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사를 온 듯한 대여섯 명이 소수서원 지도문을 들어서자마자 강학당을 한 바퀴 돌더니 자기네끼리 문답한다. “소수서원 강학당 이름이 뭐지?”, “강학당이 강학당이지 뭐야”
강당 혹은 강학당은 유생의 ‘강학이 이루어지는 곳’을 뜻한다. 이른바 ‘공부하는 곳’이다. 그러니 ‘강학당’은 건물의 고유 명칭이 아니라 ‘공부하는 곳’을 일컫는 보통명사에 해당하는 셈이다. 그래서 조금 관심 있는 사람들은 당연히 건물 이름 즉, 당호(堂號)를 찾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전국의 향교나 서원 건물들은 각기 당호를 가지고 있다. 그 당호를 건물 정면 또는 안쪽에 부착하는 게 가장 흔한 방식이다. 강학당은 서원의 중심 건물이기에 호칭 설정이 더욱 신중함은 당연하다. 그래서 강학당 명칭에는 당해 향교나 서원이 추구하는 강학의 목표를 담는 것이 일반적이다. 전국 234개 향교의 강학당 이름은 모두 명륜당(明倫堂)으로 통일되어 있다. 여기서 ‘明倫’이라 함은 “인간사회의 윤리를 밝힌다”는 원대한 의지를 지니고 있다. 여느 서원도 마찬가지다.
이산서원 강학당의 당호는 경지당(敬止堂)으로 ‘敬止’는 몸가짐을 조심스럽게 하여 노력을 그치지 않으면 나날이 발전할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이다. 송록서원 강학당인 묘계당(妙契堂)은 ‘묘계질서(妙契疾書)’에서 취한 말로 ‘妙契’는 번쩍 떠오른 깨달음이고, ‘疾書’는 빨리 쓴다는 뜻이다. 즉, ‘깨달음의 순간을 놓치지 않도록 즉시즉시 메모하여 기억하도록 하라’는 준엄한 명령인 것이다.
세계 유산으로 등재된 전국의 8개 서원 강학당도 각각 별개의 당호가 부여되어 있다. 남계서원은 명성당(明誠堂), 도동서원은 중정당(中正堂), 도산서원은 전교당(典敎堂), 돈암서원은 양성당(養性堂), 무성서원은 명륜당(明倫堂), 병산서원은 입교당(立敎堂), 옥산서원은 구인당(求仁堂), 필암서원은 청절당(淸節堂)이라는 명칭이 그것이다. 각각 당해 서원의 나아갈 바를 압축하여 제정한 당호들임은 물론이다. 소수서원 내에도 각각의 건물들은 제각각 격에 맞은 명찰을 달고 있다. 직방재(直方齋)·일신재(日新齋)·학구재(學求齋)·지락재(至樂齋)가 그들이다.
직방재는 『주역(周易)』의「경의직내(敬以直內) 의이방외(義以方外)」가 그 출처로, ‘敬義’는 깨어있음으로써 안으로는 마음을 곧게 하고, 밖으로는 바른 도리로서 행동을 가지런히 한다는 의미이다. 일신재의 ‘日新’은 『대학(大學)』에서 가져온 말로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 즉, 날마다 새로워지고 또 나날이 발전한다는 뜻으로, 항상 새롭게 변화하는 마음가짐을 강조한 것이다.
학구재의 ‘學求’는 주자의 글씨 편액인 「학구성현(學求聖賢, 성현의 길을 따라 끊임없이 학문을 구한다)」에서 취한 것으로 보인다. 지락재는 『명심보감(明心寶鑑)』 「지락 막여독서(至樂 莫如讀書)요, 지요 막여교자(至要 莫如敎子)라, 지극한 즐거움은 독서만 한 것이 없고, 진실로 중요한 것은 자식을 가르치는 것 이상이 없다」에서 발췌한 것이다. 공부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격문이다.
‘강당’, ‘강학당’이라 함은 당호가 없을 때 쓰는 말이다. 소수서원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서원이고 강학당은 그 중심에 자리한 건물이다. 부속 건물에까지 빠짐없이 경종(警鐘)의 이름표를 단 소수서원이 그 중심 건물에만 당호를 부여하지 않았을 리가 없지 않은가?
소수서원 관련 옛 서적에는 모두 ‘강학당’이 아니라 「明倫堂(명륜당)」으로 기록되어 있다. 『죽계지』, 『순흥지』, 『제향지』는 물론이고, 성언근의 「일신재기」에도 「明倫堂」으로 되어 있다. ‘명륜당’이라는 명칭은 아직 서원이 일반화되지 않았던 시기여서 향교의 ‘명륜당’ 명칭을 차용한 듯하다. 소수서원이 사적(1963년)으로 지정될 때도, 『영주·영풍향토지(1987년)』, 『순흥향토지(1994년)』에도 모두 ‘명륜당’이다. 이를 문화재청이 국가문화유산(2004년)으로 지정하면서 「강학당」으로 명시한 것이 혼란의 시작으로 보인다. 여러 정황으로 볼 때 소수서원 강학당 이름은 「明倫堂」이었음이 확실해 보인다. 당장이라도 「明倫堂」 현판을 마련한다면 이런 혼란을 줄일 수 있지 않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