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배용호의 문화확대경 [294] 소수서원의 광풍대(光風臺)와 제월교(霽月橋) < 배용호의 문화확대경 < 오피니언 < 큐레이션기사 - 영주시민신문

상단영역

뉴스Q

기사검색

본문영역

배용호의 문화확대경

배용호 (전 영주교육장)

배용호의 문화확대경 [294] 소수서원의 광풍대(光風臺)와 제월교(霽月橋)

2024. 10. 11 by 영주시민신문

소수서원의 광풍대(光風臺)는 담장 밖 소수박물관 쪽으로 보이는 냇가 절벽 언덕의 지명이다. 소백산에서 흘러나온 죽계천이 제월교(霽月橋) 밑을 통과하여 첫 번째 절벽에 부딪히면서 살짝 굽이를 이루는 곳이다. 『순흥지(順興誌)』의 학교(學校) 편에 「광풍대는 취한대 북쪽 100보쯤 되는 시냇가에 있다. 푸른 절벽이 8~9길 우뚝하게 서 있다. 퇴계 선생이 명명한 것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몇 그루의 소나무가 고사했지만, 절벽 위에는 아직 기절할 소나무 몇 그루가 남아 멋진 포즈를 구사하며 광풍대의 모양을 꾸미려 들고 있다. 펑퍼짐한 주변에 비해 광풍대는 콧날이 오뚝하여 이 주변으로 지나는 맑은 바람들을 모두 불러들이는 모양새다.

순흥지에 따라 취한대에서 물길을 따라 조금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발길을 잡아끄는 광풍정(光風亭) 뒤로 ‘광풍대’가 있다. ‘광풍제월(光風霽月)’이라는 말에서 가져와 붙인 이름이다. ‘광풍제월’이란 ‘비 갠 뒤의 맑고 상쾌한 경치’라는 뜻으로, 마음이 명쾌하고 집착이 없으며 시원하고 깨끗함을 의미한다.

즉 ‘도량이 넓고 시원한 인격’의 소유자를 이름인데, 중국 송나라의 4대 화가로 꼽히는 황정견(黃庭堅)이 송 육현 중의 한 사람인 주돈이(朱敦頤)를 흠모하여, “염계(廉溪)는 가슴 속의 맑고 깨끗함이 비 갠 후 맑은 달과 함께 불어오는 청량한 바람과도 같다”는 의미를 달아 ‘광풍제월’이라 하였는데, 이 비유가 조선으로 건너온 것이다.

‘마음이 넓어 자질구레한 데 거리끼지 않는 시원스러운 인품’이라는 의미를 담을 때 쓰는 말이다. 한편, 「光風霽月」은 늘 쌍을 이루어 쓰이는 것이 보통인데, 이곳도 광풍대 서쪽 지근 거리에 흔히 청다리라고 부르는 제월교(霽月橋)가 서로 마주 보고 있어 ‘광풍제월’의 의미를 완성하고 있다.

광풍대는 소수서원 지락재 등에서 바라보이는 곳이기에 유생들의 “인품을 기르는 대(臺)”를 의미하는 속뜻을 가졌다고 한다. 이곳에 올라보면 소수서원이 한눈에 내려다보이고, 연화산 기슭을 타고 내리는 상쾌한 공기가 가슴을 식힌다. 정면으로는 맑은 물에 갓끈을 씻는다는 탁청지(濯淸池) 연못이 시야에 들어와 기분이 더욱 개운해지므로 퇴계가 전하는 광풍대의 의미를 절로 깨달을 수 있다고 한다.

광풍대에 올라 시를 외우고 담론하면서 호연지기(浩然之氣)를 심어주는 곳이라고 할 수 있다. 주자의 행적을 추존하는 조선 선비정신과 맞닿아 있고 앞 개울 죽계천의 죽계구곡은 주자 무이구곡의 조선적 변용이라 판단된다. 소수서원 내 중요한 유식(遊息) 공간 중의 하나이다.

광풍대 몇 보 남쪽 절벽 위에는 그 이름을 딴 「광풍정(光風亭)」이라는 4각 정자가 세워져 있다. 2002년에 영주시가 세웠다고 안내되어 있다. 광풍대 둔덕에다 바로 세워도 될법한 정자이지만, 광풍대의 고고한 풍광을 훼손하지 않기 위해 몇 걸음 비켜 세운 배려가 돋보인다.

정자에 올라서면 온갖 시름이 씻은 듯이 사라진다. 광풍정은 소수서원에서는 죽계천을 건너 소수박물관을 들어가는 입구에 해당하나 반대로 관람할 경우 갇힌 것 같던 소수박물관 마당을 나서면서 바로 만나는 언덕이기에 광풍제월의 청량감이 한층 더해진다. 광풍정에 앉으면 소수서원 전경이 한눈에 펼쳐진다. 죽계천이 감아 돌고 연화산이 에워싼다. 마루에 걸터앉으면 그 자체가 한 폭의 산수화이다. 자연을 그대로 하고 공간의 아름다움을 이끌어 낸 ‘자연문화’라고나 할까? 전통적인 자연조경의 특징을 짐작할 수 있다.

광풍정 안내판 또한 멋쟁이다. 일상의 경우는 해당 건물만 안내하고 부근의 역사적 사실은 생략함이 십상이나 이곳 안내판은 광풍정 유래뿐만 아니라 인근 광풍대를 따로 설명하고 있어 명확한 이해를 돕고 있다. 이는 취한대 안내판과 자못 비교된다. 정자에 걸린 「翠寒臺」라는 현판 때문에 정작 퇴계가 조성했다는 경자바위 취한대를 인정받지 못하는 비운을 초래한 부실 안내판과는 대조를 이룬다는 점에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기사 댓글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