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교육열은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빠지지 않으나 교육 방식에 대해서는 논란이 되는 경우가 많다. 4세 고시, 7세 고시 같은 신조어도 등장했는데, 이는 영유아나 미취학 아동이 의대 진학을 목표로 학원 입학시험을 치르는 현상을 비꼬는 표현이다. 실제로 서울 대치동 등지에서는 초등 1,2학년부터 고등학교 과정을 선행학습 하거나 유아 대상 영어학원에 들어가기 위해서 자체 영어 시험을 통과하기 위해 아이들은 선행학습을 감당하고 있다. 의대에 들어가기 위한 극단적인 이들이 엄연하게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다.
이렇게 조기교육을 받은 아이들이 의대도 가고 좋은 대학에 들어가서 모든 사람이 선망하는 성공적인 사람을 살아가는 경우도 많겠으나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니다 싶다. 물론 어릴 때 조금만 고생하면 인생의 후반부에는 편안하고 안락한 삶을 살 수 있다고 강변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나 이 꿈같은 공부 현실이 과연 바람직하냐는 물음에는 대부분의 사람은 아니올시다 할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것은 공부가 아니라 학습과 성공을 빙자한 부모의 폭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대인들은 초등학교 입학식 때 히브리어 알파벳 모양의 과자에 꿀을 찍어 아이들에게 나눠주며, 배움이 꿀처럼 달다는 의미를 직접 경험하게 한다. 이는 공부의 결과보다 과정에서 오는 즐거움을 강조하는 이스라엘 교육의 상징적인 장면이다. 어떤 가정에서는 이스라엘의 쉐마라고 해서 신명기 6장 4절에 나오는 성경 문구에 꿀을 발라서 먹게 하면서 이들이 평생을 살아가면서 무엇이 가장 중요하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를 가르친다. 삶도, 공부도 꿀처럼 달 수 있다는 것을 몸소 체험하는 것이다.
유대인의 식사 시간도 꽤 유명하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식사는 단순한 한 끼가 아니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거룩한 시간이기도 했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저녁은 반드시 가족과 함께 먹는다고 한다. 거기서 밥상머리 교육이 이루어지고 토라를 읽으면서 얘기를 나눈다. 유대인 할아버지와 손자가 길을 가다가 돌 하나를 발견하고 얘기를 나누는데 두 시간을 서로 묻고 대답하며 토론하더라는 얘기가 있다. 우리가 듣기에는 불가능한 얘기 같으나 유대인들의 전통을 생각하면 충분히 현실에서 가능한 이야기이다.
탈무드에 이런 말이 있다. 세 사람이 식탁에 앉아 토라를 말하지 않으면 죽은 우상의 제물을 먹는 것과 같다. 유대인 부모들은 식사하면서 정해진 토라의 내용을 읽고 서로 얘기를 나눈다. 세 명 이상이 그룹을 이룰 때를 ‘하브라’라고 하는데 여기에서 우정이나 동반자를 뜻하는 하브루타란 말이 나왔다. 하브루타 학습법은 두 사람이 대화와 질문을 통해 상대방과 토론하고 논쟁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데 탈무드에는 토라를 공부하기 위해 혼자 앉아 있는 학자들은 어리석다고 말할 만큼 유대인들은 가정에서부터 토론하고 논쟁하는 학습법을 몸에 익힌다.
이런 유대인의 가정을 상상하면서 의대를 가기 위해 극단적이기는 하지만 4세, 7세 고시를 보는 우리 아이들을 생각하면 너무 마음이 아프다. 질문하고 대화하며 토론하면서 문제점을 찾아가고 해결책을 찾아 나서던 교육이 교육 정책에 따라 오락가락하는 것도 마음이 편치 않다. 정말이지 돈이 많거나 많이 배우지 않은 사람이 아니면 할 수 없는 괴상망측한 일들이 엄연히 우리 현실에 존재한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우리 가정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된다.
이스라엘의 꿀 교육이나 밥상머리 교육, 하브루타 교육은 배움의 즐거움, 가정의 역할, 그리고 창의적이고 자율적인 학습 분위기가 어우러져 있다. 가정의 달을 맞아, 우리도 결과 중심의 교육에서 벗어나 아이가 배우는 과정에서 기쁨을 느끼고, 가족이 함께 배우며 성장하는 문화를 만들어가야 할 때이다. 부모가 먼저 아이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함께 배우는 동반자가 되어줄 때, 배움은 꿀처럼 달콤해질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행복은 바로 가정에서부터 출발해야만 배움도, 삶도 행복해질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