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흥기(소설가.본지논설위원)

칠십년대는 불안과 두려움이 드리워진 시대였다. 온 사회가 숨을 죽인 한겨울의 동토처럼 어두운 때였다.

그 무렵에 인기 가요 40여 곡이 금지곡이 되어 방송 불가는 물론 여느 사람들도 부를 수 없었다. 노래로서는 폐기된 것이나 다름없다. 금지곡을 부르면 체제에 불만을 품은 것으로 간주되고 불순한 사람으로 낙인찍혔다.

사십여년 세월이 지나고 보니 금지곡이 된 사연이 어처구니가 없어 웃지 않을 수 없는 코미디를 떠올린다. 한편, 어찌된 사람들이기에 머릿속에 사람 억압하고 괴롭힐 생각만이 가득 차 있는지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더 무섭다는 성현의 말이 떠오른다.

금지곡으로 재갈을 물릴 바엔 헛말일망정 고개를 끄덕일 그럴듯한 이유를 내놓으면 잠시나마 속아 넘어갈 텐데 제 멋대로의 순 억지이다. 가수 한대수가 부른 「행복의 나라로」는 금지곡이었다. ‘행복의 나라로’라는 곡목이 지금은 행복하지 않기에 하는 말이라는 것이다.

이 나라를 두고 행복하지 않다는 노래를 불러 불온하다는 희한한 논리이다. 가수를 불러 나라를 부정적으로 보는 저의가 무엇이냐고 다그쳐 물었다. 무슨 근거로 당시의 현실이 행복하다는 것인지 할 말을 잃는다. 한 술 더 떠 ‘행복의 나라로 갈 테야’라는 노랫말은 필시 북녘을 동경한다는 궤변을 늘어놓아 사상까지 의심하여 금지곡에다 꽁꽁 묶었다.

이장희가 부른 「불 꺼진 창」은 선정적이라는 것이 금지곡이 된 이유이다. 창문에 불이 꺼졌다는 표현이 성적인 행위를 연상시킨다는 것이다. 불 꺼진 집이기 때문에 음란한 행위를 떠올려 외설적이라는 말이었다. 금지곡이 된 이유치고는 엉뚱하고 비약적이다. 실소가 나올 것만 같다. 도둑이 제 발 저리다고 자기네가 불만 끄면 문란한 소행을 저지르기에 하는 말일지도 모른다. 권위주의에 사로잡혀 못된 소행을 자행하는 모습이 눈에 선히 보이는 듯하다.

「키다리 미스터 김」은 이금희가 부른 노래였다. 좀 빠른 속도의 멜로디와 풍자적인 노랫말이 재미있어 요즘에도 대중의 사랑을 받는다. ‘키다리 미스터 김’은 키가 작은 최고 권력자의 기분을 언짢게 하기 때문에 금기의 노래가 되었다. 흰 얼굴을 예찬한 가요가 있다면 이 역시 금지곡이 되어야 한다. 그 권력자의 가무잡잡한 안색은 분명 하얀 박꽃은 아니었다. 최고 권력자의 마음에 드는 노래만 짓고 불러야 한다는데 권력을 추종하는 해바라기가 되어 아첨하는 무리들의 기이한 행태이다.

통기타를 치면서 시원스러운 목소리로 거침없이 부르는 송창식의 「왜 불러」는 밉보인 한 영화의 배경음악인데다가 반말 투에 예의가 없다고 해서 금지곡이 되었다.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 팬들의 기억 속에 더욱 깊이 새겨진 가수 배호에게도 금지곡이 있었다. 그의 가라앉은 듯 묵직하면서도 외로움이 넘쳐날 듯 호소력 있는 노래는 오늘날에도 못 잊어 하는 사람들이 많다. 「신토불이」를 부른 가수 배일호는 배호를 그리워하여 일자를 더해 배일호를 예명으로 지었다고 고백했다.

배호의 「영시의 이별」은 절규하는 듯 고독한 저음의 목소리가 가슴을 울리는 명곡이었다. 하지만 자정까지 노닐다가 이별을 하는 것은 통금 위반이라는 잠꼬대 같은 이유로써 이 노래를 금지곡으로 결정했다. 소설 속 허구의 인물과 동명인 사람이 ‘왜 나를 악인으로 그렸느냐’고 항의하는 것과 흡사하다.

가수 김상희의 「단벌신사」는 이북에서 ‘대한민국의 인기 가수가 옷이 한 벌 뿐이라는 노래를 했다’라고 악의의 선전을 하는 바람에, 「어떻게 해」는 시위하는 대학생들이 쫓기다가 뒤돌아 경찰을 겨냥해 ‘어떻게 해’라고 놀리듯 말한 것이 빌미가 되어 금지곡이 되었다. 별의별 되잖은 이유를 둘러대어, 금지곡이 된 까닭을 새길수록 웃음이 나올 것만 같다. 못된 쪽으로 잘 돌아가는 머리를 좋은 일 하는 데에 쓰면 얼마나 좋을까.

예술 문화 활동에서 무엇을 표현거리로 삼든 이를 문제 삼을 수는 없을 것이다. 소재를 예술적으로 형상화했느냐의 여부를 따질 수는 있겠지만. 그것도 권력이 아니라 대중과 비평가가 진위를 가려야 한다.

천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괴물』의 주연 배우 송강호도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올랐다. ‘세월호 정부 시행령 폐기 촉구 선언’에 동참한 탓이다. 천여만명이 관람한 영화 『변호인』에 주연으로 열연한 것도 검은 리스트에 이름이 오른 데에 영향을 주었을 것 같다.

폭압적인 권력에 희생당하는 가난한 청년을 변호하는 이른바 인권 변호사를 그린 ‘변호인’에 출연한 이후 송강호는 대본을 못 받았다고 한다. 검정색 리스트에 이름이 오른 이외의 다른 이유는 없을 것이다. 은밀히, 교묘하게 얼마나 영화계를 압박하고 통제했는지 짐작이 간다.

새천년이 밝고도 20여 년이 지나가고 있다. 무슨 근거로 블랙리스트를 작성했는지 변명이라도 듣고 싶다. 어떤 의식을 가진 사람인지 속내를 들여다보고 싶다. 5년 동안 한시적으로 맡긴 권력을 평생토록 제 것인 양 여겨 국민을 을러대는 꼴이다.

21세기 문턱을 넘어섰는데도 칠십년대로 착각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시대감각이 영 우둔하여 딱하다. 아니 분노할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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