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이 끝났다. 시차가 우리나라와 차이가 있어 쉽지는 않았으나 밤잠을 설쳐가면서 보는 재미가 꽤 쏠쏠했다. 모든 올림픽이 그랬지만 2024 파리 올림픽도 갖가지 얘기를 남긴 채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엉성하기는 했으나 파리의 전통을 앞세운 멋도 있었다. 뚜렷하게 머릿속에 남은 선수도 있고, 애달픈 마음이 드는 선수들도 있었다. 누가 뭐라 해도 목표를 향해서 온 힘을 다하여 싸우는 선수들의 모습이 아름다웠다.
이번 파리 올림픽에서도 눈에 띄는 선수들이 많았다. 신유빈 선수가 잠시 쉬는 시간에 바나나를 먹는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사격이나 양궁 선수들이 과녁을 바라보는 눈초리는 꼭 세속을 떠난 듯한 초월이 내비쳤다. 경기할 때는 세상을 잊은 듯이 무덤덤하다가 이기면 활짝 웃는 모습이 아기 같아서 그 순수함이 좋았다. 이겨야 한다는 욕망이 마음속에 타오를 텐데 정작 얼굴은 티 없이 맑아서 도(道)를 넘은 사람 같아 보이기도 해서 신기했다.
그중에 가장 내 눈을 사로잡은 것은 양궁 선수들의 인사였다. 언론에 대서특필되지는 않았으나 필자에게만은 양궁 선수들이 인사하는 모습이 유독 눈에 띄었다. 경기를 시작하면서 선수 소개를 할 때 다른 나라 선수들은 본인 소개를 하면 그 자리에서 두 손을 들고 좌우로 흔들면서 인사를 하는 반면에 한국 선수들은 꼭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한 다음 두 손을 흔든다. 내 눈에는 정말 예의 바른 모습으로 비췄다.
양궁은 5개의 전 종목을 석권했다. 물론 한국 양궁이 지금까지 쌓아온 기술과 능력은 다른 나라를 능가한다. 축적된 우리만의 독특하고 효과적인 훈련 방법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기술이 좋고 능력이 있더라도 기본이 탄탄하지 않으면 마지막에는 무너질 수 있다. 뭔가 우리 선수만이 가지고 있는 기본이 있기 때문은 아닐까. 과연 우리나라 양궁 선수들에게 기술 이외에 기본이 무엇이 있을까 궁금했다.
추측하건대 우리나라 양궁 선수단은 기본을 이런 예절이나 예의에 둔 것은 아닐까. 이런 예의염치를 가졌으니 자기 능력에 대해서 교만하지 않고 겸손할 수 있었을 것이다. 양궁은 무엇보다 마인드 컨트롤이 중요한데 당연히 자기 마음을 잘 다스릴 수 있었을 것이니 흔들리지 않는 멘탈을 지탱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쯤 되면 예의염치는 이미 탄탄한 바위가 되어 흔들리지 않는 기본을 만들어 낼 수 있었을 것이다.
아직도 선수들의 맑은 눈과 반쯤 허리를 숙이는 인사, 몸에 밴 예의를 잊지 못하겠다. 물론 이런 예의가 좋은 성적으로 연결됐다는 말은 조금은 비약적으로 들릴 수도 있겠으나 기본을 잘 갖춘 모습은 너무나 인상적이었다. 그렇다고 그들은 예의에 얽매어 늘 엄숙하지 않았다. 경기가 끝난 후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웃고 떠들며 신나게 즐겼다. 그들은 MZ 세대의 진정한 모습을 보여줬다. 금메달보다 더 값진 모습이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이 예의가 없다고 한탄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자기만 알고 남은 알 바도 없다는 듯이 행동한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그런 면이 없지는 않은 것이 직장 생활을 할 때 보면 젊은 사람들은 내 것 네 것이 명확하고 자기 영역에 다른 사람들이 침범하는 것을 무척 싫어한다. 이런 문제 때문에 나이 든 사람들과 부딪히는 경우도 종종 있는 것을 보았다. 나이 든 사람들은 이런 젊은이를 이기적이라고 말한다.
MZ 세대에게 예절과 예의가 없다는 말은 잘못된 말이다. 세계 어느 나라 선수들보다 예의가 있었다. 그들에게도 우리 선조들이 삶에서 강조하는 예의염치가 있었다. 그들은 이기적인 것이 아니라 개인주의적일 뿐이었다. 이기적인 것은 나쁜 것이지만 개인주의는 나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인정적인 것에 이끌려서 학연, 지연, 혈연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는 잘못된 문화를 극복할 수 있는 열쇠가 될 수도 있다. MZ 세대, 아직 예의가 죽지 않았다. 다만 우리의 예의염치가 새롭게 해석되고 있을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