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봉(작가)

삽화 이석희

지난 2일, 이란 군부 실세인 솔레이마니 이란 혁명수비대 쿠드스 군 사령관이 이라크 바그다드 공항 인근에서 미군의 미사일 공습으로 사망했다. 미국은 그가 바그다드의 이라크 주재 미국대사관 습격을 주도한 인물이고 미국에 대한 공격을 준비 중인 인물이었다고 암살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있지만 이 사태로 중동지역의 위태롭게나마 유지되고 있던 평화가 일촉즉발의 위기를 맞고 있다.

이 공격이 단 한 사람의 병력 투입 없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이 충격을 주고 있다.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미국 본토에서 바그다드 상공의 무인기 드론을 조종하여 정확하게 타겟을 제거한 것이다. 동원된 무인공격기 MQ-9 리퍼는 ‘침묵의 암살자’로 불린다. 저공비행으로 레이더에 잡히지도 않고 소음도 없어 탐지하기가 어렵다는 뜻일 게다. 리퍼(reaper)라는 이름은 농기계인 예취기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죽음의 신 Reaper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헌터 킬러(Hunter Killer)라는 무시무시한 이름의 이 드론은 닌자 폭탄(Ninja bomb)이라는 움직이는 표적을 스스로 추적해 요격하는 미사일을 발사해 족집게처럼 타겟을 제거해버린다. 닌자(忍子)란 일본의 에도(江戶)시대의 침투, 파괴, 암살을 일삼던 낭인 집단을 말한다. 그 무인공격기의 표적이 될 수도 있는 사람에게는 은밀하게 다가오는 죽음의 공포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암살(暗殺)이라는 말에 붙어 있는 어두울 暗은 밝을 명(明)의 반대말이다. 공명정대(公明正大)한 살인이 아니라는 말이겠다. 그것은 정치적이나 사상적으로 반대편에 서 있는 상대를 비합법적으로 비밀리에 살해하는 행위를 뜻한다. 암살자와 암살을 의미하는 어쌔씬(assassin)과 어쌔시네이션(assassination)은 아랍어 ‘hashishin’에서 온 말이라고 한다. 아시다시피 해쉬시는 마약의 이름이다. 11세기 페르시아의 비밀결사 암살단에게 마약을 먹인 상태에서 적진으로 보냈다고 해서 붙어진 이름이라고 한다. 이 명칭이 십자군들에 의해 유럽으로 전해지면서 어쌔씬이라는 말이 암살자를 의미하게 되었다는 얘기다.

가장 인상적인 암살의 장면 중 하나는 기원 전 44년, 로마에서 일어났다. “주사위는 던져졌다(The dice is thrown)”라는 말을 남기며 군대를 이끌고 루비콘 강을 건넌 줄리어스 시저(율리우스 카이사르)는 넓어진 로마의 영토를 효율적으로 다스리기 위해서는 강력한 재정(帝政)이 필요하다고 여겼지만 공화정을 지지하는 원로원들의 생각은 달랐다. 그들은 토가(로마인들이 입던 옷) 속에 칼을 감추고 원로원에 등정하는 시저를 기다렸다. 그들의 칼을 받고 죽어가던 시저가 암살자들 속에서 그가 아들처럼 아끼던 브루투스를 발견하고 “브루투스, 너마저(You, too, Brutus)”라는 말을 비명처럼 남겼다고 한다. 브루투스는 그의 오랜 정부(情婦) 세르빌리아의 아들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가 그런 말을 남겼느냐에 대한 논란이 있지만 셰익스피어의 희곡 『줄리어스 시저』에는 그렇게 나온다. 시저를 사랑했으므로 분노한 로마 시민들 앞에서 배신자로 비난을 받은 브루투스는 “내가 시저를 사랑하지 않은 게 아니라 로마를 더 사랑했기 때문이다(Not that I loved Caesar less, but that I loved Rome more)”라는 명연설을 남기지만 이 역시 셰익스피어의 손끝에서 나온 말이긴 마찬가지다. 암살의 결과는 암살자의 의도와는 반대로 흘러가는 일이 드물지 않다. 시저는 폭정보다는 평화적인 타협을 선호했지만 그의 후계자 폼페이우스는 원로원의 정적(政敵)들을 무자비하게 제거해버렸기 때문이다.

아마 암살을 그린 가장 유명한 작품은 신고전주의 화가 쟈크루이 다비드의 <마라의 죽음(La Mort de Marat)>일 것이다. 프랑스혁명 당시 급진 혁명파 지도자 마라는 수많은 반대파들을 단두대로 보냈다. 온건 혁명파 지롱드당의 지지자였던 25세의 시골처녀 샤를로트 코르데가 욕조에 있던 그를 칼로 찔렀다. 다비드의 그 그림 속에서 욕조에서 고개를 늘어뜨리고 죽어 있는 노인을 본 파리 시민들은 분노했고 온건파들의 힘이 약화되는 계기가 되었음은 물론이다.

우리가 전쟁터에서 적군을 죽이는 행위를 살인이라고 부르지 않지만 과연 그것이 정당한가에 대한 윤리적, 종교적 관점은 언제나 논란의 중심에 있어왔다. 1차 대전과 스페인 내전에 참전했던 헤밍웨이의 말이다. “전쟁에서 그럴싸한 죽음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당신은 개처럼 죽을 것이다.”

미국의 솔레이마니 암살로 중동에 전운(戰雲)이 감돌고 있다. 더 이상 원한과 분노가 확산되지 않기를 불안한 마음으로 지켜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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