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내기 기자의 소백산마라톤대회 하프 참가기

“오르막길에서는 보폭을 좁게 하세요. 그리고 내리막길에서는 보폭을 크게 하세요”

반환점을 돌고 나서 옆에 뛰고 있던 페이스메이커의 목소리가 귓전에 울려 퍼졌다. 순흥방향 장수고개를 반쯤 오르자 오르막의 2/3지점에서 몇몇의 참가자들이 힘에 부쳐 뛰기를 포기하고 빠른 걸음으로 다리의 박자감을 바꿨다.

지난 6일 오전 9시 소백산마라톤의 막이 올랐다. 대회출전도 처음, 약 21km거리의 하프마라톤을 뛰는 것도 처음. 모든 것이 처음인 내겐 한손에 콤팩트 사진기가 들려 있다. “오늘은 하프마라톤 선수이다. 하지만 내일은 기자이다. 마라톤도 취재활동의 연장이다”라는 각오로 어떻게 사진을 찍을까? 인터뷰는 어떻게 할까? 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메웠다. 뛰면서 취재도 하고 체험기를 써 보겠노라고 편집국에 이미 보고했지만 생각이 깊어질수록 오히려 머릿속이 복잡해져만 갔다.

▲출발 그리고 7km 지점 = 출발소리에 몸의 무게가 앞으로 이동하자, 두발이 뛰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나의 두발은 오랫동안 달리기를 한 적이 없다. 걷기에 익숙한 두발이 7km를 넘어가자 천근만근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제 저녁 생각 없이 마셨던 소주도 뱃속에서 파도처럼 요동치기 시작했다. 가끔씩 식도로 쓴맛이 올라 왔고, 그때마다 머릿속에선 취기가 존재감을 나타냈다. 서천 사거리를 지나자 왼쪽으로는 서천이 오른쪽에는 낮은 산들과 논밭들이 펼쳐졌다. 흐르던 땀들이 서천에서 그리고 멀리 산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땀을 훔치던 손바닥에 반짝이는 하얀 소금덩어리를 남기고 있었다.

▲카메라의 무게 = 일본 N사의 5배 확대 줌렌즈와 풀HD 영상을 구현할 수 있는 고성능 카메라. 내가 들고 뛴 콤팩트카메라이다. 가흥2교를 지나 오른쪽 손으로 셔터를 누르기 시작했다. 셔터를 누르는 손에 “N사의 카메라는 가볍구나”하는 느낌이 전해졌다. 서천교를 지나 5km지점 2번째 급수대에서 카메라를 왼손으로 바꿔 움켜쥐었다. 이때부터 N사의 카메라는 가볍지 않았다. 장수고개를 넘어 3번째 급수대에서 단백질음료를 한 컵 마시자 끈적이는 손안에서 이 작은 카메라는 손바닥에서 절대 떨어지지 않았다. 400그램도 되지 않는 이 작은 카메라가 그때부터 너무 무겁게만 느껴졌다.

▲ 반환점 지나 벚꽃 아래를 달리다 = 영주소백산마라톤 하프코스는 영주시민운동장을 출발해 동촌 2리 조개섬 삼거리 반환점을 돌아오는 코스이다. 반환점을 돌고 약 17km를 지나 서천교를 건너오자, 꿈틀꿈틀 종아리가 경련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호흡을 가다듬었지만 결코 경련은 잦아들지 않았다. 18km지점을 통과하자 멀리서 벚꽃이 바람에 실려 날아 들었다. 몇 백 미터를 더 달리자 벚꽃이 하얀 눈송이처럼 나무에서 휘날리고 있었다. 이내 종아리에 찾아오던 경련도 사라지고 가슴에 파고들던 힘듦도 사라졌다. 아득하게 느껴지던 결승선이 이제는 멀리 있지 않았다. 벚꽃아래에서 달리면서는 출발부터 찾아오던 압박감은 바람 속으로 사라졌다.

▲ 마라토너의 배고픔 = 하프 마라톤 코스에는 총 8개 급수대가 있다. 급수대마다 마라토너들이 수분과 체력을 회복할 수 있는 물과 단백질 음료, 그리고 바나나, 초코파이 조각들이 놓여 있다. 땀으로 배출된 수분은 물과 단백질음료로 보충할 수 있지만, 뛰는 자의 허기짐은 바나나와 초코파이 한덩이로는 보충하기 힘들었다. “너무 허기진데” 10km를 지나자 배고픔이 찾아 왔다. 5km마다 있던 급수대에서 바나나를 한손 가득집어 먹어 보았지만, 허기는 가시지 않았다.

5km, 10km, 하프, 풀코스를 끝마친 선수들에게 영주시 새마을회 국수 1만 그릇, 영주 대표 업체 ‘고구맘’에서 치즈파이 4천700개, 영주농산물유통공사에서는 사과와 한국양계농협 삶은 계란 1만2천개 그리고 (사)대한한돈협회 영주지지부도 돼지고기 요리 무료시식과 영주낙농협회 우유 유 200㎖ 2천500개와 치즈, 우유두부치즈를 제공됐다.

하지만 결승선을 통과하자 국수 1만 그릇은 5km와 10km 주자들의 뱃속에 있었고, 지역 업체들이 제공한 음식들은 발빠른 선수들과 선수 가족들에게 돌아갔다. 하지만 대부분의 마라토너들에게 지역의 음식을 맛 볼 수 있는 기회가 돼 잠시나마 마라토너들의 배고픔을 달랠 수 있었다.

▲ 카메라를 내려놓으며 = ‘2시간 14분’. 이번 대회 하프 코스에 도전한 내 기록이다. 또 내가 카메라를 쥐고 있던 시간이다. 카메라는 땀과 급수대에 서 마신 단백질 음료로 뒤범벅이 돼 있었고, 사진 또한 몇 장뿐이 살아남지 않았다. 뛰면서 찍은 사진이어서 대부분 흔들렸고 수많은 마라토너의 등짝만이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뒤로 돌아서서 찍은 사진도 구도는 사라지고 허공을 맴도는 사진들뿐이었다. 풀코스의 절반 거리인 하프를 달렸다. 쉽지 않은 거리를 함께 달려온 많은 분들이 있었고, 나와 함께 발을 맞춰 주었다. 2시간 동안 나의 곁에 영주의 자연이 있었고 소백산의 절경이 눈앞에 있었다. 힘들었지만 셔터를 누르던 손에 그들의 열정을 담으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달리며 오롯이 그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싶었다.

결국 저질(?) 체력으로 인해 실패하고 말았지만 내년엔 함께 뛰면서 사진도 찍고 인터뷰도 해볼 생각이다. 지금부터 1년동안 열심히 뜀박질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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