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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중의 영주 톺아보기 [176] 둔황 막고굴, 저 높은 곳에 그림을 그리다

2025. 07. 31 by 영주시민신문

둔황 최고의 유적으로 막고굴(莫高窟)이 있다. 막고굴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석굴사원으로, 약 천 년 동안 북위, 수, 당, 송, 원 등 여러 시대를 거치면서 조성된 거대한 불교 예술 유적이다. 남북으로 1,600미터, 총 730여 개의 동굴이 있으며, 이 중 492개 동굴에 불상과 벽화가 보존되어 있어 불교 미술의 보고로 꼽힌다. 각 시대의 생활상이나 그들의 염원이 석굴 안에 빼곡하게 들어 있다. 중국 최고의 석굴사원 중 하나로 1987년 중국에서 최초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지정되었다.

실크로드를 걸었던 순례자들은 굴을 판 후 흙을 발라 벽화를 그리고 강바닥에서 채취한 진흙을 이겨 불상을 만들었다. 부처의 일생을 그림으로 그려놓기도 하고 불경을 설법하는 장면을 그렸다. 석굴 내부 중앙에 불상을 모시고 천장이나 벽에는 비천이 꽃을 뿌리며 음악 연주를 하는 장면이나 천불상이 그려져 있다. 대부분 그림 속에는 순례자로서 실크로드를 걸어가면서 자신의 하늘을 찾아 간 누군가의 마음이 들어 있었다. 막고굴의 의미처럼 이보다 더 높은 곳은 없다는 생각이 절로 들어 인간 문명의 장엄함을 느꼈다.

벽화에는 실크로드를 따라 교류한 다양한 민족, 상인, 무역 장면이 등장하기도 한다. 한쪽에는 낙타나 말에 물건을 싣고 이동하는 대상과 상인들이 그려져 있고 그려진 시대에 따라 서역인, 인도인, 중앙아시아인, 한족 등이 각기 다른 복식과 외모로 그려져 있다. 해설사가 실크로드를 따라가다가 강도 만난 그림이나 서역인들의 모습을 여기저기서 짚어줄 때 정말 문명의 파노라마가 어둠 속에 펼쳐졌다.

벽화 곳곳에는 농경이나 목축 등과 같이 평범한 백성의 생활풍습이나 복식이 표현되어 있다. 벼를 심거나 수확하는 농민, 가축을 돌보는 장면, 시장에서 흥정하는 상인과 주부, 축제에서 악기를 연주하고 춤추는 모습, 음식이나 꽃을 예불로 드리는 평민의 생활상이 잘 나타나 있다고 한다. 한마디로 실크로드에서 벌어진 순례자의 모습과 서역에 맞닿은 문명의 모습을 담아서 구체적이고 풍부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막고굴을 보면서 경주 석굴암이 스쳐 지나가기도 하고, 부석사 창건 당시에 봉황산을 올려보며 무량수전을 오르는 의상대사가 상상되기도 했다. 존 번연의 천로역정에서 하늘을 향해 가던 순례자가 떠오르기도 했다. 맨 처음 실크로드를 따라서 인도에서 돌아오던 한 승려가 절벽을 올라 정을 들고 석굴을 파기 시작한 광경을 떠올렸다. 그는 석굴 안에 자신의 세상을 만들고 싶었을 것이다. 그가 사모하던 부처님을 그리고 사랑했던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토굴 속에 하나하나 그려서 자신만의 하늘에 그려놓고 싶었을 것이다.

막고굴은 고비사막의 가장자리쯤 되는 곳이어서 만년설이 녹아내리는 물은 흘렀으나 주위를 둘러보면 온통 모래사막뿐이다. 모래가 바람에 의해 굴러다니며 악기 소리를 낸다고 하여 명사산(鳴沙山)이라고 명명할 만큼 주변은 온통 모래밖에 없다. 순례자가 되어 실크로드의 먼 길을 돌아와 아무것도 없는 곳에 굴을 만들어 자신의 하늘을 하나하나 만들어가는 모습을 상상하면서 정말이지 천 년이 축적된 거대함 앞에서 숙연한 마음이 들었다. 이미 석굴은 어둡고 습한 동굴이 아니라 이미 빛나고 높은 하늘이었다.

막고굴의 한 장인을 상상하고 있을 때, 투병 중에 납 공장 설립을 반대하면서 몸으로 행동하셨던 이희진 목사가 소천하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사람과 땅, 생명을 함께 사랑하는 것이 믿음의 길이라고 말씀하신 분이 남편과 딸을 남겨 두고 42세에 돌아가셨다니 너무나 안타까운 마음이다.

정말 저 높은 곳을 향해 가면서 사람들을 사랑했던 분이시란다. 목사님은 저 높은 곳을 가면서 하늘 저 한쪽에 사랑했던 사람들을 그림으로 그려놓으셨다. 어쩌면 우리도 저 높은 곳을 향해 가면서 우리들의 발자국으로 저 하늘 어딘가에 자신만의 소소한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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