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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중의 영주 톺아보기 [144] 무청 시래기의 맛과 정감 그리고 깊이

2024. 12. 06 by 영주시민신문

무청 시래기는 무의 잎과 줄기를 건조해 만든 우리 고유의 식재료로 겨울철에 주로 사용된다. 무를 뽑아 저장하고 줄기와 잎을 버리지 않고 처마 밑에 말려서 손질해 보관하는 것을 말한다. 무청 시래기는 주로 된장국, 찌개, 나물무침 등에 사용하며 깊은 맛과 독특한 식감을 더해줘서 겨울철 별미로도 명성이 높다. 옛날 식재료가 풍성하지 않았던 때에 김장과 함께 겨울철 사람들에게 영양분을 공급해 주는 주재료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릴 때는 즐겨 먹지 않았으나 어른이 되면서 그리움을 담아 먹는 음식이 시래기이기도 하다.

무청 시래기는 시래기국을 끓여서 먹기도 하고, 불린 시래기를 들기름과 간장으로 볶거나 무쳐서 먹기도 한다. 시래기를 된장찌개에 넣어 끓이면 구수하면서 깊은 맛을 낸다. 시래기와 구수한 된장찌개가 어울려 조화로운 맛을 만들어낸다. 양념을 가미해서 무쳐서 먹으면 시래기 무침은 밥도둑이 되기도 한다. 어떻게 먹든지 간에 무청 시래기는 부드러운 질감과 구수한 맛이 일품이다. 밭에 버리면 쓰레기로 처치 곤란한 무청이 음식으로 거듭나는 순간이다. 겨울 음식 중 참 특별한 음식이다 싶다.

맛도 맛이지만 무청 시래기에는 할머니와 어머니의 모습이 들어 있다. 자식에게 평생을 헌신한 분들의 농익은 삶이 스며 있다. 어디에도 날카로운 젊은 사람의 목소리가 들어 있지 않다. 구수한 맛이며 깊은 정감은 남들한테 잘 속아넘어가는 어리숙한 남자의 한 모습도 들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무청 시래기가 들어 있는 음식을 먹다 보면 왠지 모르게 마음이 훈훈해지는 것 같다. 어떻게 보면 무청 시래기와 같은 사람이라면 그냥 한 번쯤은 알고도 속아주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것도 시래기의 정감 때문인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무청 시래기는 해장국이나 감자탕에 잘 어울린다. 하루의 고된 일을 마치고 감자탕을 먹으면서 한잔 걸치는 사람에게 어울리고, 아침에 일어나서 속이 쓰려 힘든 분들의 속도 시원하게 풀어준다. 시래기국은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일을 나서는 사람들이 마땅하게 갈 곳이 없을 때 찾는 음식이다. 무청 시래기는 그런 사람들의 속에 들어가서 쓰린 속을 풀어주고 쓰라린 마음에 들어가서 그 마음을 녹여 준다. 그러고 보면 무청 시래기는 시래기가 아니라 사람들을 가까이에서 살게 하는 깊이까지를 더한다.

텃밭에서 무를 뽑아 저장한 후 무청 시래기를 연탄 창고 처마에 줄을 매어 걸었다. 시래기를 걸고 돌아서는데 교회 십자가가 눈에 들어왔다. 십자가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매달려 있었다. 연탄 창고 처마에는 시래기가 걸려 있고 십자가에는 예수님이 걸려 있었다. 언젠가는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서 그들의 속과 마음을 구수하고 따듯하게 할 시래기였기에 그 속에는 성자의 모습이 들어 있다고도 하겠다. 정말 아름다운 상징이 연탄 창고에 매달려 있어서 시래기를 보는 내내 마음이 애처로우면서도 훈훈했다.

“이제는 사람들 곁으로 가서/ 몸을 데우고 마음으로 들어가야겠다./ 겨울바람이 불고 눈이 내린다./ 얼고 녹기를 반복하면서/ 부서질 듯한 몸으로 집에 돌아와/ 연탄 창고에서 앞산을 보니/ 교회 십자가에 예수 그리스도가 걸려 있었다./ 연탄 창고 철삿줄에/ 무청 시래기가 걸려 있었다.” 하찮게만 보이던 무청 시래기가 그날따라 말할 수 없는 감동으로 밀려왔다. 연탄 창고에서 성자를 만난 것이다. 그냥 지나치기에는 시래기의 모습이 너무나 아름답게 다가왔다. 예수 그리스도와 시래기가 대칭되어 햇빛에 반짝이고 있었다.

멀지 않아 무청 시래기는 밥상에서 사라질지도 모른다. 자극적이고 단 것을 좋아하는 시대와 시래기는 맛도 그렇지만 이미지도 아주 극단적이어서 서로 어울리지 않는다. 음식이라는 것 외에는 닮은 점이 전혀 없다. 어쩌면 시래기를 좋아하는 세대와 단맛을 좋아하는 세대의 괴리와도 같은 거리라고 하겠다. 분명한 것은 좋으나 구수한 맛과 정감이 사라지고 있는 우리 사는 세상사를 보여주는 것 같아서 어쩐지 마음이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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