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규 할머니

*영주여고 학생들이 2016년부터 3년째 우리고장 어르신들의 삶을 정리하는 ‘자서전쓰기 프로젝트’를 진행해오고 있습니다. 영주시립양로원 ‘만수촌’, 부석면 남대리, 영주시노인복지관 어르신들의 삶을 기록해 두 권의 책으로 엮었습니다. 이에 본지는 자서전의 내용을 본래의 의미가 훼손되지 않는 선에서 다시 정리해 싣습니다. <편집자 주>

지금부터 할 나의 이야기는 누군가에게는 어느 늙은이의 심심한 글일 수도 있을 것이고 다른 이에게는 어릴 적 잠들기 전 읽었던 동화처럼 포근하거나 흥미롭게 느껴질지도 모르며 또 다른 이에게는 당시 우리들의 삶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소통의 기회로 다가올 수도 있다.

이렇듯 읽는 이에 따라 나의 이야기는 각각 다른 느낌으로 알록달록하게 남을 것이다. 지금부터 아흔이 넘은 늙은이의 숨소리 같은 이야기, 그러나 내겐 너무나 소중했던 시간들의 흔적을 더듬어 보고자 한다.

▲ 일제 강점기부터 해방, 그리고 전쟁
나는 일제강점기, 순흥에서 바를 정, 배울 규를 써서 바르게 배우라는 뜻의 소중한 이름을 갖고 3남 2녀 중 장녀로 태어났다. 내가 주로 하는 일은 뒷산의 목화를 따서 실을 만들어 베를 짜는 일이나 옷감과 옷을 갖고 바느질을 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 시절 다른 이들에 비해 조금은 순탄한 길을 걸어왔다고 생각하지만, 나라를 잃었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지 않은가. 우리는 일본인의 감독 하에 일했기 때문에 가끔씩 일본인들이 감시를 나올 때면 어디라도 좋으니 이곳을 벗어나 도망가고 싶었다. 그 순간이면 자유로운 바람과 새들이 어찌나 부러웠던지….

먹구름이 해를 싹 가려버리듯 볕이 들지 못했던 그 어두운 시절도 세월을 이길 수는 없었다. 동네의 남자들이 징병에 끌려가기 전 작게나마 송별회를 하던 중, 누군가 뛰어 들어오며 “아이고 동네 사람들, 드디어 해방이랍니다!” 라며 기다리고 기다리던 소식을 알려왔다.

그러나 해방의 기쁨도 잠시, 6.25 전쟁이 났고 우리 마을에도 큰 굉음과 함께 폭격이 떨어진 것이다. 우리는 아침 일찍 모두가 각자 중요하다 싶은 물건을 독에 넣은 후 땅에 파묻어 두고, 바로 피난을 떠났다. 아래로 또 아래로 개미 떼처럼 우르르 몰려가던 중, 우리 마을에서 들리던 총소리와 피난 온 지역에서 들리는 총소리가 거의 다를 바가 없었다.

아무것도 없이 힘들게 고생길을 걷는 것보다는 집으로 돌아가는 게 더 나을 것이라 생각이 되어 우리 식구들은 문단으로 돌아왔다.

▲ 조금 늦은 결혼
우리 어머니께서 돌아가셨을 무렵인 내 나이 12살 때, 그때는 일제강점기였지만 우리 집은 다른 집보다는 덜 어려운 형편이었다고 생각한다. 먹을 것 하나 없어 많이들 굶어 죽었던 시절이었지만 최소한 우리 식구들은 밥을 굶었던 기억은 없다.

딱히 부족한 것 없던 집안 환경 때문인지 아니면 집안 어른들께서 날 시집보내고 싶지 않으셨던 건지 정확한 이유를 알 수 없지만, 그 당시로 치면 조금 늦은 나이인 18살에 혼인을 올리게 되었다. 나는 우리 집인 순흥을 떠나 봉화 문단까지 가게 되었다. 난생 처음 가본 곳이라 상당히 겁도 났었고 낯설어서 마치 호랑이 굴로 들어간다는 느낌이었다.

▲ 따뜻하고 소소한 사랑이 넘쳤던 시댁
남편은 9남매 중 둘째였다. 남자 형제는 몇 없었고 대부분이 여자 형제들이어서 처음에는 걱정도 많이 되었지만, 그 걱정은 정말이지 쓸데없는 것이라고 곧 생각하게 되었다.

나의 남편은 함께 산 지 5년이 되던 어느 겨울밤, 병으로 앓다가 세상을 뜨고 말았다. 5년 동안 아이를 셋이나 낳았던 것을 보면 금슬은 나쁘지 않았던 듯 싶다. 그 이후로도 시어머니와 시누이들과는 쭉 같이 살았다. 우리 시어머니께선 누군가 잘못을 했을 때도 꾸짖거나 혼낸다기보다는 사랑으로 감싸주는 그런 편에 가까웠다.

시누이들 역시 그런 시어머니를 닮아서 그런지 나에게 싫은 소리 한번 한 적이 없다. 내가 시집왔던 우리 집은 그런 따뜻하고 소소한 사랑이 넘치는 곳이었다. 다들 서로서로 배려하고 사랑하며 아껴주었다. 이들을 통해서 나는 사랑이 참 가치 있고 중요한 것이라는 것과 사랑하며 살아가는 것에 대해 배우게 되었다. 아마 내 인생을 통틀어 가장 소중하고 값어치 있는 깨달음이라고 생각한다.

▲ 사소한 것에도 행복한 노후생활
고생을 아예 안 겪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나의 인생은 스스로 돌이켜 보아도 상당히 순탄한 편이었고 유하게 잘 흘러가는 인생이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지금 내 인생의 후반부를 달리고 있고, 나는 내가 살아왔던 것에 후회도 미련도 없다. 꽤 만족스러운 삶이었다고 느끼고 살면서 얻는 모든 깨달음에 감사한다.

이 노인의 말을 듣고 한 편의 멋진 책과 같이 이야기로 풀어내준 학생들과 지금까지 나의 이야기를 함께 들여다보고 소통한 모든 이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얼마나 남았을지는 알 수 없지만 내가 내 남편과 식구들을 만나러 가게 되는 날까지도 사소한 것에도 행복할 줄 알고 많은 것을 사랑하며 감사할 줄 아는 태도로 살아가고 싶다.

정리_ 전지영, 송채현 청소년 기자
(영주여고 1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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