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서각(시인·문학박사)

한해가 가고 겨울로 접어드는 가로수 길에 낙엽이 지고, 앙상한 가지에 마지막 남은 잎새가 바람에 떨고 있는 풍경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열두 장 달력이 마지막 잎새처럼 한 장만 남았을 때, 한 장 남은 달력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한해 동안 분주히 살았지만 뚜렷한 결실없이 세월만 보냈다는 허전함에 거울 앞에 섰을 때, 거울 속에 비친 사람이 낯선 사람처럼 늙은 모습일 때, 우리를 매우 슬프게 한다.

우주에서 바라보는 지구의 모습은 아름다운 별이라 한다. 생명체가 살 수 있는 살아 있는 별이기 때문이다. 인간들이 편리하게 살기 위해 화석연료를 마구잡이로 사용해서 지구 생태계가 훼손되고 있다.

더구나 한반도에는 유람선을 띄우겠다며 강을 막아 녹조까지 만들어 놓았다. 그리하여 기상이변이 일어나고 지구가 점점 아름다운 빛을 잃어가고 있다. 미세먼지를 피하려고 마스크로 입을 막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는 거리 풍경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차를 몰고 가다가 보이는, 길에 남아 있는 죽은 짐승의 흔적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원래 그 길은 사람이나 짐승이나 자유롭게 다니던 길이었으나 사람만 다닐 수 있는 길로 만든 뒤 그걸 모르는 짐승들이 영문도 모르고 죽었으리라. 지상의 모든 생명은 귀하지 아니한 것이 없을진대 사람들의 이기심이 무고한 생명을 죽인 것이다. 그 죽음의 흔적 위로 무심히 달리는 외제 차의 모습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죽음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적은 임금에 시달리고 과로에 시달리다 죽은 비정규직 노동자가 남긴 컵라면 몇 개는 우리를 슬프게 한다. 사용자와 노동자가 있기에 생산이 이루어짐에도 사용자가 갑이 되고 노동자가 을이 되는 구도는 우리를 슬프게 한다. 그 갑이 갑질을 해대는 모습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을은 다만 그의 능력이 을이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사람의 무심함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그런 말을 하는 이가 내 동무일 때 우리를 더욱 슬프게 한다.

어느 날 갑자기 날아든 사랑했던 사람의 부음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우리 주위에는 자신의 이득만을 위해 사는 사람과 ‘더불어 함께’ 살아가려는 사람이 있다. 그가 자신을 희생해 가면서까지 정의로운 사회, 아름다운 세상을 위해 살았던 사람일 때, 우리를 더욱 슬프게 한다.

김수환, 권정생, 노무현, 노회찬, 장성두, 이런 이름을 떠올리며 ‘하늘은 왜 내가 좋아하는 사람만 데려가시는가?’라고 독백을 하면 슬픔이 더해진다. 사회복지센터에서 스마트폰 사용법을 배워서 가짜뉴스를 퍼 나르는 노인의 모습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자기편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사실 확인 없이 가짜뉴스를 신봉하는 노인의 모습은 대체로 우리를 슬프게 한다. 가짜뉴스를 진짜뉴스라고 믿고 ‘쌀값이 오르는 것은 문죄인이가 북에 쌀을 다 퍼주었기 때문’이라며 분개하는 노인의 모습은 우리를 더욱 슬프게 한다. 온갖 슬픔을 간직한 채 또 한해가 가고 있다. 잘 가시라, 무술년이여.

 

저작권자 © 영주시민신문(www.yjinews.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