다고 기록했습니다.

왕비가 서거하자 공주는 왕비의 구실을 대신했습니다. 공주의 권위가 한층 높아진 셈입니다. 얼마 후 부왕도 신하의 칼을 맞고 붕어하게 되어 공주는 왕궁을 떠나야 했습니다. 얼마 후 백성들은 공주가 불쌍하다며 공주를 공화국의 통치자로 추대했습니다. 그래서 공주는 다시 파란 왕궁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물론 공주가 통치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백성도 있었지만 그들은 적당으로 분류되었습니다.

그간 주술사도 세상을 떠나서 주술사의 딸이 공주의 시중을 들었습니다. 공주는 오로지 주술사의 딸의 말만 믿고 나라를 다스렸습니다. 행실이 올바르지 못한 주술사의 딸은 공주를 움직여 나라 일을 마음대로 농단하였습니다. 백성들은 이게 나라냐고 하며 촛불을 들고 왕궁 앞마당에 모여 밤을 샜습니다. 원로원의 결정으로 공주는 궁에서 쫓겨나고 다시 포도청 옥사에 갇히는 몸이 되었습니다.

공주는 자기만이 옳다고 여겼기에 자기 말에 토를 다는 것을 견디지 못했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나쁜 사람 또는 배신자라 하고 가차 없이 찍어냈습니다. 다른 왕자와 공주, 충성스런 신하도 한 마디만 토를 달면 나쁜 사람이 되었습니다.

포도청 옥사에 갇혀서도 옥바라지하는 신하 가운데 토를 다는 자가 있으면 내쳤습니다. 그리하여 공주 곁에는 아무도 없게 되었습니다. 늘 공주가 불쌍하다고 하던 백성들의 말이 옳았습니다. 공주는 참으로 불쌍하게 되었습니다.

저작권자 © 영주시민신문(www.yjinews.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