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김신중의 영주 톺아보기 [125] 안문현 선생의 절규, 대하소설 『인생 갑자생』 < 김신중의 영주 톺아보기 < 오피니언 < 큐레이션기사 - 영주시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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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중의 영주 톺아보기 [125] 안문현 선생의 절규, 대하소설 『인생 갑자생』

2024. 07. 11 by 영주시민신문

안문현 선생께서 대하소설 『인생 갑자생』 세 권을 출간하셨다. 세 권을 읽기에도 버거운데 세 권을 쓴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이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사람이 소설가와 화가라고 했는데 일리가 있는 말이다. 소설을 쓰는 일과 그림을 그리는 일은 노동에 있어 어느 것에도 견줄 수가 없다. 그 엄청난 노동력에다가 상상력을 겸하였으니 이 세상에서 그보다 더 무서운 것이 무엇이 있을까.

선생께서는 갑자생인 1924년생과 이웃한 사람들에 대하여 어릴 때부터 듣고 보고 느끼며 많은 세월을 공유했다고 했다. 그때 그분들이 모두 세상을 떠나면 일제강점기에서부터 시작되는 역사의 수레바퀴에 휩쓸려 그들의 수난과 영욕의 개인사들이 잊혀질 것 같아서 이 소설을 쓴다고 했다. 그들의 이야기들이 사라지는 것이 아쉬워서 그 시대를 살다간 사람들의 애환을 남기고 싶어 이 소설을 구상했다고 했다.

『인생 갑자생』은 예안 장터를 중심으로 주로 경북 북부지역에서 살았던 인물들이 겪었던 일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엮었다. 일제의 압박과 수탈, 징병과 징용, 위안부로 끌려간 민초들의 삶을 그렸다. 해방은 됐지만 분단의 아픔과 함께 이념의 갈등으로 이웃이 적이 되고, 한국전쟁의 발발로 인해 만신창이가 된 우리 민족의 아픔도 있다. 전쟁이 끝나고 폐허 위에 벽돌을 쌓으면서 독일의 탄광에서, 중동의 모랫바람에서 나라를 일으킨 민초들의 삶도 있다.

처음 이 소설을 들고 쉽게 놓지 못했던 이유는 등장인물들이 대단한 사람들이 아니라 바로 우리집 옆에 살았던 이웃집 아저씨, 아주머니였기 때문이었다. 갑자생이면 필자보다는 30년이 좀 넘는 연배이니 어릴 적에 어른요, 어른요 하면서 따랐던 분들이다. 어릴 적 많이 따르던 대룡산 어른이나 허여골 댁이 소설 속에 있다고 생각하니 등장인물 한 사람 한 사람을 자세히 정감 있게 살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보릿고개는 해마다 찾아와서 배고픈 아이들은 봄철이 되면 산에 가서 참꽃을 따 먹어 입술에 참꽃 물이 들어 파랗게 변했다. 참꽃 색은 분홍색인데도 먹고 나면 입술은 파란색이었다. 긴 겨울을 견디고 막 싹을 틔워 망울을 터뜨리고 올라오는 버들강아지도 따먹었다. 버들강아지는 겨울이 채 가기도 전에 한낮 따뜻한 햇빛을 받아 개울가에 얼음 녹은 물이 흐르기 시작하면 봉오리가 부풀어 올랐다. 통통하게 부풀어 오른 버들강아지를 따먹고 배앓이를 할 때도 있지만 그래도 아이들은 배가 고파 먹었다.”

소설 곳곳에 우리도 경험했던 삶의 모습이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다. 책을 읽는 내내 어린 시절에 경험했던 일들이 솔솔 떠올랐다. 그때 그 시절에는 너무나 곤궁하고 아픈 삶이었지만 추억을 소환하고 보니 너무나 아름다운 기억으로 자리하고 있다. 소설을 읽으면서 지금까지 까마득하게 잊어버렸던 기억을 얼마나 많이 떠올렸는지 모른다. 북부지역의 사투리와 함께 삶의 양식이 그대로 녹아 있어서 무척 다행스러웠다.

이제 갑자생들과 동시대를 함께 살았던 많은 분이 세상을 떠났다. 아픈 역사 속에서 온 몸을 던졌던 분들이지만 요즘 대접다운 대접을 받아보지 못한 분들이 많다. 선생의 말처럼 늙은 꼰대, 수구꼴통의 누명을 쓰고 사라진 분들도 많다. 소설에서 작가는 하나의 이념이나 공간에 매몰되지 않고 끝까지 중립을 지키면서 형평성을 유지하려고 노력을 하면서도 역사에도 진실이 있다면 이러한 누명은 벗겨줘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한다.

『인생 갑자생』을 나이 든 분들이 읽으면 옛날 생각이 많이 날 것이다. 돌아가신 부모님도 생각나고 이웃하며 함께 보릿고개를 넘었던 마을 사람들도 생각난다. 까마득하게 잊었던 옛 생활도 선명하게 하나하나 떠오른다. 그러면서 이런 소설을 젊은 사람들도 읽어보면 어떨까도 생각한다. 역사를 역사책에서 배울 수도 있겠지만 역사를 자세하게 하나하나 풀어서 역사적 사실과 감동을 함께 느껴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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