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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중의 영주 톺아보기 [187] 오후 4시에 집을 지어 보다

2025. 11. 07 by 영주시민신문

중국음식점 옆에 있는 이름 모를 카페에 앉아 있다. 감나무 한 그루가 서 있고 잎만 남아서 듬성듬성하다. 그 아래 옹기는 오래전에 뒤엎어져 갈색 슬픈 눈을 가느다랗게 뜨고, 다리가 부러진 하늘색 의자는 비를 맞고 있다. 행운목을 심은 화분에는 금이 가 마른 풀잎들은 늦가을처럼 아래로 처졌다. 손 짜장 광고는 바래져서 햇볕에 짜장이란 말은 떨어지고 손만 덜렁덜렁 갈잎처럼 흔들리고 있다. 짜장면집 마당의 오후 4시 풍경이다.

어디선가 바람이 불어 감잎 하나가 옹기 위에 툭 떨어진다. 눈에 보이지는 않으나 옹기 표면에 작은 파문이 일기 시작했다. 권태로울 정도로 정적이던 옹기와 화분이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아무런 의미도 없던 사물들이 조금씩 의미를 갖기 시작했다. 옹기의 파문은 바람을 타고 내가 앉아 있던 카페에까지 다가와서 그냥 권태롭게 앉아 있던 내 생각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무의미하게 널브러져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사물도 파문이 일었다.

그때 문득 집은 바로 이러한 파문으로 지어지는 것임을 깨달았다. 이 파문은 바로 교감에서 일어나는 감동이고 절실함이다. 집은 뭐니 뭐니해도 감동으로 지어지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좋은 집을 지을 때 돈으로 집을 지었다는 이야기를 별로 들어본 적이 없다. 페르시아 왕 고르스가 바벨론을 정복한 후 유대 민족을 해방하고 성전을 건축하게 되는데 바로 이 성전을 지을 때 감동으로 지었다는 역사적 사실이 전해지고 있다.

바람의 파문과 같은 감동이 없으면 그것은 피동적이고 수동적인 일로 전락해 버린다. 시(詩)라는 집을 지을 때도 감동이 없이 지으면 그것은 무미건조한 쉼터에 지나지 않는다. 감동으로 지어야만 읽는 독자들도 그 집을 보고 감동하고 거기에서 쉼을 얻고 기쁨을 얻게 된다. 요즘엔 챗지피티로 시를 써 보는 경우도 있다. 아무래도 AI가 시를 써놓으면 그럴듯하게 보이지만 자세히 읽게 되면 무미건조함이나 말장난에 금방 AI가 썼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다.

또 하나의 파문은 절박함이다. 권태롭다는 것은 다른 한편으로 생각하면 지극히 절박하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한마디로 생명력 있게 살고 싶다는 역설적인 의미가 그 안에 숨어 있을 수도 있다. 이러한 절박함이 있어야 집을 지을 수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집은 말할 것도 없고 인생의 집을 짓고자 하는 사람들은 모두 이러한 절박함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절박함이 없는 인생은 아무래도 그 깊이를 더하지 못한다.

이번 경주 APEC에서 단연 돋보이는 사람 중에 젠슨 황이 있었다. 젠슨 황의 전기에 “승리의 어머니는 영감이 아니라 절박함이었다.”라는 말이 있다. 엔비디아 CEO로 재직하던 초기에 회사가 극심한 경영 위기에 처했을 때 자주 인용되던 문구라고 한다. 성공을 위한 동기가 단순한 영감이나 아이디어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절박한 상황과 생존의 필요성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이런 절실함이 있었기에 그는 엔비디아의 거대한 집을 지을 수 있었을 것이다.

집은 단순히 공간이나 벽돌 몇 개로 이루어진 구조물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사람의 마음과 열정, 그리고 철학과 의지가 담긴 그릇이다. 젠슨 황이 보여준 것처럼 경영이나 삶에서 절박함은 우리를 움직이는 힘이 되고, 불확실한 미래 속에서도 한 걸음씩 나아가게 하는 촉매가 된다. 그렇기에 어떤 집이든, 어떤 삶이든 그 중심에는 사람의 깊은 절실함이 존재해야 한다.

이 모든 파문과 절실함은 결국 주변 사람들과 함께 나누어질 때 더욱 큰 힘을 가진다. 집은 함께 하는 공동체의 공간이자, 서로의 삶과 꿈을 잇는 다리이기 때문이다. 젠슨 황의 리더십이 그렇듯, 협력과 신뢰, 그리고 감동이 어우러져야만 진정한 집이 완성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각자의 삶과 일터에서 이러한 감동과 절박함의 파문을 일으키며, 조금씩 자신의 집을 지어야 할 것이다.

이처럼 집을 세우는 일은 결코 혼자의 힘으로만 되는 것은 아니다. 감동과 절박함이라는 파문이 우리 모두를 움직이고, 하나로 연결되면서 비로소 단단하고도 따뜻한 집이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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