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배용호의 문화확대경 [319] 거북선 타고 오계서원까지 < 배용호의 문화확대경 < 오피니언 < 큐레이션기사 - 영주시민신문

상단영역

뉴스Q

기사검색

본문영역

배용호의 문화확대경

배용호(前 영주교육장)

배용호의 문화확대경 [319] 거북선 타고 오계서원까지

2025. 09. 12 by 영주시민신문

「거북선[龜船, 귀갑선]」은 임진왜란 당시 맹활약하던 거북 모양의 돌격 군함(軍艦)이다. 1층은 노를 젓는 공간이고, 2층이 전투공간이다. 여기에 덮개를 덮어 배를 장갑선(裝甲船)으로 만들고 6개의 구멍으로 총통을 쏘아댔다. 노를 손으로 젓는 게 아니라 바퀴 노가 있어 발로 밟으면 바퀴가 빠르게 돌아가는 쾌속선이었다. “빠르기가 베 짜는 북과 같아 적들 사이를 재바르게 드나들었다”고 한다. 덮개에는 칼과 송곳을 꽂아 백병전이 특기인 일본 수군이 올라붙지 못하게 했다. 앞에는 용머리 형태의 포문을 달아 돌격전에도 용이하게 설계되었다.

반잠수하는 배여서 ‘물오리’처럼 보였다고 한다. 세계 최초의 완전밀폐전투용 장갑함인 것이다. 또, 안에서는 밖을 내다볼 수 있지만, 밖에서는 거북선 안을 들여다볼 수 없었다. 그래서 용머리에서 화포를 발사하면서 수백 척의 적진 속에 뛰어들었다. 조총과 화살에도 끄덕없는 거북선이 적진 깊숙이 돌진하여 적의 진형을 마구 뒤흔들었다. 말 그대로 해상 요격함이었다. 거북선이 워낙 유명하다 보니 거북선 제작에 관여했다는 야사도 수두룩하다. 세간에서는 이순신이 직접 철갑선인 거북선을 개발했다는 하나, 이순신도 거북선을 처음 개발한 인물은 아니다.

오계서원(汚溪書院)에서 건너다보이는 외내마을 간재종택에 거북선 설계도가 있었다. 간재(艮齋) 이덕홍(李德弘, 1541~1596)이 그린 것이다. 「간재문집」에 그려져 있는 거북선 설계도에는 사면으로 6개의 승자총통 총구멍이 그려져 있다. 그리고 자신이 설계한 거북선을 이순신이 사용해 왜적들을 크게 격파했으므로 실전에서 효과가 확실히 있음이 증명되었다고 선조에게 아뢰는 내용까지 실려있다. 그는 당시 바다에는 거북선[龜船]을, 육지에는 거북선 모양의 거북수레[龜車]를 사용할 것을 주장하기도 했다.

거북선을 최초 설계자 간재 이덕홍이 퇴계 문하에서 동문수학한 서애 류성룡에게 거북선 아이디어를 설명하자, 류성룡이 이 설계도를 이순신에게 전달하여 거북선을 만들게 했다는 이야기다. 그가 임진년 선조 임금에게 올린 상소문 끝부분에도 거북선 설계도가 첨부되어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정황으로 볼 때 그가 거북선을 직접 제작하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적어도 아이디어와 설계도 제공 등으로 상당한 역할을 했을 것이라는 데는 이론이 없다.

장수면 호문리 보통골에는 「艮齋李先生降生遺址碑(간재 이선생 강생유지비)」가 있다. 이곳 외가에서 태어난 이덕홍은 유학자요, 과학자요, 또한 효자였다. 모든 학문에서 뛰어났으나 특히 역학에 밝았다고 한다. 영주댐 용각천 상류 천본리에 있는 오계서원은 그가 건립한 오계정사(汚溪精舍)에서 출발하여 오계서원으로 승격되었다. 오계서원 군자정(君子亭)은 그가 강학 및 연구하던 장소였다. 그러니 이곳을 거북선 설계도의 본향이라고 할 수 있다.

여수 이순신광장에는 거북선 체험장이 있다. 통영 강구안포구에도 거북선 체험시설이 운영 중이다. 엉뚱한 내륙인 대구 엑스코에서도 거북선체험이 뜨고 있다. 이참에, 영주댐에다 용머리가 달린 거북선을 띄워 물문화관에서 출발하는 거북유람선(龜船, 영주댐~내매)을 타고 내매교회 앞에서 내려 거북셔틀버스(龜車, 오계서원~간재종택)를 운행하는 <거북선[龜船]-거북버스[龜車]> 체험 관광을 시도해 보는 건 어떨까?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기사 댓글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