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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신문]"한국 천주교 역사가 시작된 곳"…영주단산 아랫배나무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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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
등록일
2005-04-04 14:03:50
조회수
3077
[매일신문 2005.04.04 11:46:49]



한눈에도 지세가 범상치 않아보이는 경북 영주시 단산면 구구3리 아랫배나무실. 10여 호만 살고 있는 작은 자연부락이지만 이 곳은 천주교 성지로 널리 알려져있다. 한국 천주교회 창립(1784년)보다 30여 년 전에 이미 천주신앙을 받아들여 심신을 연마한 수덕자인 농은 홍유한(1726~1785) 선생의 유택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홍 선생은 비록 세례를 받지는 않았지만 천주교를 단순히 신학문으로서가 아니라 천지만물의 이치를 밝히는 종교로 대했다는 점에서 한국 가톨릭 창립의 밀알로 평가받고 있다.

유택지의 정문에는 1722년(경종24년)에 효자로 정려(旌閭)된 홍 선생의 조부 홍중명의 효자문 현판이 남아 있다. 현판 앞에는 ''일효자학생홍중명지문(一孝子學生洪重明之門), 뒤편에는 1726년(영주2년)에 사헌부 지평으로 증직되어 하사받은 ''증 통선랑 사헌부 지평 홍중명 지문(贈 通善郞 司憲府 持平 洪重明 之門)''이라는 글귀가 또렷이 새겨져 있다. 이 현판은 서울 아현동에 살다가 1757년 천주교 수계생활을 하기 위해 충청도 예산으로 이사갔던 홍 선생이 1775년 이 곳으로 이사올 때 가져왔다고 한다.

효자문 안에 들어서면 천주교 안동교구청이 1995년 홍 선생의 선종 210주년을 기리며 마련한 유적비가 성지임을 알리고 있다. 유적비 앞면에는 ''한국 천주교회 최초의 수덕자 풍산 홍공 유한선생 유적지'', 옆과 뒷면에는 ''홍유한 선생은 사방에서 찾아오는 손님이 가득해도 접대함에 소흘함이 없이 반드시 행자를 후히 주어 배웅했고 길에서 굶주린 사람을 만나면 주머니를 털어 주었고 늙거나 병든이를 만나면 반드시 말에서 내려 대신 태워다 주었고 남에게 절을 받을 때도 깍듯이 공경하여 답례했다…. 홍낙민(루까)을 비롯한 서한유, 홍거, 홍필전, 김만직, 이한기등 많은 제자를 배출했다. 고문(古文)을 잘하고 시(詩)에 능했으나 이곳에 온 후 글을 짓지 않았다. 그는 이곳에서 1785년 3월10일(음력1월30일) 60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10년 동안 철저히 칠극에 의한 천주교수계 생활을 했던 것이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천주교 안동교구 영주하망성당 정진훈 타데오 신부는 "홍유한 수덕자는 금육일은 몰랐지만 언제나 좋은 음식을 먹지 않았고, 많은 자선사업을 폈으며 30세 이후에는 내방 거처를 전폐하여 자녀를 낳지 않고 30년 이상 정덕을 지킨 수덕자라"며 "그의 영향으로 후손 중에 권철신, 홍낙민 등 13인의 순교자가 나왔고 그 중 6명이 103위 순교성인에 들었다"고 설명했다.

유적비 뒤에는 홍유한 선생이 10여년간 칠극(七克)의 수도생활을 했던 유택지가 있다. 유택지에는 1970년 후손들이 신축한 기와집 한 채가 덩그러니 빈 집으로 남아있다.

인근에 살고 있는 후손 홍도희(74·단산면 구구3리)씨는 "현재는 기와집이지만 30여년 전에는 유한 할아버지가 살던 ㅁ자형 초가집이 있었다"며 "초가는 방 5칸, 큰마루, 작은마루, 방앗간, 부엌 2칸, 대문간, 옆문, 마구간을 갖춘 전형적인 농촌 주택이었다"고 말했다.

우성호(50) 경북도의원은 "이곳은 한국천주교회의 역사를 시작한 곳이며 최초로 천주신앙을 수확한 장소인 만큼 국가문화재로 지정할 가치가 있다"며 "원형복원을 통해 최초의 수덕자를 기리는 성역화사업이 추진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종손 홍기홍(42·서울시 노원구 하계동)씨는 "천주교에서 성역화사업을 추진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소유권 문제에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면서 "유물은 경기도 퇴촌 청진암에 보관돼 있고 일부 천주교 관련 서적과 친필 서적, 송호 이익선생의 서찰등은 직접 소장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시는 안정~단산간 시도 3호선과 유택지를 연결하는 2.5km구간에 도로 확·포장공사(2차선)를 올 연말까지 완공키로 하고 추진중에 있으며 유택지 인근 부지를 매입, 주변정비사업을 벌이기로 했다.

선생의 묘소는 이 곳에서 50리쯤 떨어진 봉화군 봉성면 우곡약수터에서 10분 거리인 문수산 중턱에 안장돼 있다. 구전에 따르면 어풍(임금님의 묘터를 보는 풍수)이 터를 잡았다고 전해지고 있고 묘역은 1993년 발견돼 1998년부터 우곡성지로 조성됐다. 영주·마경대기자 kdma@imaeil.com
작성일:2005-04-04 14:03:50 220.64.205.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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