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인터뷰/영주를 말한다 - 영주경찰서 장대봉 서장

사십여 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는, 그는 이미 경찰이 아니었다.「昏定晨省」-혼정신성, 자식이 아침저녁으로 부모를 섬긴다. 禮記의 曲禮 편에서 따옴이다. 그는 이 말을 고향으로 품고와 영주시민에게 드리는「서장 인사말」의 뼈 말로 사용했다. 이것이 그의 마음의 전부다. 그가 장 대봉(張大鳳. 59)이다. 그는 영주경찰서장이다.

삼십여 세월동안 경찰의 땀에 젖었을 그에게서, 도대체 그 냄새가 나지 않는다. 평생 그와 함께했을 제복도, 계급장도, 명령도 고향이란 단어에 미친 그를 옥죄지 못하였다. 그래서 그는 맑아 보인다. 젊은 시절의 청운의 꿈과 그의 삶의 전부였던 국가는, 이제 그에게는 고향에 돌아오기 위한 긴 여정이였을 뿐이다. 그는 그의 전부였던 경찰을 고향 영주에 대한 봉사로 마감하려 한다.

몇권의 古書, 맑은 마음을 권하는 뜻이 적힌 액자, 그리고 원탁뿐인 그의 간솔한 집무실에서 대담을 시작했다. 온화한 표정으로 말문을 연다.

“家親의 가르침으로 경찰을 택했습니다.”

첫 대면이 경찰같지 않음으로 다가와, 왜 경찰이 되었는지가 궁금했다. 전역 후 직업 선택에서, 나랏일을 최우선으로 하라는 어른의 명을 따랐다. 그는 공군 대위로 전역했다.

입문은 권유로 했지만, 경찰은 그의 종교가 되었다. 그것은 그의 모든 삶이였다. 초급간부시절 국무총리를 윗분으로 모실 때는 물음에 답하기 위해 책으로 밤을 새웠고, 성동경찰서장 시절에는 청계천 복원공정의 최대난제인 노점상 문제로, 이 명박 시장을 도와 가정을 잊고 살았다.

그는 최선을 다했고, 항상 동기생의 선두였다. 시대의 피해자가 아니냐는 질문에 그는 그저 웃는다. 촉망받던 엘리트 간부로서 승진좌절의 아쉬움이 왜 남아있지 않겠는가? 그러나 그는 담담히 경찰이력을 이야기한다. 편안해 보인다. 여기가 고향이여서 인가?

경찰업무 성격상 타지근무가 편할 터인데 왜 고향으로 자원했느냐고 물었다.

“저의 전부였던 경찰을 어떻게 마무리할까 고민할 때, 고향이 손을 내밀어 주었습니다. 비록 진급에서는 불운했지만 요직근무에서 얻은 많은 경험과 그동안 쌓았던 인적 네트워크등, 저의 삼십년 과거를 고향을 위해 쓰고 싶었습니다.”

경찰청장의 꿈은 출신지의 숙명으로 잃어버렸다. 그러나 그는 고향에서 하는 「섬김의 서장노릇」을 보람 있어 하는 눈치다. 그래, 우리 영주가 그에게 명예치안총감을 달아주자.

“와서 보니 아쉽고 안타까운 것도 있어요. 글로벌 경제위기에 영주도 비켜 갈 수는 없지만, 그럴수록 시민이 하나가 되어야지요. 이 영주에서 제가 할일이 무엇인지 밤세워 고민 했어요. 화합이 우선입니다.”

영주의 현실로 話題가 옮겨지자 그는 매우 신중해졌다. 그리고 화합하지 못하는 일부 시민현상에 안타까움을 숨기지 않는다. 이것이 그가 꿈꾸던 고향은 아니었는데... 고향을 지킨 者로 부끄럽다.

고향에서 그가 제일 먼저 만난 곳이 노벨리스 코리아 화물연대 파업현장이였다. 상부의 채근에도 불구하고, 희생을 최소화하기 위하여 자제를 거듭하여, 원만한 해결이라는 결과를 얻어냈었다.

사태 장기화에 대한 엄청난 부담도, 일부 참모의 진언도, 업무의 편이성도 「고향의 일」이기에 그는 염두에 두지 않았다. 그의 관심은 파국을 막아 영주경제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이었다. 여기가 그의 고향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파업자 한명 한명이 고향 선후배입니다. 또 그들은 한 가정의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들입니다. 상부의 질책보다도 고향이란 점이 더 제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상명하복의 조직 특성상 매우 어려운 결정이였다. 그는 직을 걸었을 것이다. 영주에 대한 그의 짝사랑 때문인가? 「혼정신성」이 헛 인사말이 아니었다.

나에게 다가오는 그의 느낌은 가장 경찰다우면서, 가장 경찰스럽지 않다는 것이다. 파렴치범이나 민생침해 사범에 관해서 칼날 같은 소신을 펴다가도, 농주 한 잔한 촌부의 음주운전 단속에 대한 설명에는 아버지 얼굴이 생각나게 한다. 그이기에 가능한 융통이고 마음 씀씀이다. 고향에 잘 왔다고 환영해주고 싶다.

그의 취임 이후 영주경찰서에는 많은 변화를 감지할 수 있다. 일반시민과의 매끄럽지 못한 벽은, 경찰이 갖고 있는 오래된 이미지로 꼭 풀어야할 숙제이다. 시민을 섬기기로 작정한 그로서도 그 점을 많이 고심했다. 그 해결책 중 하나가 「치안성과보고회」다. 전국 유일의 찾아가는 경찰행정의 표본이다. 그것이 벽을 허물고 있다. 대단한 착상이다.

“무궁화 포럼으로 대민관련사항을 연구 토론도 하고, 직원간의 애로사항 수렴 등의 의사소통 공간으로 활용하여, 시민에게 신뢰받는 조직으로 거듭나기 위해 혼신을 다 하고 있습니다.”

그간 死藏 되다시피 한 무궁화포럼 등을 활성화하여, 시민을 위하는 경찰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영주경찰서를 보았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집행의 엄정함으로 법질서확립이 경찰의 최상위개념임에 소홀하지 않는다. 그 중심에는 장 대봉이 있다. 수고를 아끼지 않는 영주경찰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어릴 때부터 정직, 성실, 최선을 다하라는 가르침을 받고 자랐습니다. 그것이 평생의 좌표가 되었습니다.”

계급조직인 만큼, 매우 치열했을 승진경쟁에서 그가 어떤 처신을 했을까 짐작이 간다. 그의 조부는 그의 사상의 밭이다. 어린시절 그로부터 한학과 함께 올곧음도 배웠다. 그런 그이니, 진급경쟁에서 최선을 다해왔던 자신만 믿고, 正道만 취했을 그의 모습이 상상된다. 청결한 지금의 계급장이 더 자랑스럽다는 말을 해주고 싶다.

끝을 맺으며 영주에 대하여 한마디 부탁했다.
“시민이 한마음이 되어서 선비고장으로 명성을 이어 갔으면 좋겠습니다.”
제복 탓인가? 영주의 소망을 말하는 그에게서 애절함이 느껴진다. 그의 모든 판단의 기준은 영주발전이다. 그의 머릿속은 영주가 전부다.

누구나 그러하듯이 그도 삼십년을 떠돌면서, 봄나물 팔아 차비 해주시던 어머니가 계시는 고향을 한시도 잊지 못했다. 首丘初心이라 했던가? 영주는 그의 여우굴이다. 모내기하던 논두렁과 나무하던 뒷산의 추억이 그를 마지막 봉사지로 고향을 택하게 했다. 그는 귀내가 고향이다. 그리고 그는 고향에 온 값을 하기위해 혼신을 다 하고 있다.

이제 고향은 그에게 더 이상 추억이 아니다. 영주를 위해 정성을 다하는 그가 아름답다. 얼마가 지나가고, 그가 노래할 그의 歸去來辭가 궁금하다.

대담정리/서중도<영주시민포럼 대표, 전 소백신문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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