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대한민국 광복 80주년이 되는 해이다. 풍기에는 광복 50주년 때 조성한 「대한광복단기념공원」이 있고, 그 기념공원에서 빤히 내려다보이는 곳에 동부리 토성마을이 있다. 이곳이 강정애 국가보훈부 장관이 어릴 적 살았던 작은 마을이다. 글쎄, 대한광복단과 국가보훈부의 DNA가 여기에서 출발한 건 아닐지?
강정애(姜貞愛, 1957년생) 장관은 보훈처가 국가보훈부로 승격된 뒤 두 번째 수장을 맡았다. 홍익여고와 숙명여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후 파리 제1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으며, 1998년에 숙명여대 교수로 선임되어 취업경력개발원장을 거쳐 숙명여자대학교 총장에까지 올랐다. 그의 이런 꿈을 영글게 했던 마을이 풍기읍 동부리 토성마을이며, 풍기에서 출생하여 풍기초, 풍기중학교를 졸업했기에 흔히들 ‘풍기의 딸’이라고 지칭된다.
영주시 풍기읍 산법리 동양대학교 인근에 자리 잡은 「대한광복단기념공원」은 기념관을 비롯해 기념탑 등 조형물들이 잘 어울려 있다. 1995년에 조성되었으니 벌써 30년이 된 현충 시설이다. 이곳으로부터 지근거리의 토성마을 골목길에서 꿈 놀이하던 소녀 강정애가 2023년 보훈부 장관으로 취임하여 대한민국 국무위원이 되었으니 채 2㎞도 안 되는 광복공원과 토성마을 사이에 무슨 전생의 인연이라도 있었던 것은 아닐까?
강 장관의 부친(강갑신, 1926~2021)은 6.25 참전 용사로 무공훈장을 받은 국가유공자이다. 그래서 그의 생전 이야기는 일제강점기의 고난과 부산에서 강원도 화천까지의 한국전쟁 무용담이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고 한다. 그는 개성에서 출생하여 십승지를 찾아 풍기로 내려온 소위 정감록파의 일원이다. 이곳 토성마을에 정착하고는 오랫동안 인삼, 과수 등의 농사를 지으면서 강정애 장관을 비롯한 7남매를 훌륭하게 공부시켰다고 한다. 풍기의 「대한광복단기념공원」 충훈탑에는 <이곳 출신 강갑신… 등 6·25전쟁 참전유공자와… 이들의 숭고한 희생정신과 애국정신을 널리 계승하고…> 이렇게 새겨진 명문이 보인다.
또, 강 장관의 시조부는 독립운동가이자 초대 육군 보병50사단장을 지낸 백인(百忍) 권준(權晙, 1895~1959) 장군이다. 그는 상주시 이안면 여물리 주암마을에서 태어났다. 대한광복단을 창설한 소몽(素夢) 채기중(蔡基中)의 생가인 이안면 소암리에서 서쪽 들판 하나 건너는 이웃 마을이다. 권준은 22살 되던 해에 동향 선배이자 자신의 큰형과 친구뻘 되는 채기중 선생의 대한광복단에 가입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리고는 곧장 만주로 가서 신흥무관학교를 졸업한 뒤 의열단을 결성해 활동자금 관리 등 핵심역할을 맡았다.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내무부 차장으로 활동했고, 광복 후 육군사관학교 8기로 임관해 대령 계급장을 달고 초대 수도경비사령관 등을 역임하며 국군 창설의 초석을 다졌다. 1954년 원주 지역 경비사령관일 때는 의병장인 민긍호 묘역을 정비하고 추모비를 세우기도 했다. 충남 유성에서 별세하였고, 정부는 1968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국립서울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되어 있다.
강 장관의 시아버지 권태휴(權泰烋, 1917~1990) 지사 역시 독립유공자이다. 아버지 권준 장군의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1927년 가족을 따라 중국으로 건너가 윈난대학을 졸업했다.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중국 중앙군관학교 특별훈련반에 입교하여 군사교육을 이수한 뒤 조선의용대에 입대하여 활동했다. 또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밀명을 받고 화중 일대에서 정보 수집 등 지하 활동을 전개하다가 8.15 광복 후 서울로 귀환하였다. 한국전력공사 팔당댐 수력발전소장 등을 지냈다. 정부는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되어 있다.
이런 국가유공자의 딸, 독립유공자의 며느리인 강정애가 국가보훈부 장관에 임명되었으니 국가와 민족을 위한 집안 어르신들의 유지를 잇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