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람]도장으로 40여년의 삶, 영주1동 신태준씨

도장기술, 한자 배운 시간들
내 삶의 길을 찾게 해줘

“수요가 적은 도장, 인쇄지만 건강이 허락하는 날까지 한 우물은 계속 파야죠”

영주1동 영주시의회 앞에서 1978년 문을 열고 36년 한자리에서 도장, 인쇄를 업으로 살아가고 있는 신태준(60)는 우리 주변에 대부분의 도장집들이 문을 닫아 그 수요가 적은 가운데에서도 수작업으로 도장을 만들어가고 있다.

“예전에는 수작업만으로 도장을 만들었지만 지금은 눈도 어두워지고 막도장은 컴퓨터로 어느 정도 작업할 때도 있고 마무리는 수작업으로 합니다”

신씨는 도장을 배우게 된 계기를 말하면서 자신은 영주동부초등학교 23회 졸업생이라고 했다. 가정형편이 어려워 배우고 싶어도 중학교를 갈 수가 없었다고 했다.

“너무 배우고 싶어 14살 때 당시 문화영수학원이란 곳에서 청소를 하면서 영어를 배웠어요. 저는 3살 때 소아마비를 앓아 3급 장애인인데 몸도 불편하니 기술도 배울 겸 학원원장님이 ‘영일당’이라는 도장집에서 일을 배워보라고 권유하셨죠”

신씨는 4년 동안 낮에는 도장집에서 저녁에는 학원에서 영어를 배우면서 공부의 끈을 놓지 않았다고 했다. 이후 1973년 19살이 되던 해 장춘당약국 앞에서 운영한 석판사 가게 안에 문명당 도장포를 열고 가로, 세로 1m가 채 되지 않는 작은 책상에서 도장을 새겨 팔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하면 4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렸네요. 석판사에 있던 5년 동안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참 많은 것을 공부하고 깨우친 시간들 이었어요”

그는 석판사에서 문집, 족보를 만드는 것을 도우며 한자를 익혔다면서 1976년 9월 2일이라고 적힌 자신이 베껴 쓴 옥편을 꺼내보였다. 또 정갈하게 붓글씨로 쓴 오래된 몇 권의 메모들도 보였다.

“배움이 길지 않아 무엇이든 배워야겠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했었습니다. 그때 배운 한자들이 일하는데 많은 도움이 됐고 지금도 항상 뭐든 적게 됩니다”

그의 노트들에는 영주동 주공아파트 주변을 산책하면서 곳곳에 세워진 비석의 글귀, 삼판서 고택이나 여행길에 있던 글귀들이 적혀있었다. 4~5년 전부터는 가을이면 아파트에 떨어져있는 낙엽을 주워 붓글씨로 쓴 글 등이 가게한쪽에 장식돼 있었다.

“예전에는 가게가 바빠 주문받은 다음날 전달하기도 했어요. 목도장의 경우는 수작업으로 4~5분정도 걸리는데 지금은 눈도 나빠져 어려움이 있죠. 인쇄도 수요가 많았는데 세월이 흘러 요즘은 웬만한 것은 프린터로 해서 주문양이 많지 않죠”

그는 도장, 인쇄업이 쇠퇴해 적자 운영이 되면서 금연, 술, 마음 정리를 위해 교회에서 세례도 받았다고 했다. 얼마 전 부친상과 장모님 상을 연이어 치루고 마음이나 경제적으로 더 힘든 시점에 이르렀지만 새로운 길을 가기보단 꿋꿋하게 평생의 일을 지키고 있다고 했다.

“가게 앞 은행나무가 심어지는 것도 보고 그 나무가 오랜 세월 하늘 높이 올라가는 것도 보았네요. 철탄산을 바라보면서 인생의 뒤도 돌아보고 앞날도 생각하는데 참으로 오랜 세월을 용케 버텨왔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건강이 허락하는 날까지 굳건하게 하던 일 지켜야겠죠”

신씨는 알뜰살뜰 가정을 잘 보살펴 감사한 마음이 든다는 아내 김상희(57) 씨와 1981년 결혼해 1남1녀를 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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