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마을탐방[199] 부석면 우곡리 ‘명암정’

명암정 마을 전경

새들이 짝을 부르는 소리에서 연유한 鳴巖亭
숲과 바위와 새소리 어우러진 아름다운 마을

 

부석면 명암정 가는 길
명암정은 부석면 우곡리 남쪽 낙하암천(落霞巖川) 건너 숲속에 있다. 상석리 백로도래지 전망대에서 부석방향으로 1.2km가량 가면 명암정 승강장이 나타난다. 여기서 우측 농로로 접어들어 우곡교를 건너면 야산 아래 옹기종기 자리 잡은 마을이 명암정(鳴巖亭) 마을이다.

지난 8일(어버이날) 명암정에 갔다. 이날 마을회관에서 김덕수 노인회장, 정승극 부회장, 권점순 할머니, 김복순 할머니 그리고 여러 마을 사람들을 만나 마을의 내력과 전설을 듣고 왔다.

명암정 표석

역사 속의 명암정
우리나라 행정구역을 면리(面里)로 정비한 때는 조선을 8도제로 나누었던 1413년(태종13년) 이후이다. 이 무렵 명암정 지역은 순흥도호부(順興都護府) 2부석면에 속했다.

당시 2부석면에는 감곡리(鑑谷里,감곡1리), 성남리(城南里,성남), 고산리(孤山里,甘山池근처), 감산리(甘山里,감살미), 귀석리(龜石里,알수없음), 화부리(花釜里,화감), 용암리(龍巖里,용암) 등이 있었는데 명암정은 감산리에 속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 후 조선 말 1896년(고종 33년) 행정구역을 8도제에서 13도제로 개편할 때 순흥부가 순흥군으로 격하되고, 2부석면이 용암면으로 바뀌면서 명암정은 순흥군 용암면 우곡리(愚谷里)가 된다.

당시 행정구역에 보면 우수골은 도강면 우곡리가 되고, 명암정은 용암면 우곡리로 나온다. 1914년 일제(日帝)가 행정구역을 개편할 때 순흥군, 풍기군, 영천군을 영주군으로 통합하고, 순흥군의 봉양면(소천임곡지역), 도강면(도탄보계지역), 용암면(감곡화감지역)을 부석면으로 통합할 때 명암정은 부석면 우곡2리가 되었다가 6.25 후 우곡리로 통합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명암정 경로당

지명유래
7년전 이 마을로 귀농한 김선복(67) 씨는 “명암정이란 마을 이름이 참 이쁘다”고 말한다.

김덕수 노인회장은 “마을 이름이 명암정이된 것은 450년 전 손흥경이란 선비가 동구(洞口) 바위 위에 두어 칸 정자를 짓고 낚시를 하면서 풍류를 즐겼는데 그 정자 이름을 자신의 호를 따 ‘명암정(鳴巖亭)’이라 한데서 유래됐다”면서 “울 명(鳴)자에 바위 암(巖)자를 쓴 것으로 봐서 이곳에 새(鳥)가 많고 바위(巖)가 많은데서 명암(鳴巖)이 나온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마을 문재윤(69) 씨는 “명암정에는 이름 모를 새들이 하루종일 짝을 부르는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며 “바위가 많은 것도 마을의 상징이고, 바위 위에 새들이 날아들어 지저귀는 풍광을 ‘명암(鳴巖)’이라 한 것 같다”고 말했다.

듣고 보니 ‘그럴듯하고 재미있다’는 생각이 든다. 손흥경의 행장에 「명암(鳴巖)아래 옮겨 살았다」라는 대목에서 당시 이곳 지명이 ‘명암’이라는 것을 알 수 있으며, 흥경이 이곳 지명을 자신의 호(號)로 썼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또한 ‘명암’은 새들이 짝을 부르는 소리(鳴)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여 진다.

명암정이 있던 자리

경주손씨 입향 내력
경주손씨가 우리고장에 터 잡은 것은 조선 초 1470년경이다. 상주에 세거하던 계림군(鷄林君) 손등(孫登,3세)의 아들 사장(士章,4세)이 당시 영천(옛영주)의 북쪽 골내(현 봉화화천)에 옮겨 살면서 비롯됐다. 

이후 사장의 아들 근(瑾,5세)이 중종 때 무과에 급제하여 부사가 되고, 근의 손자 난(蘭,7세)이 참봉을 지냈다. 난의 아들 중 3남 흥경(興慶,8세)이 당시 순흥부 도강면 지역으로 이거하여 터를 잡았다.

그 후 흥경의 아들 손약(孫약)은 생원시에 합격하였고, 손희(孫禧)는 직장을 지냈다. 흥경의 손자 손회종(孫會宗,1602-1667)은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고, 회종의 증손 손이웅(孫以雄,1740-1808)도 문과에 급제하여 예조정랑에 올랐다.

김흥경이 심은 느티나무

손흥경(孫興慶)은 누구인가?
흥경의 손자 회종(會宗)이 쓴 행장(行狀,일생의 행적)에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흥경(1543-1611)은 영천의 북쪽 골내(화천)에서 출생하여 선조2년(1568) 사마시에 합격했다. 사마에 오른 그해 퇴계 문하에 들어가 위기 실천의 도학과 성리를 탐구하는 참된 학문의 길에 들어서게 됐다.

얼마 후 양친이 병을 얻어 증세가 위독하매 (1570년경) 도산에서 물러나와 영천 북쪽 명암(鳴巖) 아래 옮겨 살면서 출세를 단념하고 어버이 봉양과 학문에만 전념했다.

1592년 임진왜란을 만나 왕이 피난하기에 이르자 의병을 일으켜 만취당 김개국을 의병장으로 삼아 곽재우 장군을 도왔다. 1598년 부친상을 당하고 이듬해 모친상을 당해 4년동안 여막에 거쳐하며 성묫길이 아니면 문밖을 나서지 않았다.

만년에 집 동편 절벽 위에 두어칸 정자를 지어 명암정(鳴巖亭)이라 이름지었다. 흥경은 늙을수록 도학을 즐겨 심경(心經), 근사록(近思錄), 주자대전(朱子大全)을 읽으며 심학(心學)에 침잠(沈潛)했다.

무덤실 전경

탑산업훈장 수상의 마을
김덕수 회장댁 거실에는 「산간지 쌀 증산왕, 1985년 동탑산업훈장 포상」이란 액자가 걸려 있고, 그 옆에는 부인 신태점 여사가 이의근 경북도지사로부터 표창장을 받는 사진이 걸려 있다.

김덕수 회장은 “산간지 쌀 생산 10a 당 809kg을 생산하여 증산왕으로 선정되어 동탑산업훈장을 수상했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부석초등학교 육성회장, 농촌지도자 부석면회장, 농촌지도자 영주시연합회장 등을 역임한 농촌지도자요 농업발전의 선구자다.

이 마을 이영철(82) 어르신은 “김덕수 회장은 우리마을은 물론 부석면과 영주시농업발전에 큰 공을 세운 농업인요 농촌지도자”라고 말했다.

김덕수 회장은 또 “저는 경주김가 27세손으로 선대는 평양 인근 고누골에서 집성촌을 이루고 살았는데 증조부(영련,24세)께서 일제 때 이곳으로 이거하여 처음 도탄에 잠시 기거하다가 명암정에 터를 잡아 5대째 세거해 오고 있다”고 말했다.

동탑산업훈장증

명암정 출신 인물
정승극 노인회부회장은 “마을은 작아도 선비정신을 이어받아 신학문을 일찍 받아들이고 자녀 교육에 혼신의 힘을 쏟아 국가적 인재를 배출한 마을”이라며 “교육부 차관과 국무조정실장 등을 역임한 이영탁(71) 세계미래포럼 이사장을 비롯하여 이세종(고) 교장, 권일영 교장, 김을성(고) 부석면장, 정동극(60) 의료보험심사평가원 이사, 김창경(52) 노무사 등 각계각층 지도자를 많이 배출했다”고 말했다.

김덕수 회장은 “지금도 명암정 바위에 깃발을 꽂았던 홈이(구멍) 남아 있다”며 “그 깃발은 선비가 사는 마을임을 나타냈다고 하며, 찾아오는 문인들이 명암정에서 학문을 논하고 풍류를 즐겼다는 이야기가 구전되고 있다”고 말했다.

명암정 사람들

명암정 사람들
기자가 명암정을 찾은 날 마을 앞 논에는 모내기 물이 그득하고, 밭에는 고추모종 심기가 한창이다. 명암정 회관 마당에서 김덕수 회장을 만나 회관 안으로 들어갔다.

회관 안은 여러 사람들로 시끌벅적하다. 김일동(65) 총무는 “명암정에 18집, 무덤실에 3집 등 모두 40여명이 살고 있는 작은 마을”이라며 “오늘 어버이날을 맞아 마을 사람들끼리 자축연을 열었다”고 말했다.

정광극(64) 반장은 “마을은 작아도 단합이 잘 되고 과학기술영농을 하여 소득이 높다”면서 “주로 사과, 고추, 콩, 생강, 벼농사가 주 농업”이라고 말했다.

강원도 영월에서 30살 때 이곳으로 왔다는 이상숙(88) 할아버지는 “1964년 겨울 어느날 마을에 화재가 나 5집이 모두 불탔다. 숟가락 하나 건지지 못한 어려운 처지를 당하자, 부석면 전체가 도움에 나서 서까래 하나, 숟가락 하나, 벽돌 한 장을 가지고 와서 다시 집을 짓고 일어 설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일제와 6.25를 겪은 권점순(85) 할머니는 “꼴두바우에서 소학학교 다닐 때 일제가 사람들 고문하는 장면을 보고 놀랐다”며 “6.25 때는 먹을 것이 없어 낮에 쑥 뜯어 저녁에 먹고, 저녁에 쑥 뜯어 아침 먹는 등 보릿고개를 넘어야 했다”고 말했다.

“나 같은 사람을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사람’이라 한다”는 김복순(81) 할머니는 “열아홉에 무덤실로 시집가 초가집 문간방으로 살림날 때 사발2, 양은솥1, 냄비1, 숟가락2, 박죽1 뿐이었다”면서 “가난의 세월 속에서도 5남매 잘 키워 지금은 아들 며느리 효도 받으며 잘 산다”고 자랑했다.

김규용(84) 할머니는 “물좋고 공기좋은 마을”이라고 자랑했고, 권금순(78) 씨는 “보릿고개를 넘을 때 누에치기가 번성했다”고 말했다. 김옥이(74) 씨는 “이장님과 노인회장님이 마을을 잘 이끌어 주셔서 힘나고 살기좋은 마을이 됐다”고 말했다.

김덕수 노인회장
정승극 노인회부회장
이상숙 어르신
이영철 어르신
김일동 노인회총무
권점순 할머니
김규용 할머니
김복순 할머니
권금순 씨
김옥이 씨
정광극 반장
문재윤 씨
이영탁 전 차관

이원식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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