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배용호의 문화확대경 [299] 삼성전자의 초석 강진구 회장 < 배용호의 문화확대경 < 오피니언 < 큐레이션기사 - 영주시민신문

상단영역

뉴스Q

기사검색

본문영역

배용호의 문화확대경

배용호(전 영주교육장)

배용호의 문화확대경 [299] 삼성전자의 초석 강진구 회장

2024. 12. 12 by 영주시민신문

최근 삼성전자가 전례 없는 위기를 맞은 가운데 삼성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나아가 세계 시장이 긴장하고 있는 분위기란다.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의 부동의 1위가 흔들리고 있다는 것인데, 반도체 사업 50주년을 별도의 공식 행사 없이 지나는 점도 이 같은 어려움이 반영된 결과로 보여진다.

삼성전자는 1974년 12월 6일, 「한국반도체」를 인수하여 「삼성전자」로 명패를 바꾸면서 반도체 사업에 본격 행보를 내디뎠던 우리나라의 간판 기업이다. 대한민국 최고의 기업이자 세계의 반도체를 뒤흔들 수 있는 이 부분의 세계적 거물인 것이다. 미국과 일본보다 27년이나 뒤진 후발 주자였지만, 현 시가총액 기준 세계 21위, 아시아 3위이자 대한민국 1위의 거대한 기업이 되었다. 그래서 삼성전자의 부진은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세계인들의 걱정을 깊게 하는 것이다.

삼성전자는 1983년 2월 이병철 삼성 창업회장이 이른바 「도쿄선언」을 통해 반도체 사업진출을 세계 시장에 공식 선언했고, 미국과 일본에 이어 세계 3번째로 첨단 반도체 개발에 성공했다. 「도쿄선언」 후 불과 6개월 만에 국내 최초로 64K D램 개발에 성공하며 미국과 일본과의 반도체 기술격차를 줄여나갔다.

10년 뒤에는 세계 최초로 64Mb(메가비트) D램을 개발했고, 이듬해인 1993년부터는 전 세계 메모리 반도체 시장 1위에 등극하여 오늘까지 30년 동안이나 이를 지켜냈다. 당시 2억에 불과하던 매출이 올해는 사상 첫 100조를 넘길 것이라 한다. 50년 만에 50만 배로 규모가 커지면서 글로벌 메모리 시장을 주름잡았다. 한국 산업사를 넘어 한민족 역사의 기념비적인 사건으로 기록될 만하다.

「삼성전자」 하면, 이병철-이건희-이재용으로 이어지는 CEO 라인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테지만, 이에 앞서 삼성전자의 사실상 초석을 다진 이가 우리 고장 출신 강진구 회장이라는 사실을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강진구 회장은 1927년 평은 천본리 내매 마을에서 태어나 마을에 있는 사립내명학교에 입학했으나 이후 영주로 이사해 영천공립보통학교(영주초)를 졸업했다. 그 후 대구사범학교를 졸업하여 잠깐 교편을 잡기도 했으나 본인의 꿈을 이루기 위해 다시 서울대 공대 전자과를 진학하게 된다.

한국전쟁 중에는 통역장교로 복무하였다. 제대 후 KBS와 미 8군 방송국에 근무하다가 당시 민영방송의 선두 주자이던 동양방송(TBC, 삼성 계열) 개국에 참여하면서 ‘거의 모든 TV 방송 장비를 우리 기술로 제작하는 선구자적인 역할을 담당했다.’고 당시 함께 근무했던 이건희 회장이 평가하였다. 이후 자신의 전공이던 전자회사로 옮겨 1974년에는 삼성전자 대표를 맡았다. 삼성전자의 반세기가 태동하던 때였다.

강진구 회장은 불모의 대한민국 전자산업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발전시킨 ‘삼성 반도체 신화’의 인물로 꼽힌다. 1983년 세계 3번째 64K D램 출시는 세계 반도체 시장에 삼성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고, 2년 뒤에는 반도체 수출 1억 불을 달성했으며, 3년 뒤에는 256K D램 양산을 주도하기도 했다.

그는 삼성전자 상무로 스카우트 되어, 전무, 사장, 대표이사 사장, 대표이사 회장을 역임하면서 삼성 계열사의 초석을 다진 인물이다. 그리고 이건희 회장에 앞서 삼성전자 회장을 맡아 삼성을 세계 굴지의 기업이 되도록 길을 다졌다. 특히, 이공계 출신으로 전문경영인 체제의 모델을 만든 것으로 평가받는다. 그리하여 그는 1995년 설립된 「삼성 명예의 전당」에 첫 번째 인사로 헌액되었다. ‘명예의 전당 1호’가 된 것이다.

강진구 회장은 자신의 회고록에서 <어린 시절 영주 읍내에 전기가 들어왔다길래 내매에서 20리를 걸어가 가로등에 달린 전등불이 거꾸로 매달렸는데도 타지 않고 대낮같이 밝은 것을 보고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하면서 밤길을 돌아왔다>고 했다. 삼성전자를 세계적 기업으로 일궈낸 전등 불빛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된 것이다.

“강진구 회장의 업적은 지역과 삼성을 넘어 세계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른바 ‘선비’로 상징되는 영주지역의 역사 문화적 특성을 현대적 가치로 재해석하여 이들에 대한 선양사업을 전개할 필요가 있다.”고 동양대 송호상 교수는 피력하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기사 댓글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