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배용호의 문화확대경 [297] ‘에덴의 동쪽’에서 만난 산머루와인 < 배용호의 문화확대경 < 오피니언 < 큐레이션기사 - 영주시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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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용호의 문화확대경

배용호 (전 영주교육장)

배용호의 문화확대경 [297] ‘에덴의 동쪽’에서 만난 산머루와인

2024. 11. 22 by 영주시민신문

「멀위랑 ᄃᆞ래랑 먹고/ 청산에 살어리랏다」「청산별곡」의 한 구절이다. 머루는 한국, 일본, 중국 등의 야산에서 자생하는 넝쿨식물이다. 봉화 물야 오전리 생달마을에는 산머루를 원료로 와인을 생산하는 회사가 있다. 선달산 기슭 오지에서 채취된 산머루가 이곳 ‘(주)에덴의 동쪽’에서 레드와인 「엠퍼리」로 숙성되는 것이다. 오지마을답지 않은 상호 때문에 대단한 회사로 오인되기도 하지만, 사실 ‘에덴의 동쪽’은 노부부의 노동력이 전부인 초라한 가내공업이다. 그러기에 초창기 생산이 고작 월 1,000병 정도였다. 최근에는 좀 숙달되어 월 4,000병가량으로 늘었단다. 그런 수준이니 백화점 납품이 아니라 주문자에게만 직판하는 소액 거래 형식을 취한다.

최근 국내시장에 토종와인의 위상이 다소 높아지고 있단다. 백화점 납품이 늘어나고, 해외 바이어들도 머루, 복분자, 감, 사과 등 다양한 국산 토종와인을 한국형 웰빙주로 주목하고 있다고 한다. 국산 와인 1호는 1967년 사과로 만든 「파라다이스」였다. 1977년 동양맥주의 「마주앙」은 최고의 히트상품으로 포도주의 대명사가 되었다.

이렇게 잘 나가던 국산 와인이 80년대 말 주류 수입 자유화로 위기를 맞으며, 국내 포도 농장들도 줄줄이 문을 닫았다. 그러던 국산 와인이 최근 반격에 나서고 있다. 백화점들이 ‘감그린’, ‘샤또마니’, ‘머루와인’, ‘복분자와인’, ‘그랑꼬또’ 등 국산 와인 판매를 위해 별도의 존(zone)을 마련했다. 단산 햇빛농원의 ‘쥬네뜨와인’도 그 틈새를 비집었다. “토종와인은 떫은맛이 강하지 않아 여성들에게도 부담 없는 와인”이라는 게 전문가 평이다.

국산 와인은, 당시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뉴욕 각국 대사 만찬에서 건배주로 내놓으면서 세계에 관심이 늘었다고 한다. ‘보해 복분자주’는 샌디에이고 국제와인경연에서 금메달을 획득했고, 국순당의 ‘명작 복분자주’도 샌디에이고 은메달, 댈러스 와인대회 동메달을 연달아 받았다. 더구나 ‘에덴의 동쪽’「엠퍼리」는 국내에서는 유일하게 영국 소더비사 세계명주사전 『와인리포트』에 세계 100대 와인으로 이름을 올렸으니 국내 최고의 와인인 셈이고, 아시아에서는 10종만 포함되었으므로 아시아 10대 명주가 된 셈이다.

이 때문에 일본·호주에서도 와인 전문가가 여기까지 찾아온단다. 농사법과 토질, 기후 등 23가지 평가 항목을 면밀하게 관찰하기 위해서다. 호주의 와인평론가 <데니스 고스틴>이 직접 이곳을 방문하여 「엠퍼리」는 “용이 잠자는 호수와 같은 깊은 맛”이라고 평했다고 한다. 오전약수에다 청정지역 산머루가 독특한 향을 빚는다는 것이다.

‘에덴의 동쪽’ 이미희 대표는 과수에 농약을 치다가 우연히 과수원 가운데서 탐스럽게 익은 산머루를 발견하고는 그걸로 술을 담은 것이 첫 인연이었다고 한다. 실패를 거듭하면서 몇 년간 연구하느라 자금도 수억 원이 들어갔다. 성공 길은 일본 시장을 뚫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오사카 식품박람회에 출품했다. 박람회 첫날은 거들떠보는 이 하나 없었는데, 둘째날 한 여성이 시음하고는, 생산지, 생산량 등을 꼬치꼬치 캐묻더니만 “아도!”라고 외치더란다. 일본 와인 감식전문가 <쯔지하루미> 바이어 이야기다.

『완전히 숙성한 머루의 달콤한 향기가 부드럽게 와인의 표면에 맴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직 액체 속에는 많은 향이 잠겨 있는 듯한 느낌입니다. 용이 사는 깊은 연못일수록 정숙함이 충만한 것과 닮은 것일까요? 입속에 오래 남고, 마치 몇 년간 잠재운 빈티지 포트(포르투갈 와인)와 같은 맛입니다. 거기에 포트 와인과는 다른 젊음을 충분히 갖춘 상당한 고품질입니다.

도대체 이 와인을 어떻게 만들었을까? 놀라움과 의문으로 쇼크를 받았습니다. 새해가 밝자마자, 한국의 봉화를 찾았습니다. 거기에는 또 다른 놀라움이 있었습니다. 노부부가 만들고 있다는 것, 완전히 독학으로 완성 시켰다는 것, 이스트를 쓰지 않고 자연 효모로 만들고 있다는 것, 무농약이라는 것, 와인용 포도가 아니라 산머루라는 것, 물이 명수라 마시면 약효가 있다는 것, 누구에게 배운 것도 아니고, 단지 혼자서 완전히 세계적 수준에 다달았다는 것 등이 놀랍기만 했습니다.

<2002.1.10 소믈리에협회 쯔지하루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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