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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중의 영주 톺아보기 [178] 무섬의 아도서숙과 노블레스 오블리주

2025. 08. 22 by 영주시민신문

광복절을 보내면서 무섬마을에 있는 아도서숙을 찾았다. 아도서숙은 무섬마을 주민들이 계몽 활동과 항일운동을 벌였던 근거지다. ‘아도’는 아세아 조선의 섬인 수도리를 뜻하며 ‘서숙’은 서당을 의미한다. 1928년 김화진 선생이 주도하여 무섬마을의 청년, 지도층 인사들이 계몽과 민족교육, 문맹 퇴치, 신문명 교육을 위해 설립했다. 무섬마을 청년들은 모임 장소인 공회당을 세우고 모임, 배움, 단결을 기치로 아도서숙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아도서숙은 1928년에 세워져서 운영되다가 1933년 일제에 의해서 강제로 폐쇄되었다. 1928년은 1919년 3·1 운동이 일어나고 10여 년이 지난 때니 일제강점기 36년 중에서도 가장 암울한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역사적인 암흑기에 아도서숙을 설립하여 민족교육과 문맹 퇴치, 신문명 교육과 농사 기술 교육을 했다고 하니 참으로 암흑기에 우리 지역사회에 큰 빛을 비추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가유산 포털에 의하면 아도서숙은 봉건적이고 억압적인 시대적 분위기에서도 열린 교육을 했다고 한다. 신분 계급이나 남녀노소 없이 배울 수 있었고, 학급 편성은 오전, 오후, 야간반을 두어 학생들이 가능한 시간에 와서 배우고 자유롭게 토론하도록 했다고 한다, 새끼를 꼬거나 멍석을 만들면서도 수업에 참여해 배울 수 있었으며 학생들의 단결심 고양과 체력 향상을 위해 무섬 강변 백사장에서 축구 같은 운동도 자주 즐기도록 했다는 것이다.

아도서숙은 9명의 운영위원회를 두고 이 같은 교육 체제를 유지했다. 운영위원이었던 김화진, 김종진, 김성규, 김종규, 김계진, 김명진, 김광진, 김희규, 박찬하 등은 모두 영주 지역 사회운동의 핵심 인물들이기도 했다. 이들은 줄기차게 항일운동을 전개했으며, 수시로 체포되어 구류와 투옥, 고문을 당하였다. 1931년 9월에는 일경 1개 소대가 몰려와 무섬마을 청년 18명을 체포하여 굴비처럼 한 오랏줄에 엮어 외나무다리를 건너 압송하기도 했다고 한다. 일제는 1933년 7월, 아도서숙에 불을 질러 설립한 지 5년 만에 강제로 폐쇄하였다.

아도서숙을 운영했던 9명의 운영위원을 보면서 1347년 백년전쟁 당시 희생을 자처한 칼레의 시민 6명을 떠올렸다. 백년전쟁 당시, 프랑스 칼레 도시는 1년 넘게 영국군의 포위와 공격을 버티다가 마침내 항복하게 된다. 영국 왕은 칼레 시민 모두를 죽이려 했으나, 주변의 만류로 대신 지도급 시민 6명의 희생을 요구했다. 이때 칼레에서 가장 부유한 시민이자 지도자였던 외스타슈 드 생 피에르가 용감히 자원했고, 그 뒤로 시장, 고위 관료 등 지도층 인사들이 앞다퉈 나섰다. 바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귀족은 의무를 갖는다"라는 의미를 지닌 프랑스어 표현으로 사회적 지위를 가진 사람이 사회에 대해 도덕적 책임과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개념을 의미한다. 사회의 지도층이나 고위 인사는 자신들이 누리는 특권에 걸맞은 높은 수준의 도덕적 의무와 사회봉사를 해야 한다는 뜻이다. 단순한 권력이나 부만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이를 바탕으로 공동체나 사회를 위해 헌신하고 희생해야 한다는 가치관이라고 할 수 있다.

아도서숙을 운영했던 아홉 분은 몸소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했다. 일제강점기의 가장 암흑기에 그들은 희생을 자처했으며 투옥과 고문을 서슴지 않았다. 광복이란 말조차도 까마득하게 잊혀 가는 시대요, 미래가 없는 때니 어떠한 보상도 생각할 수 없었다. 문맹을 퇴치하고 신문명을 가르쳐야 한다는 시혜적인 생각만으로는 절대로 임할 수 없는 행동이기에 그 엄숙한 모습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어느 시대에나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있었다. 아도서숙을 포함하여 찾아보면 영주 지역사에서도 이를 실천한 사례들도 있다. 문제는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지금, 우리 지역의 지도층에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고 있는지, 영주를 위해서 얼마나 뼈를 깎는 심정으로 영주를 생각하고 있는지 깊이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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