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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중의 영주 톺아보기 [173] 소백산 늦은목이재에서 배우다

2025. 07. 11 by 영주시민신문

소백산자락길 9자락은 부석면 남대리 주막거리에서 물야 오전댐까지 이어지는 길이다. 9자락의 대부분은 남대리에서 생달마을로 넘어가는 고개 늦은목이재를 넘는 길이다. ‘목이’는 고개 또는 재와 별반 다른 말은 아니다. ‘늦은’이라는 말은 고개가 느슨하고 완만하여 시간이 더 걸린다는 뜻의, 더 늦다는 뜻으로 이해해도 좋다. 실제로 늦은목이재를 넘다 보면 정말이지 완만하여 높은 고개를 넘는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늦은목이재는 부석면 남대리와 봉화군 물야면 오전리를 잇는 중요한 산길로, 예로부터 지역 간 교류와 물자 이동의 통로 역할을 해왔다. 울진에서 시작되는 십이령길은 옛 보부상 또는 선질꾼들이 흥부장, 울진장, 죽변장에서 미역, 건어물, 소금, 생선, 젓갈 등의 해산물을 구입하여 봉화, 영주, 안동 등 내륙지방으로 행상을 갈 때 넘나들던 고개다. 십이령길을 넘어 오전 뒤뜰장터를 거쳐 늦은목이재를 넘으면 단양과 영월 쪽으로 가는 길로 이어진다.

보부상들이 늦은목이재를 넘기 전에 반드시 들린 곳이 물야 오전 뒤뜰장터였다. 뒤뜰장터는 십이령길, 늦은목이재 등 험준한 산길을 넘나들던 보부상과 행상, 농민, 마을 주민들이 이곳에 모여 생필품, 농산물, 해산물 등을 사고팔며 경제적·사회적 소통의 장을 이룬 곳이다. 지금은 장터는 사라지고 몇몇 흔적들만 남아 있으나 옛적에는 내성상인들이 호사를 누렸던 곳으로 단순한 물품 교환의 장소를 넘어, 정보 교류, 휴식과 만남의 역할도 했던 장터였다.

늦은목이재는 백두대간 줄기 위에 있지만, 이름처럼 급경사나 험준함 대신 완만하고 느슨한 능선을 품고 있다. ‘늦은목이’라는 이름에 ‘낮고 완만하다’는 뜻을 담고 있듯이 늦은목이재를 오르다 보면 급히 재를 올라가는 경사는 없어서 걷다 보면 어느덧 고개의 정상에 닿아 있다. 우리는 흔히 인생을 산에 오르는 일에 비유한다. 험한 고개, 가파른 언덕, 숨이 턱에 차는 오르막길을 상상한다. 늦은목이재는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따뜻한 말로 수런거린다. 그렇게 가파르게만 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늦은목이재는 결코 가장 빠른 길도, 가장 짧은 길도 아니다. 오히려 이 고개는 오르는 이에게 숨 고를 여유를 준다. 발걸음이 느려져도, 주변을 둘러볼 마음의 틈이 생긴다. 길가에 핀 야생화, 산새 소리,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까지도 눈에 들어온다. 어떤 시인이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꽃, 내려갈 때 보았네.’라고 노래했는데, 아니다. 늦은목이재에 가면 올라갈 때도 봐야 할 것이 눈에 들어온다, 그렇게 완만하다.

남대리에서 생달마을로 넘어가는 늦은목이재는 두 마을을 잇는 다리이기도 하다. 마을 사람들은 예로부터 이 고개를 넘어 서로를 오가며 삶을 나눴다. 이처럼 우리 살아가는 길에도 수많은 ‘고개’가 있다. 어떤 고개는 험하고, 어떤 고개는 완만하다. 중요한 것은 고개의 높낮이가 아니라, 그 고개를 넘으며 무엇을 보고, 누구와 함께 걷느냐 하는 것이다. 따라서 완만하든지 가파르든지 숨이 좀 찰 뿐 누구를 만나서 함께 삶을 나누는 것이 중요하다.

고개를 넘으면 새로운 길이 열린다. 늘 걸어서 익숙한 길일지언정 막상 넘어 보면 모든 게 낯설다. 넘어서 가는 길이 새롭고 풍경이 늘 새롭기도 하지만 기다리는 것에 대한 느낌이 새로워서 낯설다. 그러니 눈앞에 보이는 것에 너무 집착하기보다는 조급함을 내려놓고, 내 삶의 속도와 호흡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게 자기 호흡을 잡고 길을 걷다 보면 그 길 위에서 우리는 삶의 아름다움과 깊이를 새롭게 만나게 된다.

늦은목이재를 오르는 일은, 인생의 완만한 고개를 넘는 일과 닮았다. 남들보다 늦어도, 더디 가도 괜찮다. 중요한 것은 내가 내 길을 걷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 길에서 만나는 모든 풍경과 사람, 경험이 결국 내 인생을 풍요롭게 만든다는 깨달음일 것이다. 한 발 한 발 디디다 보면 어느덧 정상에 이르는 늦은목이재, 완만한 고개를 넘으며, 삶의 여백과 여유를 배우는 것. 그것이 바로 늦은목이재가 우리에게 주는 가장 큰 선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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