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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중의 영주 톺아보기 [127] 베이비붐 세대, 아버지에서 할아버지로

2024. 07. 25 by 영주시민신문

램브란트의 그림 중에 <돌아온 탕자>가 있다. <돌아온 탕자>는 성경의 내용을 바탕으로 그렸다. 한 아버지에게 두 아들이 있었는데 한 아들이 자기 몫을 달라고 먼저 요청하여 멀리 이웃 나라에 가서 전 재산을 탕진하고 집에 돌아와 아버지의 용서를 구했다. 아버지는 그 아들을 나무라는 대신 좋은 옷과 신, 가락지를 끼워주면서 살찐 송아지를 잡고 잔치를 연다. 이 그림은 바로 그렇게 재산을 탕진하고 돌아와 용서를 구하는 아들을 껴안고 있는 장면이다.

램브란트는 이 그림을 통하여 많은 메시지를 우리한테 전하고 있는데, 가장 독특한 것이 오른손과 왼손의 크기가 다르다는 것이다. 오른손은 작고 섬세하게 왼손은 크고 넓적하게 그렸다. 비평가들에 의하면 오른손은 어머니의 섬세함을 그렸고, 왼손은 아버지의 넓은 포용력을 표현했다고 한다. 돌아온 탕자를 용서함에 있어서는 어머니의 섬세한 사랑과 함께 아버지의 자식에 대한 말 없는 포용력이 필요한 것이다. 어머니와 아버지에 대한 램브란트의 해석은 우리 생각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베이비붐 세대라는 말이 있다. 출생률의 급 상승기를 말하는데, 우리나라 기준으로 보면 1955년부터 1963년 사이에 태어난 세대를 말한다. 경제적 빈곤과 산업화, 민주화를 거쳐온 세대들이며 나름대로는 먹고 살 만큼 재산을 축적해 온 세대이다. 특히 산업화 과정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했으며 그 누가 뭐라고 해도 우리나라가 여기까지 오게 한 장본인들이기도 하면서 대부분이 퇴직하고 직업 전선에서 물러났다.

어쩌면 베이비붐 세대는 그 처지가 샌드위치와 같다. 어떤 세대보다 부모를 공경하고 효제(孝弟)로서 가정의 질서를 깨트리지 않기 위해서 많이 노력했다. 가난을 극복하고 부모를 잘 봉양했으며 어떤 희생도 마다하지 않았다.

하지만 다음 세대에 대해서는 그들이 부모님에게 한 만큼 바랄 수도 없을뿐더러 바랄 수 있는 처지도 아니었다. 베이비붐 세대는 다음 세대를 힘을 다해 키웠다. 특히 학구열은 부모 세대에 이어 세계 최고였다. 그렇게 자란 다음 세대는 최첨단 지식산업사회에서 자리를 잡는 것조차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일자리는 줄어들고, 경쟁은 점점 치열해졌다.

세계는 초 스피드로 변해서 눈 깜짝할 사이에 세상은 바꾸었다. 주택을 마련할 수 있는 여건도 만만치 않다. 결혼도 쉽지 않아서 출생률은 역대급으로 낮아지고 있다. 그들은 혼자서 몸을 세우는 일조차 쉽지 않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기에 부모를 봉양하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가 없다.

베이비붐 시대의 아버지들이 할아버지가 되면서 노인 빈곤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우리 사회의 급속한 노령화는 노인 빈곤을 더욱 부채질하게 되었다. 기초노령연금을 받고, 약간의 국민연금에다가 시니어 일자리를 통해서 이것저것 받아봐도 입에 풀칠할 정도이지 삶의 질을 높일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아직 가정도 변변하게 세우지 못한 자녀들에게 기댈 수는 없었다. 그렇게 베이비붐 세대의 사람들은 삶의 변방으로 밀려나게 되었다.

그들도 한때는 <돌아온 탕자>에 나오는 아버지처럼 어머니의 섬세함과 아버지의 포용력을 지니고 있었다. 자식을 위해서 송아지를 잡고 가락지를 끼워주며 잔치를 베풀어 줄 수 있는 능력도 됐다. 자식을 용서할 마음이 없으면 집 밖으로 쫓아낼 수도 있는 배포도 가지고 있었다. 아니면 큰 소리로 꾸짖을 수 있는 용기도 있었다. 생각해 보면 꿈과 같은 시절이 누구에게나 뚜렷이 있었다.

이제 베이비붐 세대의 사람들은 점점 슬픈 초상화가 되고 있다. 샌드위치 세대가 되어 어디에서도 위로받을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그들은 현실의 역동성을 잃어버리고 추억을 먹고 살기 시작했다. 그래서 가끔은 ‘라떼는 말이야.’와 같은 말을 하다가 꼰대로 전락하기도 했다. 700만명이 넘는 그들은 매년 아버지에서 할아버지가 되고 우리 시대의 슬픈 초상이 돼 가고 있다. 그저 마음만은 청춘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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