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늙는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아무래도 서글픈 일임에 틀림이 없다. 몸에 근육이 조금씩 빠지고, 금방 생각한 것이 있었는데 돌아서면 갑자기 생각이 나지 않는다. 젊었을 때는 줄줄이 외던 이름들이 뇌리에서 조금씩 자기도 모르게 빠져나간다. 한술 더 떠서 집 현관의 비밀번호를 잊어버려서 잠시 당혹스러웠던 기억도 있을 것이다. 이래저래 보면 늙음이 젊음에 비해 더 나은 것이 무엇이 있을까 곰곰이 생각해 봐도 떠오르는 것이 별로 없다.
파편이란 말의 쓰임 중에 기억의 파편이라는 말이 있다. 영화에서나 드라마에서 많이 나오는 내용이다. 기억 상실증에 걸린 사람이 기억의 파편을 가지고 진실을 찾아가는 이야기가 대표적이다. 부서진 파편을 가지고 기억의 퍼즐을 하나하나 맞춰간다. 그 여정이 쉽지는 않으나 마지막 퍼즐을 맞추고 진실에 이르게 되는 감동적인 장면이 연출된다.
포도뮤지엄에서 기획전으로 <어쩌면 아름다운 날들>이 전시되었다. 노화에 따른 인지 저하증을 주제로 다양한 작품을 전시해 놓았다. 작품 곳곳에는 기억의 파편들이 흩어져 있었다. 생생했던 기억을 잃어버리고 파편으로 남아 있는 사진과 그림이 시선을 끈다. 살아온 삶에서 가장 외딴 구석에 있는 기억을 끄집어내어 작품으로 만들어서 그런지 전시 작품을 보면서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있었다.
전시장을 들어가면서 니콜라스 세바스티안 드 샹포르의 말이 조명에 빛난다. “모든 날 중 완전히 잃어버린 날은 한 번도 웃지 않은 날이다.” 그렇다면 잘 웃지 않는 사람들은 정말 많은 것을 잃어버릴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덜컥 겁이 났다. 기억의 파편이 많이 남아 있으려면 잘 웃고 사랑하면서 따듯한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불현듯이 들었다. 어느 비평가의 말처럼 기억은 소멸해도, 사랑은 더 근원적인 형태로 남아 우리와 함께하는 것이다.
화석은 동·식물의 시체가 암석 속에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을 말한다. 화석화는 변화하거나 발전하지 않고 일정한 상태로 굳어 버린다는 뜻이다. 한 마디로 화석화가 되면 생명을 잃어버린다. 늙는다는 것은 화석화되어 간다는 말과 비슷한 의미가 있다. 나이가 들수록 몸에 생기가 없어지고 생각도 일정한 상태로 굳어져서 쉽게 변하지 않는다. 뼈마디도 원활하지 못하여 삐거덕거리니 당장에 몸이 쉽게 움직이지 않는다.
뇌과학에 따르면 신경세포라고 불리는 뉴런은 일반 세포와는 달리 수많은 돌기로 이루어져 있다. 뉴런은 서로를 쉴 새 없이 흥분시키며 양쪽 돌기들을 통해 흥분 신호를 주고받는다. 그러니 뉴런은 끊임없는 흥분 신호와 휴식을 반복하면서 활동을 하는 가운데 정확한 정보가 전달되는 것이다. 뉴런에 새로운 자극이 없고 호기심이 사라지면 뉴런은 돌기를 끊어버리고 스스로 고립을 자초하게 된다. 신경세포가 점점 죽어간다는 말이다.
이렇게 뇌의 화석화 현상이 계속되면서 생각이 점점 굳어진다. 판단력이 떨어지고 유기적으로 생각하는 능력이 점점 없어진다. 순간적인 판단 능력과 멀티플레이어로서의 행동도 하지 못하게 된다. 점점 고집도 세지고 남의 이야기를 잘 안 들을 뿐만 아니라 ‘내 말 들어봐’하며 자신의 주장만을 내세우게 된다.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고 관계하기보다는 자기의 고립을 좋아하며 고립을 정당화하게 된다.
그러니 두뇌의 노화와 화석화를 방치하거나 당연시하지 말고 하루라도 더 막기 위하여 노력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 이러한 노력을 우리는 자극이라고 한다. 운동을 하면서 말초신경을 자극하고 뇌로 전달하면서 뉴런을 자극하고 전달되는 것이다. 읽고 쓰고 생각하면 바로 뉴런을 자극하고 연결이 되어 생명력이 더욱 왕성하게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렇게 자극과 휴식을 반복하다가 보면 우리의 생각이나 몸도 더욱 말랑말랑하게 되어 화석화를 늦추거나 극복할 수 있게 된다. 말랑말랑하면 부드럽게 움직이고 무엇이든지 만들어 낼 수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