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를 위시한 경상도에서는 「배추전」을 ‘배차전’이라고 부른다. 「배추전」은 배춧잎에 밀가루 반죽을 묻혀 기름에 구워낸 전(煎)이다. ‘배차적’으로 부르기도 한다. 경상도의 향토음식으로 관·혼·상·제례는 물론 일상 간식이나 반찬으로도 많이 먹는 음식이다.
「배추전」은 먹고살기 힘들었던 시절, 척박한 산골 동네에서 태어난 것 같다. 하루하루가 끼니 걱정으로 고달팠던 서민들이 배곯지 않기 위해 만들어낸 애환 음식이라고 하기도 한다. 가을걷이가 끝나도 허기를 채우기가 마땅치 않았던 내륙 산간에 그나마 흔한 게 배추였다. 배고픈 서민들은 추수 후 밭고랑에 이리저리 나뒹구는 배추 시래기를 주워다가 전을 부쳤다.
겨울이 오기 전 땅속에 구덩이를 파고 묻으면 이듬해 봄까지 보관이 무난했으므로 겨울 동안 「배추전」을 많이 부쳐 먹었다. 이리저리 남의 눈치 안 보고 「배추전」을 부쳐 먹는 그런 집은 그나마 형편이 나은 집이었다. 이런 어두운 산중에서 구휼(救恤) 음식으로 탄생한 「배추전」이 통혼 등으로 자연스럽게 인근 경북 북부권으로 퍼져나가 이 지방 대표 음식처럼 자리 잡았다는 게 정설처럼 전해진다.
「배추전」은 배추의 고유한 단맛과 시원한 식감을 그대로 느끼는 순수한 맛이 일품이다. 밀가루 옷을 가능한 한 얇게 입혀 배추 본래의 맛을 최대한 살리는 것이 좋으며 가을 김장용 배추가 달고 맛있다고 한다. 김장하고 남은 절인 배추로 전을 부치기도 하며 때로는 메밀가루를 사용하기도 한다.
「배추전」의 유래는 다소 모호하지만,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의 문헌에서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문헌상으로 배추는 고려 시대 의학서인 『향약구급방(鄕藥救急方)』에 처음 등장한다고 한다. 당시에는 식용보다는 약용 채소였고 조선 시대에 들어와서 식용으로 널리 재배되기 시작했단다. 조선 후기까지는 이파리가 둥글게 말리지 않고 길게 뻗어 난 형태의 ‘얼갈이배추’를 즐겨 먹었다.
이후 배추의 육종 연구가 시행되면서 여러 차례의 품종 개량을 거쳐 지금의 배추가 일반화되었다. 우리나라 4대 야채 중에서도 항상 첫손가락에 꼽히는 배추는 수분 함량이 높고 비타민 등 영양소가 풍부하게 함유되어 있으며, 특히 섬유질이 풍부한 채소이다. 최근 영양소가 풍부한 건강식으로 인기를 끌자 아예 시래기용 채소를 재배한다는 농가가 생겨날 정도로 겨울철 보양 재료로 새롭게 인기가 높아지고 있는 ‘시래기’의 종주 역시 배추였다.
「배추전」은 경상도 대표 향토음식이다. 경북 북부 산간 지역의 「배추전」은 일상식은 물론 의례 음식에서 결코, 빠트리지 않는다. 제사를 비롯한 집안의 모든 대소사에 빠지지 않는 음식이며, 일상적인 간식이나 반찬으로도 많이 해 먹는 등 쓰임새가 다양한 음식이다. 그런 점에서 강원도의 메밀전에 비유될 만하다. 배춧잎 한 장을 그대로 지져낸다는 점에서 강원도 메밀전과 유사하지만, 메밀전은 주재료가 김치이고, 또 밀가루가 아니라 메밀 반죽을 사용한다는 점이 다르다. 또한, 전라도 잔칫집에 ‘홍어’가 있다면 우리 지역 잔칫집, 제사상에는 반드시 「배추전」이 올라 있다.
서민들이 허기를 채우기 위해 시작된 「배추전」은 태생부터 양반가 음식과는 거리를 두고 있었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이 지역 모든 집안의 대소사에 빠질 수 없는 음식으로 정착됐다. 정사각형으로 반듯하게 자른 뒤 차곡차곡 단정하게 쌓아 올려 차례상에 올린다. 「배추전」의 유래는 한국 전통 농업과 긴밀히 연관되어 있다. 예로부터 농민들은 가을배추를 많이 재배하여 겨울 동안 저장하기 위해서 발효시키고, 또한, 부족한 식량을 보충하기 위해 「배추전」을 만들었다.
특히, 「배추전」은 추위를 이기는 따뜻한 식사로 많이 먹히면서 한국 전통 음식으로 뿌리내리게 되었다. 수년 전 한국도로공사에서 실시한 어린 시절 추억을 끄집어내는 <고속도로 휴게소 이색 향토음식>으로 「배추전」이 뽑히기도 했다. 김장이 끝난 겨울철에 소박한 재료로 만들어진 「배추전」은 어머니가 손으로 쭉쭉 찢어서 입에 넣어 주는 추억의 명품이었다. 이참에 김천의 <김밥축제>, 원주의 <만두축제>와 같이 영주의「배추전 축제」는 어떨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