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배용호의 문화확대경 [288] 소수서원의 소혼대(消魂臺) < 배용호의 문화확대경 < 오피니언 < 큐레이션기사 - 영주시민신문

상단영역

뉴스Q

기사검색

본문영역

배용호의 문화확대경

배용호 (전 영주교육장)

배용호의 문화확대경 [288] 소수서원의 소혼대(消魂臺)

2024. 07. 19 by 영주시민신문

타이완[臺灣]의 수도 타이베이[台北] 한 야시장에 있는 「샤오훈미엔푸」라는 이름의 퓨전 우육면 맛집이 최근 인터넷을 달군다고 한다. 한자식으로 쓰면 「銷魂麵舖(소혼면포)」가 된다. 여기서 ‘銷魂’은 너무 슬프거나 기뻐서 혼이 녹아내린다는 뜻이니, 「銷魂麵舖」는 ‘넋을 잃을 정도로 너무 맛있는 면포’라는 속뜻일 것이다.

근심과 슬픔으로 넋이 빠지고 창자가 끊어질 듯한 느낌을 표현할 때 ‘소혼단장(銷魂斷腸)’이라는 말을 쓰기도 한다. ‘소혼(銷魂)’은 이별을 노래한 중국 남조의 문인 강엄(江淹)의 「별부(別賦)」라는 시에서 ‘사람의 혼을 녹이는 것은 오직 이별뿐이다’라고 읊은 데서 취한 것이다. 원문이 ‘暗然銷魂者 唯別而已矣(암연소혼자 유별이이의)’이니, ‘앞이 캄캄할 정도로 정신을 나가게 하는 것은 오직 이별뿐이로구나’ 하는 정도로 해석될 수 있다. 한자의 ‘녹일 銷’자와 ‘사라질 消’자는 서로 통용된다고 한다.

죽령 옛길을 오르다 보면 소혼교(消魂橋)라는 지명을 가진 곳을 만난다. 아마도 옛길 중턱에 작은 시내를 건너는 조그만 다리가 있었던 모양이다. 이곳이 유명세를 타게 됨은 풍기군수 퇴계가 자신의 형 충청감사 온계를 배웅하던 장소였기 때문이다. 현장에서 지은 퇴계의 시에 「雁影峽中分影日 消魂橋上斷魂時(안영협중분영일 소혼교상단혼시)」라는 구절이 있는데, ‘안영협 골짜기에서 서로 헤어지던 날, 소혼교 다리에서 넋이 나가는 듯 했지요’라는 시의 소혼교가 지명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소혼교 관련 시비(詩碑)는 위쪽 자동차도로에 세워져 있다.

소수서원에는 소혼대(消魂臺)가 있다. 서원 뒤쪽을 막아주는 자그마한 언덕을 영귀봉(靈龜峯)이라고 부르는데, 당초 소수서원 뒤쪽이 낮아 허(虛)하다는 지적에 영귀봉 일대에다 소나무를 빼곡히 심어 비보하였다. 그런 영귀봉 등허리를 타고 남쪽으로 흘러내려 그 끝부분에 맺힌 곳이 소혼대이다. 소수서원 정문 서편 살짝 언덕진 곳을 말한다. 경렴정(景濂亭)을 마주 보는 곳이다. 500살이나 되는 은행나무 고목을 끌어안으며, 「숙수사지당간지주」라는 오랜 역사를 발치에 두고 있다. 고려말 안축의 「죽계별곡」에 보이는 ‘숙수루’가 얹혀 있었던 곳으로 추정된다는 곳이다.

옛 소수서원 진입로는 소혼대 앞 은행나무에서 당간지주 동편을 스쳐 주차장으로 이어졌을 것으로 본다. 죽계가 내려다보이는 호젓한 오솔길이다. 이리로 서원을 드나들면 맨 먼저 유생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곳이 바로 소혼대 언덕이 될 것이다. 처음에는 유생들의 머리를 식히던 일종의 휴게실 역할이었지만, 앞쪽으로 멀리까지 내려다볼 수 있는 언덕배기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맞이하고 떠나보내는 장소가 되기 십상이었다. 특히나 예법과 의리를 근본으로 배워 익힌 조선의 예비 선비들이니만큼 배움을 다하여 서원을 떠나는 동문수학의 끈끈한 선배들을 보내드리는 곳에서 남다른 감회에 젖게 됨은 지극히 당연하다 할 것이다.

유생들만 소혼대를 이용한 건 아니다. 소수서원의 「성정개모일기」에는 두어 달 머물면서 회헌 개모 초상을 그린 화공 이야기가 나온다. 「11일 화공이 떠났다. … 김도청이 두 화공을 데리고 소혼대에 올라 말하기를 “이곳이 바로 옛사람이 작별하던 곳이다”하고 술과 안주를 갖다 놓고 권한 뒤에 작별하였다.」라는 기록이 보인다. 이렇듯 소수서원 관련 인사들은 흔하게 이곳 소혼대에서 석별의 정을 나누었던 모양이다.

소수서원 졸업생 선배들을 먼눈으로 그냥 흘려보내는 작별이 아니라 ‘소혼단장’이듯 끈끈한 결속력으로 떠나보낸 선비 유생들이니만큼, 후일 재회하고 싶은 맘도 못지않게 끈끈했으리라. 여러 사유로 그때 결성하지 못했던 ‘소수서원동문회’를 지금에 와서 ‘후손동창회’라도 결성하도록 적극 분위기를 만들어 줘야 한다는 여론이다. 실제로, 세계유산 등재 서원에는 이런 움직임이 발 빠르게 감지되고 있다고 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기사 댓글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