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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중의 영주 톺아보기 [181] 시를 읽자, 언어를 마주하자

2025. 09. 12 by 영주시민신문

요즘 2030 세대들은 시를 많이 읽는다. 독서율도 전 연령대에서 최상위권을 차지한다고 한다. 그들은 활자로 된 텍스트를 소비하는 것을 개성과 멋으로 여긴다. 물론 문학을 소비하고 생산하는 형태도 기성세대와는 많이 달라서 실험적이기도 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기도 하나 책을 읽고 시를 읽는 것을 중요한 문화적 코드로 생각하고 있다고 하니 무척 다행스럽다. 민감한 언어를 가까이한다는 것은 깊은 생각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 철학자 하이데거가 말한 명제이다. 인간은 언어의 집 안에 머물면서 자신을 발견하고 세계와 관계를 맺으면서 존재의 의미를 획득해 나간다. 꽃이 어둠 속에 있을 때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나 언어의 빛이 어둠에 비치면 드디어 꽃의 존재가 드러난다. 만약 언어라는 빛이 없었다면 어둠 속에 있는 꽃을 볼 수 없을뿐더러 그저 막막하여 아무런 의미를 발견할 수 없게 된다. 그래서 김춘수 시인은 시 <꽃>에서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라고 했다.

하이데거의 말을 빌려 시는 언어의 건축물이라고 한 사람들도 있다. 집을 지을 때, 설계도에 따라 대를 세우고 벽돌을 하나하나 올린다. 시의 집을 지을 때는 벽돌을 쓰지 않고 언어를 가지고 짓는다는 것만 조금 다르다. 물론 아무나 언어를 가지고 시의 집을 지을 수는 없다. 숙련된 기술자가 건축물을 설계하고 집을 짓듯이 시도 마찬가지로 언어를 어느 정도 다룰 줄 알아야 한다. 더욱이 언어는 매우 정교한 것이어서 시의 언어를 이리저리 굴리고 다듬고 결합하기 위해서는 숙련된 기술이 있어야 한다.

시를 읽는다는 것은 언어라는 건축물 속을 거니는 일과 같다. 건축가가 벽돌 하나하나를 세심하게 쌓아 올리듯, 시인은 단어와 시구를 정교하게 배치하여 의미와 울림의 구조물을 세운다. 우리는 그 언어의 집에 들어서서 창문 너머로 빛을 바라보고, 바람 스며드는 틈새에서 시인의 기억과 감정을 만난다. 이 언어의 건축물은 상징의 숲이 되어 이 숲에서 소리와 향기와 색깔이 어우러져서 큰 울림을 만든다. 이러한 건축물 안에서 거닐어 보는 것도 사람이 살아가면서 꽤 괜찮은 경험일 수 있다.

시인이 쓴 언어의 집을 거닐면서 시인이 생각하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시인이 시에서 어떤 의도로 말하든지 읽는 사람 마음대로 읽으면 된다. 시인은 나름대로는 고통스러운 현실을 살아가면서 거기서 느끼는 감정을 시로 표현한다. 그렇다고 그 시를 읽는 처지에서 심각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시를 대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시를 읽는 사람이 살아가는 세상도 그렇게 녹록지 않기 때문이다. 시를 읽는 사람이 살아가는 현실을 생각하면서 자유롭게 시를 읽고 해석하면 그만이다. 물론 그렇게 시인과 독자는 소통하게 된다.

시인이 만들어 놓은 집을 거닐거나 조성해 놓은 상징의 숲을 거니는데 뭐 그렇게 고민할 필요도 있겠는가. 적당히 아프고 적당히 속상하고 적당히 고통스러우면 된다. 커피를 마시기 위해서 카페를 들어가는 데 부담이 된다면 그 카페는 아마 문을 닫을 가능성이 있을 것이다. 많은 돈을 들여서 아름다운 정원을 조성해 놓고 관광객을 기다리고 있는데 정원에서 거니는 것이 부담스럽다면 그 정원 또한 정원으로서의 가치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시의 카페나 정원도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시에 관해서 부담을 가질 필요가 없다.

우리 모두 시를 읽자. 시인이 만들어 놓은 시의 집을 거닐어 보자. 너무 부담을 갖지 말고 카페의 문을 열고 아메리카노 한 잔을 부담스럽지 않게 주문하듯이 시의 집에 들어가 보자. 시가 언어의 건축물이라고 하면 좀 어렵게 들리겠지만 시는 우리가 평소에 쓰는 말로 만든 집이라고 생각하면 시가 그렇게 우리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는 특별한 게 아니다. 시가 가장 어울리는 가을에 시의 집을 거닐면서 창문 너머로 지는 낙엽을 바라보자. 물론 그 옆 도로에는 현실의 자동차가 엄청난 속도로 달릴지라도 시의 집에서 잠시라도 숨을 돌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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