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김신중의 영주 톺아보기 [186] 아버지의 여백 < 김신중의 영주 톺아보기 < 오피니언 < 큐레이션기사 - 영주시민신문

상단영역

뉴스Q

기사검색

본문영역

김신중의 영주 톺아보기

김신중 시인

김신중의 영주 톺아보기 [186] 아버지의 여백

2025. 11. 01 by 영주시민신문

가을이 깊어지고 찬 바람이 스산하게 불면 돌아가신 어머니와 아버지가 그립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한 어록이 많으나 어설픈 어록 하나를 덧붙여 본다. ‘어머니가 번짐의 미를 가진 분이라면 아버지는 여백의 미를 가진 분이다.’ 수채화의 번짐효과는 물과 물감이 종이 위에서 자연스럽게 퍼지며 서로 섞이는 특성을 말한다. 색상들끼리도 부드럽게 섞이며 몽환적이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만든다.

동양화에서 '여백의 미'는 작품의 빈 공간을 단순한 공백이 아닌, 깊은 의미와 미적 가치를 담는 핵심 요소로 본다. 여백은 그려진 것과 그려지지 않은 것, 침묵과 담화를 이어주는 다리라고 할 수 있겠다. 생각해 보면 어머니는 주로 우리 삶에 스며든다. 소리를 지르거나 강제하지 않으면서도 자식들의 가장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

안방에서 온 가족이 복작대면서 큰 양푼이에 밥을 퍼서 아침밥을 먹는데 어머니는 부엌에서 혼자 서서 누룽지를 먹고 있는 풍경은 어린 시절 우리에게 흔한 모습이었다. 그런 어머니의 모습이 우리들의 삶 곳곳에 스며들어서 지금도 지워지지 않는다. 이런 풍경은 지금은 상상하기 어렵지만, 어머니의 따듯한 모습이 스며든다는 의미에서는 예나 지금이나 별반 다를 게 없다.

이 땅에 사셨던 많은 아버지는 여백의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다. 안상학 시인의 시 ‘아베 생각’의 뒷부분이다. “집을 자주 비우던 내가/ 어느 노을 좋은 저녁에 또 집을 나서자/ 퇴근길에 마주친 아베는/ 자전거를 한 발로 받쳐 선 채 짐짓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야, 어디 가노?/ 예, 바람 좀 쐬려고요./ 왜, 집에는 바람이 안 불다?” 아버지의 말 한마디에 수많은 의미가 들어 있다. 아버지의 여백은 생각보다 크다. 아버지는 많은 말을 하지 않는다. 아니, 몇 마디밖에 하지는 않으나 그 여백 속에는 엄청나게 많은 말이 들어 있다.

아버지의 여백은 텅 비어 있는 공간이 아니다. 비워낸 만큼 깊어지는 공간이다. 소리는 없으나 자세히 들어보면 포효가 있고 말은 없으나 공간 여기저기에 그윽한 눈빛이 들어 있다. 그 안에는 절제와 겸손, 인내와 사랑이 공기처럼 스며 있다. 삶을 서두르지 않고, 오래 참고 기다릴 줄을 알며, 말을 앞세우지 않는 헌신의 모습이 들어 있다. 100년에 1센티미터를 자란다는 종유석의 속도처럼 느리고 말이 없지만 그 침묵 속에서 여백은 조금씩 의미망을 넓혀가면서 어느덧 큰 소리로 다가오는 것이다.

빠름이 미덕이 되고 돈이 되는 시대에 아버지의 여백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기다림이 사라지고, 침묵이 어색해지면서 우리는 텅 빈 순간을 견디지 못한다. 누군가는 더 빨리 말해야 하고, 더 많이 성취해야 하며, 더 크게 보이려 애쓴다. 그러나 그럴수록 여백이 사라지면서 가슴은 점점 메말라 간다. 아버지들이 남겨주신 여백의 미는 단순한 느림의 미학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내면을 되돌아볼 시간을 허락하고, 관계를 가다듬게 하는 조용한 공간이었다.

새로운 기술이나 자극적인 변화에 모두가 휩쓸려 가서는 안 된다. 손가락 하나로 앱을 터치하여 새로운 창을 여는 일은 이제 손바닥을 뒤집는 것만큼 쉬운 일이 되었다. 그러니 새로운 기술을 즐길 일이지 공포감을 느끼면서 우리 모두가 쫓아갈 일은 아니다. 그러니 오히려 우리가 가져야 할 것은 아버지의 태도일지도 모른다. 묵묵히 자리를 지키는 일, 불필요한 말 대신 눈빛으로 마음을 전하는 일, 절제 속에서 생겨나는 품격이 오히려 필요하다.

깊어지는 가을의 바람결을 느끼며 아버지의 여백을 떠올린다. 그분들이 남긴 것은 완벽한 그림이 아니라, 우리가 스스로 채워가야 할 빈자리였다. 빠른 걸음을 잠시 멈추고, 마음속의 여백에 바람 한 줄기 스며들게 하는 일, 그것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가 아버지께 배워야 할 가장 큰 지혜인지도 모른다. 소리를 지르며 자기의 생각을 하나라도 주입하기 위해서 애쓸 일이 아니다. 안상학 시인의 아버지처럼 “왜, 집에는 바람이 안 불다?” 하면서 여백을 만들 줄 아는 곳에 가을은 더 어울릴 수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기사 댓글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