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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중의 영주 톺아보기 [169] 한절마의 추억

2025. 06. 13 by 영주시민신문

한절마는 이름 그대로 ‘큰 절이 있던 마을’이라는 뜻을 품고 있다. 옛 기록에 따르면 한절마의 본래 이름은 대사동(大寺洞)으로, 조선시대 행정구역상 영천군 가흥면 대사리였다. ‘한’은 크다는 뜻이고, ‘절’은 사찰을 의미한다. 실제로 이곳에는 여러 가지 유적들이 남아 있으며, 마애삼존불상이 있고 삼존불에서 약 10m 떨어진 아래쪽에 청동기 시대의 암각화가 있다. 한절마는 청도김씨, 예안김씨, 안동권씨 등 여러 성씨의 집성촌이기도 했다.

영주시민신문 이원식 시민기자에 의하면 한절마의 지명은 마을 어귀에 있던 큰 절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1917년 영주-예천 간 도로공사 중, 현 영주교육청 인근에서 옛 절의 흔적으로 보이는 동제종과 석불 등이 발견되었고, 이 동제종 명문(銘文)에 덕산사(德山寺)라고 새겨져 있어 이곳이 고려시대 덕산사 터로 전해진다. 세월이 흐르며 절은 사라졌으나 여전히 한절마라는 이름으로 남아 있어 그나마 옛것이 남아 있는 듯하다.

한절마는 서구대에서 구수산 자락을 따라 세무서, 강변2차아파트, 영주교육청, 마애삼존불상까지 이어지는 긴 마을이었다. 그러나 1961년 대수해와 서천 직강공사로 인해 강동 한절마와 강서 한절마로 나뉘며, 옛 모습은 점차 사라져 갔다. 아마 영주에서 가장 많은 것이 사라진 지역이라고 할 수도 있다. 지금은 삼판서고택과 서천이 어우러져 또 다른 풍경이 펼쳐지기는 하나 그때를 생각해 보면 사라진 것들이 무척 아쉬운 동네이기도 하다.

강변2차 아파트가 들어서기 전에 한절마에 보트장이 있었다. 어릴 때 우리는 그 보트장을 ‘가흥뽀드장’이라고 불렀다. 마을 사람들에 의하면 서천 직강 공사 때에 둑을 쌓느라 웅덩이가 많이 생기더니 어느덧 보트장이 생겼다는 것이다. 보트장이라고 해서 거창한 게 아니라 장난감 보트처럼 작은 배가 있어 물놀이를 하기도 하고 낚시를 하는 사람들도 종종 보였다. 어쨌거나 한적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놀이 공간이기도 했다.

중학교 1학년 때였다. 궂은비가 내리는 날, 가흥뽀드장에 혼자 낚시를 간 적이 있었다. 냇가에 가서 친구들과 물고기를 잡아보기는 했지만 처음 낚시를 결심한 날에 마침 하루 종일 비가 내렸다. 물가에는 낚시꾼의 발자국 대신 빗방울만이 자국을 남겼다. 부슬부슬 내리는 비를 맞으며 낚싯대를 드리웠다. 하루 종일 낚싯대를 붙들고 있었지만, 결국 작은 물고기 한 마리도 낚지 못한 채 젖은 신을 신은 채 빈손으로 돌아왔다.

정말이지 그날 이후로 나는 낚싯대를 잡아본 적이 한 번도 없다. 어린 나이에 비를 맞으며 하루 종일 기다렸으나 한 마리도 잡지 못한 서운함과 실망감이 너무나 깊었다. 어렸을 때 감자떡을 먹다가 체하면 어른이 돼서도 피하는 것과 같이 낚시는 내게 그런 것이었다. 50년이 지난 지금 한절마는 그렇게 각인되어 있다. 낚시라는 행위 자체보다, 비 내리는 한절마의 풍경이 선명하게 남아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낚시의 본질에 닿지 못한 경험이었다. 낚시의 손맛을 느껴보지도 못했으니 낚시의 본질을 알 수도 없을뿐더러 낚시의 재미를 알 리가 만무하다. 그렇게 생각해 보면 어릴 때의 나쁜 기억으로 삶의 본질에는 접근하지 못한 채 겉핥기만 하다가 질려버린 것들이 너무나 많은 것을 깨달았다. 삶도, 정치도, 이념도, 사람도 그냥 질려버려서 본질을 알려고 노력하지 않고 지나쳐온 것은 아닌지 곰곰이 생각하게 한 한절마 풍경이었다.

이제는 한절마 대부분이 옛 모습과 달라졌다. 개발과 변화의 물결 속에서, 한절마의 골목과 집들은 아파트와 도로로 대체되었다. 구수산 자락을 따라 저 멀리 서천을 바라보면서 있었던 큰 절의 흔적도, 비 내리는 보트장도, 그리고 그날의 적막한 풍경도 점점 희미해져 간다. 한절마의 이름을 아는 이들도, 그곳에서 낚시를 해본 이들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 어쩌면 본질까지도 변하게 하는 무서운 세월이다. 어쨌든 한절마의 이름이, 그리고 그곳에서의 하루가, 본질보다는 현상에 무너져버린 인생의 한 페이지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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