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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중의 영주 톺아보기 [146] 한해 끝자락에서 소백산정을 보다

2024. 12. 27 by 영주시민신문

2024년의 끝자락에 서 있다. 세상은 언제나 다사다난하지만 올 연말은 당혹스러울 정도로 많은 일이 일어났다. 누구도 감히 상상할 수 없었던 계엄 사건이 우리 역사 속에 나타난 것이다. 역사에는 원인과 결과가 있어서 토인비는 이것을 도전과 응전이라고 했다. 우리도 가난이라는 도전 앞에서 산업화로 응전하였고, 자유의 억압이라는 도전에 민주화로 맞서서 지금의 민주주의를 쟁취할 수 있었다.

도전은 어느 시대, 누구에게나 있기에 중요한 것은 도전에 맞서 어떻게 응전하느냐가 중요하다. 토인비는 도전에 맞서 적절하게 응전하기 위해서는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해결책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산업화와 민주화 과정에서 어느 나라보다도 창의적이고 혁신적으로 노력하고 싸우면서 응전해 왔기에 우리는 성공할 수 있었다. 응전이 성공하면 문명은 더욱 발전하지만 실패하게 되면 쇠퇴하거나 붕괴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보면 이번 계엄은 창의적이지도, 혁신적이지도 않다. 계엄은 갑자기 우리 앞에 나타난 뚱딴지같은 사건에 불과하다. 역사적인 당위성을 찾을 수가 없기에 사람들의 조롱거리로 전락하고 말았다. 헌법재판소에서 어떻게 판단을 내릴지는 알 수 없지만 대부분 국민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엄청난 사건으로 현재는 각인되고 있다. 이 해의 끝자락에서 조용하게 기도하는 마음으로 송구영신을 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렇게 삶이 당혹스러운 어느 날 아침, 눈 덮인 소백산 산정이 눈앞에 떡 나타났다. 전날 엄청나게 많은 눈이 내려 산정이 덮인 데다가 바람이 불어 상고대가 소백산에 가득했다. 소백산 전역이 하얗게 뒤덮여 있었다. 하얀 침묵으로 소백산은 정좌하고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마음의 부담을 안고 그냥 절필할까 말까를 고민할 때 소백산이 앞에 나타나서 침묵으로 우뚝 서 있었다.

겨울 소백산의 하얀 품은 정말 넓고 컸다. 흰 봉우리들이 연결되어 영주를 둘러싸고 있었다. 한 봉우리라도 영주에서 멀어지지 않고 영주 쪽을 향해서 팔을 벌리고 서 있었다. 영주를 중심으로 반원을 그리는 것처럼 서 있는 품이 하얀 능선이어서 더욱 선명하게 드러났다. 아마 단양은 사람으로 말하면 등 뒤쪽이었다. 겨울 소백산이었으나 영주를 안고 있는 품이 얼마나 따듯하게 느껴졌는지 모른다.

겨울 소백산은 한마디로 정신이었다. 그것도 흰 눈이 정상에 쌓여서 고매한 정신으로 빛나고 있었다. 세속의 어떤 때도 물들지 않은 고고한 정신이 소백산정에 살아 있었다. 몇몇 사람들이 산정을 밟고 지나갔겠으나 그것마저도 넉넉하게 받아들이는 정신이었다. 예부터 영주에 선비들이 많은 것도 어릴 때부터 눈 덮인 소백산을 보면서 깨끗하고 고결한 정신을 알게 모르게 체험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잠깐 했다.

눈 덮인 산정에도 생명은 숨 쉬고 있다. 철쭉도 살아 있고 주목도 살아 있다. 소백산은 야생화도 일 년생은 키우지 않는다. 그래서 야생화도 겨울에는 죽은 듯이 보이지만 꽝꽝 언 땅속에서 어김없이 봄을 준비하고 있다. 언 땅에서 잠을 자기도 하면서 절대로 겨울에 뿌리를 눈에 내어주지 않는다. 춥지만 넉넉하게 추위를 받아들이면서 눈이 산정을 덮고 또 덮을 때면 눈을 이불 삼아 오히려 따뜻함을 느끼면서 겨울을 난다.

그래, 일단은 소백산정처럼 살아볼 일이다. 헌재는 헌재대로 판단할 것이며, 법은 법대로 바른 판단을 할 것이다. 국민 누구도 계엄을 받아들이지 않는 엄중함을 안다면 사필귀정(事必歸正)이라는 말처럼 정의와 공의가 이 땅에 세워질 것이다. 소백산의 큰 품으로, 고매한 정신으로, 끊임없는 생명력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우리 자신을 너무 구차스럽게 여기지 말고, 서로를 너무 조롱하지 말고 엉뚱하지 않게 살아내는 것이다. 지금까지 애쓰면서 하나하나 세워 온 탑을 한꺼번에 무너뜨릴 수는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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