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는 예로부터 선비의 고장으로 불려 왔다. 조선시대 선비들이 지녔던 청렴과 올곧음, 그리고 공동체를 위한 헌신의 정신은 영주 시민 모두의 자부심이었다. 지금까지 선비의 고장을 영주의 정체성으로 삼아서 특허 등록을 하고 영주의 브랜드로 키워 오는 데 모든 시민이 혼신의 노력을 기울여 왔다. 그러나 최근 우리 지역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태를 지켜보며, 한 시민으로서 깊은 자괴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지난 일이지만 전 영주시장이 선거법 위반으로 시장직을 상실했다. 법원의 판결이 확정되면서 영주시는 부시장 권한대행 체제로 전환되었다. 시장의 부재는 단순히 한 사람의 자리가 비는 문제가 아니다. 시정의 연속성이 깨지고, 시민들이 기대했던 바람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 시장 대행 체제에서 시정이 안정되게 진행되고 있다고는 하나 무엇보다도 영주 시민의 선택이 헛된 결과로 돌아갔다는 사실이 안타까운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우리 영주가 기대했던 경북도의회 의장마저 뇌물 혐의로 구속되는 일이 벌어졌다. 그 결과에 대해서는 예단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지역을 대표하는 정치인이 구속된 기사를 보면서 시민들은 기대감이 컸던 만큼 당혹감과 실망도 컸다. “정말 영주가 왜 이래"라는 탄식이 주변에서 들려왔다. 밀려오는 안타까움과 함께 영주에 살고 있다는 자부심이 무너지는 듯한 참담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이런 일들이 반복될 때마다, 우리는 ‘내가 사는 고장이 정말 선비의 고장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된다. 선비정신은 단지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지켜야 할 가치이다. 그런데도 선비의 고장이라는 이름 앞에서 우리 지역의 지도자들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것을 보면서 안타까움과 함께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는 탄식 소리를 막을 수가 없다.
다만 이번 사태를 단순히 몇몇 정치 지도자의 일탈로만 치부해서는 안 된다.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올바른 지도자를 세우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돌아봐야 한다. 말로만 선비의 고장 영주였지 우리 각자가 선비다운 생각과 행동을 했는지도 성찰해 봐야 한다. 부끄러움은 감추고 싶은 감정이지만, 때로는 우리를 더 나은 길로 이끄는 힘이 되기에 지금 우리가 느끼는 부끄러움으로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는 선비의 고장 영주를 외면해서는 더더욱 안 된다. 오히려 이런 일이 벌어질수록, 선비정신이 우리 행동의 기준이 되어야 함을 더욱 절실히 깨닫게 된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비통한 심정이 우리가 더 민감하게 옳고 그름을 가리고, 잘못된 것에 대해서 더욱 단호히 맞서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이어져야 한다. 선비정신이란 바로 우리 행동을 이끄는 살아있는 원칙이어야 하며, 그 정신이 우리 일상에서 실천될 때 비로소 영주는 진정한 선비의 고장으로 남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다시는 이런 부끄러움이 우리 지역을 덮지 않도록, 시민 모두가 깨어있는 감시자가 되어야 한다. 지도자 한 사람 한 사람의 도덕성과 책임감을 더욱 엄격히 따져야 하며, 우리 스스로도 선비정신을 더욱 삶의 준엄한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작은 이익이나 편의에 흔들리지 않고, 우리 스스로 자기 행동에 민감해야 한다. 이번 일을 계기로 우리 모두가 한마음으로 선비의 고장 영주를 지키겠다는 다짐을 새롭게 해야 한다.
미안하다, 영주야. 정말 미안하다. 이게 누구의 잘못이랄 것도 없이 우리 모두의 잘못이다. 이러면서도 우리는 선비정신을 과거의 구태의연하고 녹슨 유물로만 생각했다. 시인 윤동주가 왕조의 유물과 같은 청동거울을 닦고 닦아서 드디어 자신의 바른 모습을 보았듯이 우리도 선비정신이 깃든 청동거울에 낀 녹을 닦아내야 한다, 그리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바른 모습이 어떠해야 하는 지를 다시 한번 민감하게 읽어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