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최상목(崔相穆) 권한대행 일거수의 관심이 국민적 주목을 받고 있다. 전혀 예측하지 못한 국가 초유의 대행 체제가 이어지면서 그는 1인 4역의 고역 사태를 맞은 것이다. 아직 대행으로서의 업무파악도 옳지 못한 상태에다 국내 최대의 항공기 사고까지 겹치게 되어 정신이 혼미할 만한데 내외의 압박까지 멈추지 않으니 고초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런 중에서도 그는 서울 법대 수석 졸업자답게 ‘천재 관료의 묘수’를 두면서 난국을 버티어내고 있다는 평을 받으니 그나마도 다행스러운 일이다.
최상목은 대한민국 경제관료이다. 1963년 서울 태생인 그는 오산고와 서울대를 졸업했다. 원희룡 장관 등과 대학 동기이다. 재학 중 행정고시에 합격했고 서울대 법대를 수석 졸업했다. 이후 미국 코넬대 대학원에서 거시경제학을 연구하여 박사학위를 취득하였고,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과장, 대통령실 경제금융비서관, 기재부 제1차관 등 거시경제 핵심 요직을 역임했다. 특히 그는 증권거래법과 신탁업법, 선물거래법 등 6개 자본시장 관련 법률을 통합한 <자본시장법>을 만들어내는 데 크게 기여했으며,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때 대응 체계를 마련하기도 했다.
지난 2022년부터 대통령비서실 경제수석을 지냈으며, 이후 기획재정부 장관 겸 경제부총리를 역임하고 있다. 평소 빠르고 정확한 판단으로 ‘천재·엘리트 관료’라는 수식어가 늘 붙어 다니던 그였다. 대한민국 경제정책의 설계자로서 깊이 있는 전문성과 리더십을 발휘하고 다양한 공직 경험을 바탕으로 지속 가능한 경제 성장을 위한 정책을 집행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는데 지금은 짐이 너무 무거운 정치판에 던져진 형국으로 보인다.
20여 년 전 김진표 부총리 겸 재경부 장관의 비서관으로 시작하여 강만수 기재부 장관 비서실장, 최경환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 정책보좌관을 역임하면서 굵직굵직한 장관 밑에서 경륜을 쌓아 일찍이 ‘미래의 경제부총리감’이라는 평가가 있었으나 기구하게도 탄핵 정국을 3번이나 겪었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2017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 2024년 윤석열 대통령 탄핵 정국이 그것이다. 처음 노무현 탄핵 때에는 증권제도과장이었고, 박근혜 정부 탄핵 정국 때는 대통령비서실 경제금융비서관으로 근무했다.
문재인 정부 시절에는 기재부 1차관을 끝으로 공직을 떠나 농협대학교 총장을 지내기도 했다. 윤석열 정부 출범으로 대통령실 경제수석을 역임한 후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으로 6년 만에 금의환향했지만, 비상계엄 사태가 터지면서 그는 또다시 탄핵 정국의 회오리 속으로 들어가야 했다. 이후 어떤 묘수가 터질지 모두가 주시해볼 일이다. 최상목의 공직자 재산 등록에는 봉화 상운 가곡리 반송마을의 임야가 신고되어 있다. 해주 최씨 선산이라고 한다. 반송마을은 약 300여 년 전 풍산 류씨가 개척했는데 당시 마을 입구에 큰 소나무가 울창했으며 숲 모양이 반(盤)처럼 생겨 반송이라는 마을 이름이 생겨났다.
이후 단양 우씨가 이주해오면서 풍산 류씨들은 떠나고 단양 우씨 단일 집성촌이 되었다. 근세 들어 단양 우씨들이 발 빠르게 기독교를 받아들여 계몽한 탓에 마을이 일찍 개화되었다고 한다. 마을 안쪽 양지바른 산 아래 고즈넉한 반송교회가 올해로 창립 100주년을 맞는다. 최상목의 조부가 이곳에서 장로로 활약했던 교회이다. 최장로의 흔적으로는 최대행이 재산 등록한 진등골 마루에 깔끔하게 자리 잡은 묘소와 진등골 뽕밭에 최장로가 지었다는 잠실(蠶室)이 얼마 전까지 남아 있었다고 한다. 최장로는 평소 알뜰하고 이웃을 아꼈던 사람으로 전해오고 있다.
그런 조부의 영향일까. 최상목의 서울집 아파트는 복도식 서민 아파트여서 권한대행의 경호에 문제가 발생했다는 보도가 있을 정도로 그는 청렴한 공무원이라는 이야기가 들린다. 상목(相穆)이라는 이름에서도 느껴지듯이 배우자와 1남 1녀의 가족들은 서로 화목한 가정으로 알려져 있으며, 최상목 부총리는 공직 생활과 가정에 균형 잡힌 삶을 추구하고 있단다. 이런 분위기 속에 자녀들도 명문 학교에 이어 학문과 인성 모두에 방점을 받고 있다는 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