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구속되고 구속을 선고한 법원은 초토화되었다. 국회는 국회대로 대립과 반목으로 소통과 합의를 상실하고 제각각 합리적이라는 말로 포장하며 바람 잘 날이 없다. 이런 시대를 난세라고 하면 너무 나간 표현일까. 난세를 전쟁이나 사회의 무질서 따위로 어지러운 세상을 가리키는 것이라면 이 시대를 두고 난세(亂世)라고 불러도 별로 이상할 게 없다. 정말이지 지금까지 보도듣도 못한 속보나 대형 뉴스가 눈만 뜨면 화면에 가득하니 말이다.
이런 시대에 불현듯이 삼봉 정도전 선생이 떠올랐다. 삼봉 선생은 『조선경국전』에서 왕권보다는 신권을 중요시하는 나라를 꿈꿨다. 선생은 중국의 사례를 들면서 임금과 신하가 모두 성인이면 서로 더불어 태평한 정치를 이루고, 임금이 신하만 못하면 임금은 신하에게 전권을 맡기고, 임금의 자질이 중간 정도쯤 되면 재상이 훌륭한 사람을 얻으면 정치가 잘되고, 재상에 훌륭한 사람을 얻지 못하면 정치가 어지러워진다고 했다.
『경제문감』에서는 이를 더욱 정밀하게 정리하여 재상론으로 발전시켰다. 임금의 자질은 다 같지 않아서 명철하고 우매하며 강하고 약한 차이가 있다. 재상은 임금이 갖춘 자질에 따라 임금의 아름다운 점은 받아들이고 잘못된 점은 바로잡으며, 옳은 일은 받들고 옳지 않은 것은 막아서 국가 경영을 바르게 해야 한다. 결국은 임금의 자질은 다양하니 재상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재상이 이러한 역할을 잃어버리면 나라가 어지럽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무엇보다도 대관과 간관 제도를 정비하여 조선시대의 언로가 잘 통하도록 제도를 정비했다. 요즘으로 치면 언론의 비판 기능을 확대하여 정치가 부패하지 않도록 제도적 장치를 했다. 언론의 비판 기능이 있어야 임금을 바르게 하고, 임금에게 허물이 있을 때는 목숨을 걸고 아뢰어야 한다. 간관은 임금이 ‘옳다.’ 하더라도, ‘옳지 않습니다.’ 할 수 있으며, 임금이 ‘꼭 해야겠다.’ 하더라도, 간관은, ‘반드시 해서는 안 됩니다.’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와 고려 말과 조선 초의 상황을 대비할 수는 없다. 그러나 임금의 도리와 재상의 역할을 읽다 보면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와 뭔가 닮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임금과 대통령을 같은 선상에 두고 생각할 수는 없지만 본질적인 측면에서 보면 어느 정도 대비는 가능할 것이다. 특히 간관은 관료나 언론의 역할을 충분히 대변하고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대통령은 자기의 부족함을 메우기 위해 적재적소에 적합한 관료를 선택했는지도 궁금하다. 대통령과 정부 관료의 관계, 행정, 입법, 사법부의 삼권분립은 바르게 작동되었는지도 그렇다. 관료들은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면서 대통령에 대해서 목숨을 걸고 비판 기능을 수행했는지도 살펴봐야 한다. 언론이 비판 기능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었는지와 정부에 대해서 언론이 비판할 때 불편하지만 그것을 귀담아 들었는지도 말이다.
선생의 『조선경국전』과 『경제문감』을 읽으면서 그 혜안과 예지력에 다시 한번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한 국가의 경영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와 국가 경영을 하는 관료를 어떤 시각으로 바라봐야 하는지를 배울 수 있다. 임금은 머리, 재상은 임금의 심장과 배, 대간은 임금의 눈과 귀, 고을의 수령은 임금의 발톱과 손발이 되어 국가 정책을 집행해야 한다고 비유로 설명하면서 통일성 있는 국가 경영을 설명했다.
영주시립도서관에서 서천 너머 삼판서고택을 바라본다. 삼판서고택은 정도전의 생가이기도 하지만 나주 유배를 마치고 영주에서 4년 가까이 유랑의 삶을 살면서 저 고택을 드나들면서 삼봉의 사상의 폭과 깊이를 더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보면 삼판서고택을 넘어 영주는 조선 국가 경영의 가장 기본을 다듬은 곳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일을 겪으면서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과 함께 삼봉 정도전 선생이 생각나는 것은 우연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