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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중의 영주 톺아보기 [156] 이판사판인가, 이판사판공사판인가

2025. 03. 14 by 영주시민신문

요즘에는 잘 쓰지 않으나 우리 어렸을 때만 해도 이판사판공사판이라는 말을 많이 썼다. 이판사판과 같은 상황을 과장해서 더욱 자극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만든 조어가 아닌가 싶다. 아주 난장판과 같은 상태를 뜻하는 말로서 어쨌든 어원을 생각해 보면 나름대로 의미가 재미있다. 요즘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태가 한마디로 말해서 이판사판공사판이라서 더더욱 우리를 찌르는 말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판(理判)은 불교에서 참선과 수행을 중심으로 깨달음을 추구하는 승려를 말하고 사판(事判)은 절의 운영과 재정을 담당하는 승려를 뜻한다. 원래는 같은 승려로 하는 일이 달랐으나 의견 충돌이 생기면 극단적인 대립이 벌어지곤 했다. 여기에다가 공사판이 붙어서 공사판은 당연히 정리가 안 된 공사 현장으로 여기저기 너저분한 상태를 의미한다. 그러니 이판사판공사판은 모든 것이 뒤엉켜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상황을 의미하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모든 일에는 이판사판이 있을 수 있다. 각고의 수행을 하여 깨달음을 추구하는 승려들이 있는 반면에 절의 재정을 관리하고 운영하는 승려도 있어야 한다. 우리가 세상을 살다가 보면 너무나 다른 이 두 부류가 반드시 있어야 세상은 굴러가는 것이다. 만약 어느 하나가 빠진다면 수레에 바퀴 하나가 떨어져 나간 것과 같기 때문이다. 당연히 이 둘 사이에는 갈등과 대립이 있을 수 있으며 그렇게 역사의 바퀴는 굴러간다.

그런데 이판사판에서 그쳐야지 공사판이 되면 안 된다. 대립과 갈등의 골이 깊어지면 냉정한 태도를 잃어버리고 그때부터는 감정적인 대응과 극단적인 모습이 나타나서 더 이상 브레이크가 듣지 않는다. 이미 이판사판이 공사판이 되어 돌이킬 수 없는 혼란에 빠져 버린다. 여기에는 더 이상의 공통 분모는 존재하지 않는다. 거기에다가 무슨 일이 있어도 이겨서 굴복시켜야 하기에 상대방의 생각을 조금이라도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가 없다.

요즘 세상 돌아가는 꼴을 보면 정말이지 이판사판까지는 가 있는 게 분명하다. 양쪽 진영에서 이판사판으로 대립하여 더 이상의 타협과 합의는 없다. 자세한 설명을 하지 않더라도 작금의 우리나라의 정치 현실을 뜻하는 말이구나 하고 쉽게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는 경험하지 못했던 정말 우려스러울 만큼 이판사판의 최정점에 와 있다. 이제는 날카로운 곳까지 와 있어 더 이상 물러설 땅이 없다.

그런데 이판과 사판이 알아야 할 것이 있다. 이 땅에는 어정쩡한 이판과 사판들, 좋게 말하면 이판과 사판을 날카롭게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이러한 현실이 안타깝고 안쓰러워서 전전긍긍하며 살아간다. 전전긍긍은 깊은 연못 앞에 서 있는 것처럼 조심하고 얇은 얼음을 밟듯 신중해야 한다는 뜻이다. 어쩌면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이 살얼음과 같으니 전전긍긍하니 오히려 건강한 사람들이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바라건대 이판사판까지는 좋으나 공사판까지는 가지 말아야 한다. 어디에나 이판사판은 있다. 오히려 이판사판의 과정을 거쳐야 한 단계 더 발전할 수 있다. 좋은 게 좋고 허허거리며 모든 것을 수용하는 사회는 긴장감이 없어서 결국은 뒤처질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이판사판공사판까지 가게 되면 더 이상 치유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어 그 대가가 만만하지 않을 것이다. 대립을 극복하기는커녕 나락으로 떨어질 수도 있다.

정치가 우리 일상생활에 이렇게까지 파고든 적은 일찍이 없었다. 유튜브나 SNS로 모든 정보가 잠깐이면 우리의 일상 속으로 들어온다. 거기다가 텔레비전만 켜면 온통 정치로 가득해서 이젠 정치가 생활이 되었다. 유튜브나 페이스북의 알고리즘은 자기 취향에 맞는 맞춤 정보를 제공해 주고 텔레비전은 자기가 좋아하는 색깔의 방송만을 보게 되니 아무래도 건강한 정보가 차단될 수밖에 없다. 거리에 나붙은 정당 현수막도 극단적이다. 모든 것이 이판사판이 되었으나 공사판까지 가는 것은 우리 힘으로 막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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