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이후 산업구조가 변화함에 따라 국내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 그 기능을 상실하고 방치된 공공건축물, 산업시설 등이 늘어나고 있다.

비록 수명은 다했지만 공공건축물의 활용방안이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고 미술관이나 복합문화예술 공간으로 탈바꿈한 공공건축물이 지역의 랜드마크로 자리 잡으면서 지역경제 활성화는 물론 지역주민들의 문화욕구 충족 등 다양한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있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다. 

일제강점기 은행이 근대건축을 보여주는 전시관으로, 기차역과 병원이 미술관으로, 도살장과 쌀 창고가 문화예술센터로 탈바꿈 한 것이다. 이에 본지는 국내를 비롯해 스페인, 독일, 프랑스 등지에서 용도 폐기된 공공 건축물이 ‘문화’라는 새로운 옷을 갈아입은 모범적 사례를 6차례에 걸쳐 살펴본다. <편집자주>

글 싣는 순서
[1] 공공건축물의 재활용, 도시가 변한다-구 영주연초제조창을 중심으로
[2] 국내사례-군산의 랜드마크, 근대문화지구
[3] 국내사례-옛 충남도청사 본관과 장항 미곡창고
[4] 해외사례-스페인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마타데로 아트지구, 프랑스 르 샹카트르
[5] 해외사례-독일영화사와 맥주 양조장의 변신, 그리고 미술관이 된 역사(驛舍)
[6] 종합 제언-용도폐기된 공공건축물의 활용, 이렇게 하라

공동기획취재단=경남신문, 경남일보, 광주일보, 전남일보, 전북도민일보, 담양곡성타임즈, 영주시민신문, 홍주신문 이상 8개 신문사

원도심 공동화, 일제 강점기 건축물은 방치
지자체장의 의지와 연속성이 사업 마무리
수학여행 필수코스, 살아있는 근대역사교육장

“나라를 잃었던 자들아 그날을 기억하라-경술국치(1910.8.29.)”

“이 금고가 채워지기까지 우리 민족은 헐벗고 굶주려야 했다-금고 속 조선은행 이야기<군산 해저발굴 일본 동전 유리전시함 뒤>”

“개인의 영달에 나라를 팔다-을사오적<을사오적의 사진과 이름 설명>”

이는 옛 조선은행 군산지점(군산 근대건축관)의 전시물 내용 중 일부다. 일제 식민시대 우리민족의 아픔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지만 이를 부수거나 지워버리지 않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활용해 독특한 지역 관광자원으로 만들어 놨다.

아픔도 역사다. 이같은 역발상을 통해 근대 역사교육의 살아있는 교육장으로 만든 곳이 바로 군산이다. 지금은 전국 초중고교생들의 수학여행의 필수코스가 됐다. 2013년에 유료관광객 22만명을 시작으로 2014년 48만명, 2015년 82만명, 지난해는 무려 102만명이 군산을 찾았다.

▲식민시대 건축물이 관광자원으로 탈바꿈 = 1899년 5월에 개항한 후 일제 강점기 동안 미곡 수탈의 창구 역할을 했던 전북 군산이 ‘근대역사의 중심도시’로 각광받고 있다.

일제강점기 때 본정통(중심가 혹은 번화한 거리)이었던 현재 해망동 근대역사거리에 가면 옛 조선은행 군산지점(군산 근대건축관)과 옛 일본 18 은행 군산지점(군산 근대미술관), 옛 군산세관(관세 박물관) 등 근대 석조건축물이 늘어서 있다.

현재 군산 시내에 남아있는 일제강점기 당시 지어진 근대 건축물은 170채 가량으로 추정된다.

“외관으로는 4층 정도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2층입니다. 1945년까지 조선총독부의 직속 금융기관 역할을 하다가 광복된 이후에는 한일은행 군산지점으로 30여년정도 은행 업무를 봤었죠. 그리고 그 이후에는 개인에게 넘어가서 잘 안 믿어지시겠지만 나이트클럽으로 사용됐습니다. 예식장으로 사용되기도 했고 노래방도 있었죠.”

이효숙 군산시 문화관광 해설사는 옛 조선은행 군산지점(등록문화재 374호)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1923년 건립된 건물은 현재 ‘근대 건축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실내에 들어서면 군산에 남아있거나 또는 사라져버린 건물 10여 곳을 모형으로 만들어 전시하고 있다.

인근 ‘옛 일본 18 은행 군산지점’(등록문화재 373호)은 한때 중고품 판매장으로 쓰이다 보수를 거쳐 ‘군산 근대미술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일본 나가사키에 본사를 둔 은행으로, 숫자 18은 은행 설립인가 순서를 뜻한다. 1907년에 설립됐으며 무역에 따른 대부업을 주로 취급했다.

본관 건물에서는 기획전시가 잇따라 열린다. 또한 본관 뒤편 부속건물 1층에서 일제강점기 당시 금고를 볼 수 있고, 안중근 의사의 여순 감옥을 재현해 놓았다. 군산항 내에는 물 수위 변화에 따라 오르내리는 선착장인 ‘뜬다리’ 부잔교(浮棧橋) 3기가 여전히 사용되고 있다.

▲시행착오와 부정적 측면 ‘앞만 보고’ 극복 = 군산시가 원도심 공동화에 대해 고심한 때는 원도심에 자리잡고 있던 시청과 법원, 검찰청 등이 외곽 신시가지로 옮겨간 1998년 이후이다. 자연히 원도심은 공동화됐고, 일제강점기 근대건축물도 방치되다시피 했다.

군산시는 2007년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주관한 지역문화 재생 공모사업에 군산시 ‘근대산업유산 벨트화 사업’이 선정, 사업비 100만원을 확보하면서 근대문화를 활용한 도시재생에 본격적으로 발벗고 나섰다.

시는 ‘원도심이 갖고 있는 문화적 특징을 활용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심했다. 결론은 군산항 일대에 산재한 근대 건축물을 최대한 활용해 관광자원화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물론 사업이전에 시행착오도 겪었다. 김영삼 정부시절인 1996년에 일제잔재인 옛 조선총독부를 철거한 것처럼 군산에서도 붉은 벽돌로 쌓은 군산부청(1928년 건립)이 헐렸다. 또한 식민시대에 일본인들이 세웠던 보국탑과 자우혜민비, 개항 35주년 기념탑 등 석조 기념물도 철거됐다.

군산 원도심의 활성화는 지가(地價) 상승이라는 부정적 측면도 함께 뒤따랐다. 개발전 보다 수 배 껑충 뛴 땅값 오름세는 사업추진을 위해 필수적인 부지 매입에 부담감을 안겨줬다.

처음 사업 추진 시 “우리 것도 활용 못 하면서 일본식 건물에 투자하느냐”는 일부 시민들의 반발도 있었다. 2002년에 ‘등록문화재법’이 만들어지며 근대 문화유산을 관리한다는 개념이 도입돼 법적 근거를 마련하면서 사업추진에 탄력이 붙었다.

이처럼 군산시가 지난 2006년부터 10년 이상 ‘앞만 보고’ 한결같이 관련 사업을 추진할 수 있었던 데는 3선(選) 지자체장의 의지와 연속성도 무시할 수 없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다.

아직 사업추진에 한계도 있다. 무엇보다 성공적인 사업 진행을 위해서는 민관이 함께 호흡을 맞추면서 나아가야 하는데 현재는 관(官)이 주도하고 있다.

김중규 군산시 근대역사박물관 운영계장은 “군산은 근대기 모습을 볼 수 있는 특화된 공간이자 빼앗긴 시대에 대해 교육할 수 있는 장소”라면서 “신흥동에 피난민들의 생활상을 볼 수 있는 산동네가 그대로 있다. 이곳의 집들을 매입해 당시의 분위기가 나도록 하는 등 다양한 아이디어의 사업들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