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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용호의 문화확대경

배용호 (전 영주교육장)

배용호의 문화확대경 [296] 소수서원의 학자수(學者樹)

2024. 11. 08 by 영주시민신문

중국에서는 회화나무가 둥글고 온화하여 학자수(學者樹)로 취급받아 선비가 살던 집이나 무덤 주위에 즐겨 심겨졌다. 우리나라에서도 향교나 궁궐·사찰 경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학자수이다. 그러나 소수서원에서는 서원을 둘러싼 소나무 숲을 특별히 ‘학자수’라고 부른다. 그리고는 이 낙락장송 소나무를 곧잘 유생들에 비유하여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솔숲이 한결같이 서원의 ‘명륜당’을 향해 몸을 구부려 500여 년 동안 서원의 강론에 귀 기울이니 소나무들도 한결같이 유생의 모양을 닮게 되었다는 논지이다. 서당 개 삼년이 아니라 ‘서원 나무 삼백년’의 품위를 갖춘 것이다. 그래서 강학당 쪽으로 집중하지 않은 나무들을 이른바 ‘날라리 소나무’라고 한다는 우스갯소리까지 생겨났다.

서원이 숲과 나무, 계곡 등 자연을 통해 사색과 상생의 지혜를 얻을 수 있도록 구성된 것은 한국 서원이 갖는 중요한 특징이다. 이 중에서도 특히 소수서원은 입장에서부터 퇴장 때까지 아주 흥미로운 동선을 보이는 서원으로 이름나 있다.

소수서원 진입로에서는 제일 먼저 울창한 솔숲이 반긴다. 진입 영역의 첫인상이 강추되는 낙락장송 솔숲이다. 위로 쭉 뻗기도 하고, 적당히 구부러지기도 하면서 배경들을 크게 가리지 않고 충분한 바람 통로를 확보해 준다. 밀도가 낮은 듯하면서도 공간을 그득하게 채우는 부피감 또한 일품이다. 이런 기품을 두루 갖춘 풍치림 솔숲이 소수서원 ‘학자수’이다. 어느 서원에서도 볼 수 없는 풍광이다.

원래 이 진입 영역의 솔숲은 평지에 설립된 소수서원의 뒤가 허(虛)하다는 풍수적인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조성되었다는 견해가 있다. 거기에다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항상 푸르름을 간직하는 소나무처럼 어려움을 이겨내는 참 선비가 되라’는 뜻으로 솔숲이 조성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강학에 힘쓰던 유생들의 정신이 이 세한 소나무와 교류했을 것이며, 자연의 유산 속에서 학문과 사상을 이어 놓게 된 것이다.

더구나 소수서원의 소나무는 겉과 속이 모두 붉은 적송(금강송)이다. 그리고 곧게 자라는 특성을 가졌다. 그리하여 ‘의리와 절개’를 주요 덕목으로 삼는 선비들이 외려 붉은 소나무에게서 충절을 배운다고 하여 ‘학자수’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선비들이 다투어 소나무의 절개를 노래했을 만큼, 이 솔숲에는 ‘정성’의 민족신앙과 ‘이성’의 선비정신이 함께 깃들어 있다.

소수서원의 학자수는 선조 19년 유생 황응규, 광해군 6년 군수 이준을 비롯한 원장과 유생들이 소나무 1,000여 그루를 심었다는 기록이 보이는데, 그중 절반가량이 지금껏 살아남아 오늘의 솔숲이 되었다고 한다. 이후 소를 방목하거나 산불이 나지 않도록 특별히 경계하면서 정성을 다해 가꿔 온 것으로 전한다.

소나무의 원래 말은 ‘솔’이었다. ‘솔+나무’의 합성어에서 ‘ㄹ’이 탈락하여 ‘소나무’가 된 것이다. 한자로는 ‘松’을 쓰는데, 木+公을 합친 글자이다. 진시황이 외출 중 소나무(木, 나무)가 갑자기 내리는 소나기를 피하게 해준 보은으로 나무 중 최고 작위(公, 공작)를 부여하여 ‘松’자가 만들어졌다는 재미있는 이야기도 있다. 어떻든 백성의 무덤에는 버드나무를 주로 심었고, 제후의 무덤에는 측백나무를, 황제릉은 가장 고귀한 나무인 송림으로 둘렀다고 한다.

한국인이 압도적으로 가장 좋아한다는 소나무는 송진의 특성상 불이 매우 잘 붙고 타는 향도 매우 좋다. 소나무가 분비하는 왕성한 피톤치드의 각성과 서원 정문 앞 은행나무의 징코민 작용으로 경렴정쯤에 들어서면 이미 머리가 맑아져 죽계천 물소리가 더욱 선명하게 들리게 된단다. 그리고서 지도문을 거쳐 명륜당 앞에 서도록 설계된 서원이 최초의 사액서원인 소수서원인 것이다.

소나무는 나이를 더할수록 거북 등처럼 껍질이 갈라진다고 한다. 이른바 ‘철갑(鐵甲)을 두른 듯’한 모습이 된다. 험한 환경일수록 심한 곡선을 관찰할 수 있고, 거기에서 자연을 이겨내는 강한 생명력과 역동성을 느낄 수 있어 항상 교훈적이다. 정성과 이성이 함께 어우러지는 학자수 솔숲이 우리의 영혼에 힘을 더해주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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