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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중의 영주 톺아보기 [148] 살아가는 게 아니라 살아내야 하는 시대

2025. 01. 09 by 영주시민신문

‘살아가다’를 사전에서 ‘생활해 나가다, 목숨을 이어 가다’로 뜻풀이하고 있다. 살아가는 게 보통이 아닌 우리네 삶에서 생각해 보면 좀 싱겁다는 느낌이 든다. 이른 아침에 폐지 한 리어카를 싣고 힘들게 비스듬한 길을 올라가는 것을 보면서 살아간다고 말하기에는 뭔가 삶의 비장함을 다 표현하지 못하는 것 같아서 미안하기까지 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살아가는 것 그 이상의 무언가가 있는 것 같다.

살아간다는 것은 삶을 지속하는 과정을 의미한다. 시간을 따라 삶을 이어 가며 그 속에서 무언가를 만들어 가는 행위를 표현하는 것이다. 단순히 존재하는 것을 넘어 삶의 과정과 행동을 내포한다고 할 수 있다. 어려움이 있다고 하더라도 흔들림 없이 꿋꿋하게 살아가고 있을 때 우리는 살아간다고 한다. 그러니 살아간다는 것은 단순한 존재 그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살아간다는 것도 그렇게 싱거운 의미는 아닐 듯하다.

이에 비해서 ‘살아내다’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견뎌내면서 살아감을 뜻한다. ‘내다’는 앞말이 뜻하는 행위를 스스로 힘을 써서 능동적으로 끝내어 이룸을 나타내는 말이다. 그러니 살아낸다는 말은 단순하게 생존한다는 의미를 뛰어넘어 고통이나 시련을 겪으면서도 삶의 의미를 찾거나 자신의 방식으로 어려움을 극복하려는 강인한 의지가 들어 있다. 살아낸다는 누구의 도움도 없이 스스로 힘을 써서 무엇인가 이루어내야만 하는 것이기에 더욱 값지다. 어떻게 보면 무척 삶의 깊이가 있는 말이다.

니체는 “고통을 겪는 자가 더 강해진다.”라고 말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단 하나도 쉬운 것이 없다. 어쩌면 고통과 시련의 연속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살아낸다는 것은 고통을 고통으로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성장할 수 있는 계기로 삼는다. 어쩌면 우리에게 다가오는 고통을 피하지 않고 오히려 선택함으로써 새로운 삶의 의미를 창조해 나가는 것이다. 이럴 때 살아낸다는 것은 이전보다 훨씬 강해질 수 있는 길을 선택하는 것이다. 따라서 살아낸다는 것은 자기 자신만의 의미를 찾아가는 창조적인 행위라고도 하겠다.

만해의 시 ‘님의 침묵’이 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에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은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을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었습니다.” 뜻밖에 이별한다는 것은 슬픈 일이지만 스스로 사랑을 깨닫는 것이기도 하기에 슬픔을 희망으로 바꾼다는 것이다. 만해가 변절하지 않고 일제강점기의 암흑기를 살아낸 이유이기도 하다.

이형기 시인의 ‘낙화’가 있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 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 할 때,/ 무성한 녹음과 머지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꽃잎이 지고 떨어지는 것은 무척 슬픈 일이지만 머지않아 열매를 맺는다는 생각을 하면 축복이 될 수 있다. 그야말로 화자는 결별에 묻혀 사는 것이 아니라 슬픔을 뛰어넘어 살아내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야 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그냥 만만하게 보다가는 시대의 흐름에 휩쓸려서 돌이킬 수 없는 나락에 빠질 수 있는 그런 위태로운 상황을 살아가고 있다. 특히 요즘이 더 그렇다. 한 치 앞을 내다보기가 어려운 형국이다. 이게 힘이 있을지 아니면 저게 더 나을지를 생각하며 눈앞에 이익을 좇다가는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를 수 있는 그런 세상이다. 이런 때일수록 원칙에 충실하면서 좀 더 멀리 내다볼 수 있는 살아내기를 해야 한다. 그냥 소리 높은 목소리만을 좇아갈 때는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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