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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용호의 문화확대경

배용호의 문화확대경 [300] 독서가 가장 즐겁다는 지락재(至樂齋)

2024. 12. 20 by 영주시민신문

소수서원의 강학 영역은 명륜당(明倫堂, 강학당)을 중심으로 하여 직방재, 일신재, 학구재, 지락재의 순으로 건물이 배치되어 있다. 명륜당 앞마당 끄트머리에서 담 넘어 탁청지를 굽어보고 선 건물이 지락재이다. 즉, 명륜당이 소수서원 강학의 중심 건물이라면 지락재는 가장 멀리 떨어져 있어 눈길이 잘 가지 않는 볼품없는 건물이라는 뜻이 된다. 하지만, 바꾸어 보면 하학상달(下學上達)이라는 학문의 체계에서 지락재는 맨 첫 단계라는 소중한 뜻을 가진 건물이 되는 것이다.

『明心寶鑑(명심보감)』 훈자편(訓子篇)에 <至樂(지락)은 莫如讀書(막여독서)요, 至要(지요)는 莫如敎子(막여교자)니라>하는 구절이 있다. 세상에서 ‘가장 즐거운 것은 독서요, 가장 필요한 것은 자식 교육이다’라는 뜻이다. ‘지락’은 바로 이 구절에서 따온 이름이다. 책을 멀리하면 정신의 양식을 잃게 되니, 사람은 늘 책을 가까이 두고, 또한 자식을 잘 가르쳐 인류사회에 이바지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말이다. 과거 준비, 수능 준비가 아니더라도, 책 읽기는 인류 문명의 척도가 된다. 작게는 개인의 지식과 인품을 결정한다. 그래서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고 했다.

조선의 허균(許筠)은 세상에서 가장 듣고 싶은 소리가 ‘내 자식의 글 읽는 소리[子弟讀書聲]’라고 했다. 「지락독서(至樂讀書)+지요교자(至要敎子)」를 한꺼번에 해결하는 것이기 때문이리라.

중국의 안지추(顔之推)는 「많은 재물도 재주를 지니는 것만 못하고, 사람을 귀하게 하는 재주는 독서만 한 것이 없다. 한데, 사람들은 세상을 알고 싶어 하지만, 책을 읽으려 하지 않는다. 이는 배부르기를 바라면서 음식을 먹지 않는 것과 같다」라고 했다. ‘황금이 상자에 가득하다 해도 자식에게 경서 한 권을 가르치는 것보다 못하고, 자식에게 천금을 물려준다 해도 재주 한 가지를 가르치는 것보다 못하다’는 말은 반고(班固)의 『漢書(한서)』에 나온다.

책을 묶은 가죽끈이 세 번 끊어질 정도로 열심히 책을 읽은 공자(孔子)는 독서를 하느라 끼니도 잊고, 근심도 잊고, 심지어는 늙어가는 것도 잊어버렸다고 한다. 이렇듯 독서의 중요성과 책 읽는 즐거움에 대한 명구는 동서고금에 수없이 많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나라 독서율이 OECD 국가 중 가장 낮다고 한다. 나라의 출생률이 줄어드는 것만큼 심각하게 우려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조선의 선비들은 책 읽기에 까지도 격식과 절차를 존숭했다. 풍기군수 창석(蒼石) 이준(李埈)이 소수서원 뜰앞에 탁청지(濯淸池)를 파고, 그 위에 앙고대(仰高臺)를 설치하고, 또 그 위 단계에 지락재(至樂齋)라는 서재를 설치한 이유가 그것이다. 탁청지는 ‘맑은 물에 몸을 씻어 자신을 깨끗하게 한다는 의미를 띤 연못’을 말한다. 서원의 연못은 일반적으로 고요하게 사물의 현상을 관찰하거나 비추어 보는 관조의 대상이다. ‘학문 연마를 통해 마음을 밝고 깨끗하게 한다’라는 의미일 것이다.

앙고대의 仰(앙)은 卬(앙)에서 파생되었다. 왼쪽에 서 있는 사람을 오른쪽 사람이 무릎 꿇고 올려다보는 모습의 상형문자라고 한다. 앙고(仰高)는 『논어』에서 ‘스승의 덕은 우러러볼수록 더욱 높고’한 데서 따온 말인데, 앙고대는 탁청지와 지락재 사이의 돈대(墩臺)다. ‘높은 데를 향했을 때는 낮은 데에 소홀해선 안 되고, 앞을 볼 때는 뒤에 소홀해선 않된다’는 격언까지 지닌 곳이다. 탁청지, 앙고대를 다 밟아 올라선 곳에 지락재가 증축되었다. 이제 학문의 길 잎새에서 책을 읽을 준비가 완료되었으므로 ‘독서로 지극한 즐거움을 즐긴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지락(至樂) : 긴 날 밝은 창 아래 정결한 책상 앞에서 옷깃을 여미고 앉아 정신을 맑게 하여 책을 읽으며 의리(義理)에 침잠하는 것은, 마치 잠에서 깨어나는 것과 같고, 마치 배고픈 중에 밥을 먹는 것과 같다. 그런 뒤에 스스로 체득한 기쁨에 고무되면 이는 천하의 아름다움을 다 가지고도 나의 즐거움과 바꿀 수 없게 된다. 그릇된 생각이 절로 없어지고, 외물의 유혹이 절로 끊어지며, 즐거움이 내 마음속에서 천지사방으로 넘쳐흐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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