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배용호의 문화확대경 [307] 봄과 매화와 선비와 영주 < 배용호의 문화확대경 < 오피니언 < 큐레이션기사 - 영주시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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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용호의 문화확대경

배용호(前 영주교육장)

배용호의 문화확대경 [307] 봄과 매화와 선비와 영주

2025. 03. 21 by 영주시민신문

조선의 선비들은 매화를 무척 좋아했다. 추운 겨울에 은은한 향기를 풍기는 모습이 지조와 절개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과거시험에 장원급제한 인재는 머리에 매화 꽃대를 꽂은 어사화(御賜花)를 쓰고 조정과 백성들이 보는 앞에서 인정을 받았다. 사실 어사화의 꽃대는 ‘봄을 맞이하는 꽃’이라는 뜻을 가진 영춘화(迎春花)이나 매화와 생김이 비슷하고 노랑 색깔이어서 ‘황매(黃梅)’라고도 불렀다. 어떻든 이들은 모두「이제 꽃을 피워도 됩니다」라고 봄을 알리는 전령사들이다.

봄을 알리는 꽃의 으뜸으로 매화를 꼽는다. 예로부터 선비의 절개를 상징하는 사군자 매(梅), 난(蘭), 국(菊), 죽(竹) 중에서도 맏이의 자리에 올라 있다. 이른 봄의 추위 속에서도 가장 먼저 꽃피우는 점 때문일게다. 그래서 문학과 회화, 불교와 유교, 전통가옥의 정원 등 다양한 문화적 요소를 마감하는 포인트 역할을 한다. 가난한 선비가 평생 매화나무 아래서 공부하며 자기를 추슬렀다는 일화도 있다.

가지의 비틀리고 구부러진 모양은 삶의 굴곡을 나타내며 이는 곧 고난과 역경을 딛고 성장하는 인간의 모습에 비유되는 것이므로 선비들에게서 그런 대접을 받는지도 모른다. 한겨울 추위에도 굴하지 않고 향기를 가득 안으로 내장하고 있다가 봄 터져 빈한한 뜰에 한꺼번에 쏟아내는 그런 절제와 품위를 보면서 선비들이 자신의 몸과 마음을 가다듬었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우리의 고택이나 고찰에서 오래된 매화 몇 그루 만나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게 되어 있다.

「梅一生寒不賣香(매일생한불매향) 매화는 한평생을 춥게 살더라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 선비의 자세를 읊는듯한 상촌 신흠의 「야언(野言)」이라는 시의 한 구절이다. 겨우내 출입이 어려웠던 조선의 선비들은 기다렸던 매화를 마중하는 탐매여행으로 한 해를 시작했다고 한다.

일찍이 매화 사랑은 북송의 임포(林逋)로부터 회자 되었다. 독신인 그는 처소 주변의 매화를 아내 삼고 학을 자식 삼아 유유자적하였다 하여 「매처학자(梅妻鶴子)」로 불렸다. 조선의 대표 선비인 퇴계 이황도 누구보다 매화를 아꼈다. 단양 관기의 선물 화분을 인연으로 그의 매화 사랑은 매화를 매선(梅仙), 매형(梅兄), 매군(梅君)으로 의인화되었으며, 특히 100수를 넘게 엮은 『매화시첩』은 역사상 유일한 매화 시집으로 전한다.

자신의 회연초당에 100그루의 매화를 심고는 백매원(百梅園)이라 이름 지었던 퇴계의 제자 한강 정구도 매화 사랑에 유별난 선비였다. 또 조선 후기 문신이며 화가였던 박사해(朴師海)라는 선비는 추운 겨울날 안채에서 잠을 자다가 바깥 눈보라에 떨고 있는 매화가 안타까워 덮고 있던 ‘하나뿐인 이불’을 나무에 칭칭 둘러주고는 부인에게 “이젠 매화가 춥지 않겠지요?” 했다 한다.

매화는 어렵고 힘든 시기를 이겨나가는 선비라는 뜻에서 한사(寒士)라고도 불렀다. 이처럼 성리학의 이념과 군자의 이미지가 내포되어 있어서 선비들이 처소 가까이에 심어두고 봄마다 개화를 기다렸던 모양이다.

국내의 4대 매화라면 백양사 고불매, 선암사 선암매, 화엄사 들매와 오죽헌의 율곡매를 꼽지만, 영주에는 「한국선비매화공원」이 있다. 국내 최대 매화 전문분재원이라고 한다. 실내이다 보니 다른 노지 매화보다 빨리 개화하게 된다. 이곳에서는 하나같이 뒤틀리고 꺾인 듯 구멍 숭숭 뚫린 모습에서 대뜸 수백 년의 세월을 맞닥뜨리게 된다. 수소문으로 전국의 오랜 원목을 수집하여 썩은 부분은 도려내고 다듬어 이름 있는 매화를 접붙이는 정성으로 하나씩 작품을 완성한 것이라 한다. 매화라는 이름의 전국 고목들이 함께 모여 영주의 봄을 일깨우는 것이다.

매화는 일반적으로 남도의 섬진강을 따라 거슬러 오르는 것으로 되어 있는데, 겨울이 긴 소백산자락 영주에서 매화가 가장 먼저 봄소식을 알리게 된다니 참 아이러니하다. 그 주인공 「한국선비매화공원」이 이 시대의 대표 선비였던 이어령 장관의 제안이었다니 더욱 특별하다는 생각이다.

살며시 매향에 코를 가까이 가져가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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